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한문장] “그대가 가진 것을 줄 때 그것은 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주는 것은 그대가 그대 자신을 줄 때이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그대가 가진 것을 줄 때 그것은 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주는 것은 그대가 그대 자신을 줄 때이다.”

그대가 가진 것을 줄 때 그것은 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주는 것은 그대가 그대 자신을 줄 때이다.
(중략)
그대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주리라. 그러나 오직 받을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주리라.’

과수원의 나무들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 준다. 주지 않고 움켜쥐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기에.

분명한 것은, 밤과 낮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로부터 무엇이나 받을 자격이 있다.
생명의 큰 바다에서 마실 만한 사람이라면 그대의 작은 시냇물로 충분히 그의 잔을 채울만하다.

또한, 받을 줄 아는 저 용기와 자신감,
아니 그보다도 받아 주는 저 자비심 외에 무슨 자격이 더 필요한가.

그런데 그대는 어떠한가. 남의 가슴을 찢고 자존심을 발가벗겨서, 그리하여 바닥에 떨어진 그들의 가치와 온통 발가벗겨진 그들의 자존심을 구경하는 그대는.
무엇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줄 자격이 있는가, 주는 심부름꾼이 될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라.

-칼릴 지브란 [예언자]

사람들은 ‘받을 자격’에 대해서는 자주 논하지만, ‘줄 자격’에 대해서는 좀처럼 떠올리지 않습니다. 위의 글을 보고 ‘주고받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을까?’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만을 줬던 것은 아니었을까?’ 부끄럽지만 어떤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런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갔을 때, 상대가 그걸 몰랐을 리 없습니다. ‘주고받음’의 행위를 통해 위계가 형성되는 순간들도 있었을 겁니다.

인권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이 아니라 내가 가진 지식만을 나누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다고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교육 참여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상대의 자격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받는 이들이기에, 교육 현장에서의 나도 주는 사람으로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은 게 인권교육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받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등바등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주거나,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받을 줄 아는 용기와 자신감’도 생길까요?

*작성: 연잎(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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