[이주의한순간]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 브로콜리너마저 3집 앨범 중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요새는 앨범을 통째로 듣질 않으니 이런 순서가 의미가 없다지만, 브로콜리너마저 3집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은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이다. 반주도 없이 시작하는 가사가 뼈를 때린다. 고백 같기도 하고, 성찰 같기도 하고, 위로 같기도 한 한마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마음일거다. 저 가사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들도 대부분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라는 자각 때문이다. 나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미움을 던지기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타인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증오였다.

타인에 대한 증오가 넘쳐났던 시기는 보리출판사에 다니며 노동조합을 할 때였다. 끝판왕 독재자 대표이사에 대한 감정은 차라리 쉬웠다. 그냥 나쁜 놈이고 욕하면 됐으니까. 회사 밖에서는 노동자 집회에 연대 다니고 진보정당 활동을 열심히 하는 중간간부들이 회사에서는 대표이사의 수족이 되어 자신이 회사 밖에서 외치는 가치를 심하게 배반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짜증났다. 오늘은 회사 안에서 노동자들에게 갑질을 하다가 내일은 회사 밖에서 갑질 당한 노동자들 편에 서는 모습이 너무나 모순적이어서 그들과 같은 공기로 숨조차 쉬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는 그 모습을 위선도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진심은 갑질에 가깝고 회사 밖 모습은 온전히 거짓된 삶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약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 시간을 지나온 내 삶의 경험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이제 나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개의 성향이 한 사람 안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자아와 탄압당한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자아가 한 육체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모순적인 존재고 어쩌다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대단한 찬사를 받아야 할 일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머릿 속 이미지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모습.

 

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거나 진보적인 사람도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라는 태생적인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페미니즘에 무지한 노동운동가, 환경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페미니스트, 장애인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환경운동가, 청소년을 존중하지 않는 장애인인권 운동가, 이주민 문제에 편견을 가진 청소년활동가… 끝도 없을 이 목록이 단순히 성찰 없는 활동가 리스트, 다그쳐야할 대상의 목록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 환경 문제에 대한 외면, 장애인 인권 감수성의 부재가 당연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은, 인간이 모순적인 존재라는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안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없는 게 아닐까. 애시 당초 사회운동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의 문제들 드러내고 고쳐가는 일이다. 권력, 기득권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멀쩡하고 문제없는 것들을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은폐된 문제를 찾아내서 바꿔가는 것이 사회운동의 역할이라면,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라는 명제만큼이나 ‘활동가는 자기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전제도 당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누구 하나가 어떤 잘못을 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SNS에서의 조리돌림이 이걸 부추긴다. 모순이나 잘못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어 비판하는 경우보다는 모순이나 잘못이 있다는 자체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판단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경우 비판은 쉽게 낙인으로 이어진다. 사회운동이라면 잘못했다고 비난하기보다는 그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우리는 재판관이 아니라 변화의 주도자여야 한다.

그렇다고 원수를 사랑하자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설파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예수, 석가모니도 아니고 싫은 사람은 싫은 거고, 미운 사람은 미워해야지. 다만 싫어하고 미워하더라도 인간을 납작하게 바라보지는 말자는 것이다. 인간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모순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게 아니라, 인간을 좀 더 입체적으로 풍성하게 보기 위한 노력이다.

나 또한 보리출판사 다닐 때 악연이었던 사람들을 SNS나 어디 거리 집회에서 보는 게 마뜩찮다. 짜증나고 화딱지 난다. 솔직히 꼴보기 싫다. 하지만 그들이 집회 나오지 못하게 할 권리가 내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한명이 부족한 현장에 내 감정 때문에 누구를 오라마라 하는 것도 사회운동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그 사람들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자기 회사 안에서 갑질하는 것도 그 사람의 진심이면서 회사 밖에서 탄압받는 노동자 편에 서는 것도 그 사람들의 진심일 수 있다. 그들이 모순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비판해야겠지만, 모순적이라는 것 자체를 욕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좋은 사람이 아니고, 또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사람인지라 화딱지 나는 건 피할 수 없다. 화가 날 때면 노래를 듣는다. 브로콜리너마저 3집 앨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다음 곡은 <속물들>이다.

*작성: 용석(들 후원인,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