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글자, 나의 존엄
활동회원 오이 님의 '나으 슨생님' 이야기

문해교실 참여자들이 촬영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입니다

 

나는 문자가 없는 세상을 살아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다.

익산 함열 문해교실의 할머니들을 만나 그분들의 삶을 사진이나, 책, 라디오로 함께 엮어내는 활동을 3년째 하고 있다. 활동을 계획하고 준비할 때만해도 할머니가 돼서야 글자를 배우는 그 삶들에 대한 궁금함보다, 나이가 많은 이분들이 그저 꼰대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먼저였다.

할머니들은 70평생 글자를 모르고 살아온 분들이다. 걱정했던 꼰대는커녕 글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마음이 겸손해도 너무나 겸손한 할머니들이었고, 학교에 다니면서 뭔가를 배운다는 즐거움과 기대에 부푼 초롱초롱한 할머니들이었다.

“오메~ 오이 슨생님이 오셨네~~ 하하하하”
오이라고 소개하자 할머니들은 박수를 치면서 환영해줬고(아이고, 선생님이라니!), 이 몸 둘 바를 모르겠는 무작정 환대는 3년째 만나는 지금도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늘 반복된다.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환대와 함께 이분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자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어지러웠다. 문자가 없는 세상을 살아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글자를 모른다는 것
– 생각을 문자로 정리하고, 다시 생각을 키우는 과정을 겪지 않은 삶

“이번 추석 때 재미난 일이 있었나요? 한 가지씩 생각나는 것을 이야기해볼까요?”라는 질문은 할머니들을 신나게 하는 질문이다.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하려고 목청을 높인다. 한 분이 자식 자랑을 하면 “내 아들은”, “내 딸은”, “내 손자들은”하며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다른 분이 송편을 빚으려다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면 “반죽을 말이야”, “내가 망친 것은”, “나는 음식을 망쳐본 적이 없어.” 자신의 이야기 시간을 빼앗길까 숨도 안 쉬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방금 한 이야기를 적어보세요.”라는 말이 나오면 일동 침묵한다.
“머라고 혀야여?”, “머라고 적으야혀?” 자신이 방금 이야기를 해놓고, 뭘 적으란 말이냐고 도리어 나에게 묻는다. 이건 뭐지? 글자를 배우는 학교를 다닌 지 몇 년씩 됐으니 글자를 영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분들은 가 갸 거 겨를 익혔지만 생각을 떠올려 이야기하는 것과 그 이야기를 문자화하는 것이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자 한 자 적거나 읽을 수는 있지만 문장을 만들거나 해석할 수는 없는.

글자를 모르고 살아온 삶이 어떤 것인지 가늠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아득했다. 지금도 잘 모른다. 그냥 좀 익숙해졌고, 그럴 땐 할머니의 말은 이런 글자로 이뤄진 이런 문장이라고 말한다.

“어르신께서 송편 망친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그럼 ‘추석 때 송편을 망쳤다.’라고 적어볼까요?”
‘추’, ‘석’, ‘때’, ‘송’, ‘편’, ‘을’, ‘망’, ‘쳤’, ‘다’, ‘.’
글자 사이사이로 “평소 요리를 잘 안해 본 내가 이번 추석 때는 송편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는데 뭐가 부족했는지 반죽부터 망쳐서 송편을 만들 수가 없었고, 송편 반죽은 지금 우리집 냉동실에 얌전히 보관해뒀다. 솜씨가 없어서 이런 일도 생기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이렇게 반죽을 망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뭐가 부족했을까? 송편 반죽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좀 알려 달라.”는 말이 흐른다. 그 다음 주 망친 송편 반죽은 학교로 왔고, 요리 장인들에 의해서 맛있는 송편이 됐다.

 

글자를 모른다는 것
– 배울 기회를 빼앗긴, 어느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삶

‘가시나가 배우면 화냥질밖에 더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끄댕이를 잡혀 학교에서 끌려 나왔다. 무거운 물지게를 지다 좁은 논두렁에서 넘어지고, 다시 물지게를 지고,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심든 일만 내 차지’였다. ‘딸이라고 이럭게 나를 함부로 하는 엄마는 진짜 내 엄마가 마즌가?’ 의심했다.
-ㄷㅁ 할머니, ㅊㅅ 할머니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서 나는 갈 데가 없었다. 엄마한테 가면 며칠 있다가 ‘아빠한테 가라.’ 하고, 아빠한테 가면 새엄마가 ‘애 엄마한테 보내라.’ 하고.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 일을 하면서 전국을 떠돌았다. 거지라고 욕도 많이 먹고, 전라도 개똥쇠라고 사람들한테 맞기도 했다.
-ㅂㅇ 할머니

