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한문장] “‘유치원생 같다’?”

1.

지난 달 말 경찰 및 공공기관 승진 대상자를 위한 성평등 교육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있었던 교육 대상자들의 수업 참여 거부 등의 노골적인 부정적 반응들이 언론에도 보도되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교육을 담당했던 강사는 강연장에서 있었던 교육 대상자들의 무례한 행동들을 낱낱이 자신의 SNS 계정에 공개하고, 국가의 주요 기관들의 고위직에 승진할 사람들이 성평등 교육에 대해 취한 위와 같은 태도들을 문제적으로 바라봐야 하므로 공론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로의 행동에 대해 엄격하다면 엄격할 그 공공기관 간부 대상자들이 그토록 무례하게 행동했다면, 그들에게 성평등 교육이란 ‘듣기 싫은 좋은 말’일 뿐이며 외부에서 온 강사는 형식적으로 교육을 하고 가면 그만이라는 점 등등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했던 거다. 그런 와중에 조별 토론 등 적극적인 수업 태도를 요구받자 조금씩 거부 반응이 드러나기 시작했을 것이며, 그 부정적 반응이 서로에게 퍼져나갔을 때 강연 내용에 대한 딴지걸기, 자리 이탈하기 등은 점점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꽤나 용기있는 저항적 행동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조직 외부에서 온 이방인에게 일종의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이 사건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몇년 간 이어진 성평등 교육에 대한 요구들이 실제 교육 진행 장면에서는 어떤 반응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2.

수강자들의 문제 의식이 강사와 큰 격차가 있을 때 교육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강사와 수강자들 간의 정서적 라포 형성을 할 여유도 없이 각자 맡은 주제를 2-3시간의 강연으로 마무리짓고 떠나야 하는 이런 식의 승격 연수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다수가 중년 남자로 구성된 수강자 그룹 앞에 여자 강사가 섰을 때의 권력 관계는 어떻게 작동되는가 등등, 여러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나는, 그 SNS 고발글의 말미에 등장한 ‘유치원생 같다’라는 말에 눈이 멈추었다.

수강자들의 무례함을 폭로한 그 SNS의 글은 강연 조교가 말했다는, 수강자들은 그날 마치 ‘유치원생 같았다’는 말을 인용하며 마무리되고 있는데, 나는 그 부분에서만큼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마치 관용어구처럼 쓰이는 ‘유치원생 같이 왜 저래’, ‘너 유치원생이냐?'(너 중딩이냐, 초딩이냐, 네가 애냐, 등등 여러 변형들이 있다.) 등의 말은 사실 실제 유치원생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 글을 쓴 강사분은 아마도 그날의 수강자들의 행동이 해야 할 일인데도 철없이 하기 싫다고 떼쓰는 어린 아이의 모습같다고 비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유치원생 나이에 해당하는 5-7세 어린이들 중 그런 강연 자리에서 실제로 떼쓰며 거부할 아이들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보통 떠올리는 유치원생의 걸어가는 길만 생각해봐도 금세 알 수 있듯, 외려 대다수는 선생님과 함께 ‘참새! 짹짹! 오리! 꽥꽥’을 외치며 교사의 지시에 따르는 어린이들이다. 어떤 어린이는 대열을 이탈하지만 어떤 어린이는 대열을 이탈하는 어린이를 선생님이 볼세라 꾸짖는다. 어떤 어린이는 하기 싫다고 떼쓰지만 어떤 어린이들은 그런 어린이를 달랜다. 차라리 유치원생이었다면 그날 강연자가 하고자 했던 교육을 순탄하게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

 

3.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는 자주 동료 교사들과의 대화에서 학생들을 두고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말하는 걸 듣게 된다. ‘수업받기 싫다고 할 땐 언제고 또 단축수업 때문에 공부 못했다고 불평이야?’, ‘농담하면 좋다고 깔깔대더니 왜 뒤에 가선 기분나쁘다고 인터넷에 올려?’, ‘너무 진도가 빠르다고 했다가 너무 느리다고 했다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야?’ 등등.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른 것이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 모여 있으니 당연히 이런 말도 나오고 저런 말도 나온다. 학생들의 존재는 단일하지 않고 그들이 처한 환경도 계속 바뀐다. 모두를 고려하면서 교육을 해야 하는데 교사 혼자 책임지는 것이 너무 많아 고달플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교육 현실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다 제각각이라는 걸 생각 안 하고는 내가 지금 처한 환경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잊어서는 안 된다. ‘고등학생답다’, ‘중딩 같이 그게 뭐냐’, ‘유치원생 같다’는 그 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걸. ‘~같음’을 비하하거나 ‘~다움’을 요구해서는 안 되며, 수강자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다움’ 이전에 각자의 할 말이 있다는 걸.

계획대로 강연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차라리 강사가 있는 자리에서 이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고 페미니즘에 대한 본인들의 거부 반응 자체를 그 강의실의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봤음 어땠을까 싶다. 교육받기 싫다고 떼쓰지 않고 고분고분한 수강자들이란 유치원에도 고등학교에도 어디에도 없는, 수업지도안 속의 환상일 것이니 말이다. 물론 나라도 그 폭력적인 상황 앞에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날의 교육 대상자였던 공공기관 간부들의 태도는 아주 영리하고 전략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듣기 원하지 않았던 성평등 교육의 분량을 다 듣지 않을 수 있었고 심지어 그 교육을 행하는 강사에게 모욕감을 주기까지 하는 성과를 거뒀다. 게다가 그 강사의 SNS 고발글이 언론에 보도되자 자신들을 성찰하기는커녕 짐짓 논리적인 태도로 ‘강사의 말에 꼭 순응해야 하느냐, 강사의 허점을 지적해서는 안 되는 것이냐’고 반박하는 글을 SNS에 올려 이 사건을 문제삼은 강사의 자질을 논쟁거리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은 지금 제법 진지하게 전선에 나서고 있다. 오늘도 억지 성평등 교육을 위해 강의를 준비하고 고생하고 있을 여러 강사분들께 경의를 표하며, 두서 없는 글을 마친다.

*작성: 두리번(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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