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청소년들과 함께 한 교육 이야기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한 지역의 도서관으로부터 영화를 이용한 청소년 대상의 노동인권 교육을 요청받았습니다. 존엄이 위협당하는 순간과 증명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가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여러 영화를 찾아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인권과 관련한 영화 중 투쟁에 ‘승리’하는 영화들도 좋지만, 투쟁에 ‘실패’하는 결말을 가진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밖의 삶에서는 항상 성공하는 투쟁만 있지는 않은데, 교육 현장에서 제가 가져온 영화를 보고 오로지 투쟁에 승리하는 길 만이 존엄을 지켜내는 길처럼 느껴지지는 않을지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영화는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산드라의 복직 투쟁이 개운하게 성공하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주인공인 산드라의 얘기인 동시에, 그의 동료들의 얘기입니다. ‘산드라’는 질병 휴가를 신청했다가 복직하지 못하고 있던 노동자입니다. 그러다 복직을 앞둔 산드라는 회사 동료들이 투표에서 그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선택했고, 따라서 복직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다행히 산드라를 지지하던 다른 동료가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사장에게 제보하면서, 재투표가 결정됩니다. 다시 일하고 싶은 산드라는 주말 동안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해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현실에서의 싸움에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산드라가 된다면, 혹은 그의 동료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존엄하게 일하는 것을 위협받을 때,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우리는 존엄을 잃게 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여성 청소년을 마치 여성 청소년처럼 취급하는 것은 존엄성의 침해다.”

참여자들과 이 영화를 나누면서 ‘존엄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존엄해진다.’라는 것을 얘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나름 큰 욕심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첫 프로그램으로 “000을 마치 —처럼 취급하는 것은 존엄성의 침해다.”라는 문장을 함께 채워보았습니다.

사진: "여성 청소년을 마치 oo처럼 취급하는 것은 존엄성의 침해이다" 모둠 활동 작업물

“여성 청소년을 마치 oo처럼 취급하는 것은 존엄성의 침해이다”

 

참여자들은 ‘여성 청소년’을 선택했습니다. 꽃, 고양이, 인형, 공부하는 기계 등 여러 답 중에서 제 눈에 한 단어가 들어왔습니다. ‘여성 청소년’.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참가자에게 이야기를 나눠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여성으로 보이고 청소년이라고 해서 저를 여성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면
제가 그냥 ‘여성 청소년’이기만 한 것 같아요.”

라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참여자들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요. 그게 전부가 아닌데.”

그 순간 참여자 분석을 하던 때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솔직하게 저 자신을 돌아보자면 대다수가 여성 청소년들이니 이런 주제에 관심이 더 있지 않을까, 이런 프로그램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참여자들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여성 청소년을 선택할 때에도 자신들의 이야기라서 더 가깝게 느껴지나보다 생각했을 뿐, 그 이름의 틀 안에 갇힌다고 느끼는 참여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존엄에 대해 준비하면서도 모두가 자신이 명명되는 틀에서 벗어나 한 존재로 만나는 자리는 만들지 못했던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참여자 분석도, 교육을 기획하는 일도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영화는 산드라의 “나 행복해.”라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복직에 실패했는데 행복할 수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놀라움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존엄’이라는 말에게 더 다가간다면 투쟁에 실패한 산드라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드러납니다.

왼쪽에 영화 속 산드라의 통화 모습, 오른쪽에 '산드라는 왜 복직에 실패했는데도 행복하다고 말했을까?' 질문이 담긴 슬라이드

산드라는 왜 복직에 실패했는데도 행복하다고 말했을까?

 

교육에서는 “산드라는 복직에 실패했는데도 왜 행복하다고 말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참여자들의 답으로는

“최선을 다해서 후회도 없는 게 아닐까요?”

“투표해준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복직하지 않겠냐는 사장의 제안을 스스로 거절해서”

“반장과 사장에게 화를 내고 나와서”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참여자들의 답 안에 존엄이 어떻게 확인되는지 다 들어있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존엄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 동료들과의 연대, 모욕감을 느끼고 이에 굴복하지 않는 순간들에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복직에 실패했지만, 사장의 제안에 거절하고 나오는 산드라의 얼굴이 밝은 이유도 참여자들이 말해준 과정들 속에서 산드라 자신도 스스로의 존엄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존엄을 위협당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존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작성: 연잎(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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