결혼하고 다음 날부터 남편은 바람을 폈다. 집에 한 푼도 안 줬다. 내가 고생 고생해서 돈을 벌어다 놓으면 나 몰래 갖다가 다 탕진해버렸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겠구나 싶었다.
-ㅂㅅ 할머니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삶, 자신조차 귀하게 여기지 않은 삶을 ‘우리는 아무 것도 몰라요, 다 슨생님이 옳것지요. 시키는대로 할께요. 우리는 모르니께… 우리가 안배웠잖여, 그러니께 사람들이 우리헌테 그러지…’라는 말로 자신을 최대한 낮춘다. 글자를 몰라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서 내 이름을 쓰지 못하고,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를 찾기도 힘든 이분들은 글자로 이뤄진 세상에서 자꾸 작아졌다.

문해교실 참여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힘껏 살아낸 삶
– “가난하고 심든 시절, 후해는 업다.”

봄에는 독사풀을 뜯어서 죽을 쒀 먹었다. 추수하기 전에 쌀이 다 떨어지면 덜 익은 벼를 베다가 올기쌀을 해먹고 나면 논에는 베어낼 벼가 얼마 남지 않았다.
-ㅇㅅ 할머니

결혼식 날 신부대접 받는다고 아랫목에 앉아 있는 내 앞으로 아이들 열 명이 쪼르르 앉았다. 저 아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생각했다. 모두 시동생들이었다. 시동생들을 다 키우고, 여우고 나니 내 자식들이 다 커있더라.
-ㅇㅅ 할머니

짜장면 집을 해서 자식들을 키웠다. 배달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도 못 타서 철가방을 들고 달려서 배달을 했다. 어찌나 잘 달렸는지 내가 자전거보다도 빨랐다. 자식들을 키우는 것이라 그 때는 힘든 줄도 몰랐다.
-ㅁㅇ 할머니

점쟁이는 줄줄이 딸려있는 시댁 사람을 버려야 내가 산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챙기고, 또 챙겼다. 내 손이 닿는다면 어느 것 하나 흠이 생기는 것이 싫었다. 그것이 내 자존심이다.
-ㅇㅅ 할머니

벽돌을 지고, 모래를 나르는 노가다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조금씩 조금씩 땅을 샀다. 많이 샀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하니 집안일은 아들에게 시켰다. 지금도 집안일은 남편이 한다. 이 나이에 남편한테 밥상 받는 할매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ㅂㅇ 할머니

 

글자를 배운다는 것
– 내 삶을 다시 바라보고 껴안는 것

딸 셋을 낳고, 시댁에서 쫓겨나 8년을 친정에서 지낸 ㅅㅇ 할머니는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아들을 낳았을 때!!!!!”라고 외쳤다. 그 순간 우리 모두 ㅅㅇ 할머니가 돼서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딸들에게 ㅅㅈ 할머니는 “딸들아, 여자는 참고 살아야 한다.”라고 목이 메인 영상 편지를 보냈다. 이 말은 “딸들아, 우리의 삶을 힘껏 껴안자.”라는 말로 들린다.
내 마음은 그냥 그렇게 됐다.

힘든 인생을 살았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견뎠다. 노래는 나의 힘이다. 언제라도, 지금이라도 노래만 하라고 하면 백곡이라도 부를 수 있다. 노래를 부르며 살아온 내 인생을 보니 힘들었어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00야, 장하다.
-ㅅㄴ 할머니

“젊었을 때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살았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싶다.”

할머니들은 다 닳아서 없어진 지문, 굵어진 손가락 마디로 연필을 쥐고서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어 은행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며 좋아하신다. 버스 번호를 척척 읽을 수도 있게 됐다고 자랑하신다.

올 봄에 ㅇㅅ 할머니는 젊고 어린 사람들 가운데 노인네 혼자서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봤고, 합격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찌나 마음이 벅차고 장하던지 함께 눈물 바람을 했다.

어느 누구도 이 분들의 삶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자신조차 자신의 삶을 귀하게 여길 짬조차 낼 수 없었다. 70이 넘고 80이 돼서야 자신의 삶을 돌보기 시작한, ‘가 갸 거 겨’를 통해 스스로의 존엄을 찾아가는 이 여성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뻐 죽겠다. 이렇게 험하고 함부로 채인 삶을 그대로 껴안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것은 내 복이다. 이분들이야 말로 ‘나으 슨생님’이다.

*작성: 오이(들 활동회원, 평화바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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