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나를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작은 안내

<나 활용서>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영화<거인>을 함께 보고나서 소감을 나누며 누군가 말한 ‘이용당했으면 한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청소년에게 잘 이용당하고 싶다는 청소년지원 현장 활동가의 말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작지만 묵직한 울림이 됐었거든요.

영화 속에서 ‘약아빠지고, 거짓말 투성에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존재로 비춰지는 청소년을 보고, 충분히 그리고 잘 이용당해야겠다는 소감은 왠지 스스로의 다짐처럼 들렸습니다. 엉망진창인 환경과 그 속에서 안간힘을 쓰는 청소년, 그런데 오히려 그이에게 비난의 시선을 보내는 냉혹한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활동가들이 ‘나라도 이용해’라고 분노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3월 자몽네트워크*에서 얻은 ‘이용 당하다고 싶은 나’를 힌트로, 최근 네트워크 모임에서 <나를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위한 작은 안내서>를 만들게 됐습니다. 말하자면 <나 활용서>지요.20190916 나활용서

사업과 활동에서 만나는 청소년에게 전달됐을 때, 나의 활용도를 높이는 안내서를 만든다면 어떤 내용을 넣게 될까? 나의 효능, 활용시주의점, 특이점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물론 친절한 안내서가 으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지만, 솔직함을 따라가긴 어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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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활용서를 만들고 발표를 하면서 의외의 효능과 주의점에 놀라며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지원프로그램에 참여중인 청소년도 활동가들이 만든 소개서를 듣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놀라고 새로운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활동가도 ‘작은 것도 크게 들으며 개소심’할 수 있고, ‘이해를 잘 못하고 잘 안 들리도’한다는 걸, 꼭 알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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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활동가는 효능에

‘인생 흑역사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

‘10개 주면 50개 줄 수 있다. 의리, 긍정적’이라고 소개했는가 하면, 주의점에는

‘굳이 100% 솔직하지 않아도 됨. 편한 만큼 솔직해주세요. 너 안전한 만큼’

‘구라 쳐도 됨. 단 이용하기 위해서는 배로 갚아 줌. 성격 급함’

‘주는 만큼 더 얹어줌. 관심’

‘너보다는 내가 더 소중해… 근데 나만큼 널 대할 거야’도 적었습니다.

‘이용하기 위해 구라치면 배로 갚아 준다’는 말은 일면 웃기기도 하고 솔직함이 느껴지도 하고, 어느 정도의 문제일지,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청소년이고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에 어떤 거짓이든 이용이든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예기치 못한 심각한 피해를 불러오기도 하니까요.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이용’인지가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또 중요하고요.

신기하게도 솔직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일단은 ‘나 안전한 만큼’만 솔직이든 거짓이든 드러내면 된다는 말이, 좀 ‘과격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는데, 청소년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궁금합니다. 또 ‘너보다는 내가 더 소중해… 근데 나만큼 널 대할 거야’라고 소개하는 활동가를 만나는 청소년이 조금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날은 활동가 스스로 자신을 점검해보는 프로그램으로 진행이 됐는데, 기관이나 사업에서 만나는 청소년과 각자의 활용서를 만들고 함께 나눠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참여자 모두의 정성과 노력으로 그려진 ‘인생 초상화’는 덤입니다.

*자몽네트워크는 청소년사업을 지원하는 기관/단체 담당자들의 네트워크 모임으로, 들은 기관 모니터링과 네트워크 교육을 맡아왔습니다.

*작성 : 은채(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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