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한문장]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집주인이죠.”

표준국어대사전엔 ‘집주인’의 뜻이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1. 한집안의 으뜸이 되는 사람
  2. 그 집의 소유자

 

자기 소유의 집이 아닌 곳에서 사는 이들에게 집주인은 그 집의 소유자 또는 집을 세놓은 ‘임대인’을 가리킨다.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새 집주인이 좀 사나워 보여 걱정이야.”

“집주인이 벽에 못도 박지 말래.”

“집주인한테 고쳐달라고 해.”

 

얼마 전 한 교육에서 주거권 이야기를 나누다 ‘집주인이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한 참여자의 대답은 달랐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집주인이죠.”

 

‘임대인=집주인’이라는 공식에 도전하는, 소유관계야 어떻든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집주인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말. 이 말은 꽤 오래 전부터 주거권 운동을 해온 이들이 펼쳐온 주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세입자일지라도 사는 사람이 집주인’이라는 말은 왜 이리 낯설게 느껴질까. 한국사회에서 주거권이 처한 현실을 드러내는 감각적 지표는 아닐까. 지난해 한국을 다녀간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 레일라니 파르하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시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주거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인식조차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주거권이 집을 ‘소유’할 권리가 아니라 ‘집다운 집에서 안정적으로 고유한 삶을 영위할 권리’임을 꿈꾸는 우리들이라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사용부터 달라질 필요가 있다. 언어 하나 바꾼다고 임대인에게 기울어진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현실을 바꿀 힘을 조직하려면 언어 근육도 필요할 테니까.

 

사는 나를 ‘집주인’의 자리에, 그 사람을 ‘임대인’의 자리에 넣어 다시 말해본다.

 

“새 임대사업자가 좀 사나워 보여서 집주인을 괴롭힐까봐 걱정이야.”

“내가 집주인인데, 임대인이 왜 벽에 못 박는 거까지 간섭이래?”

“임대사업을 하려면 집주인이 살기 불편하지 않도록 임대인이 고쳐줄 책임이 있지.”

 

*작성 : 개굴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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