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한문장] “언제 쳐들어올지(기어오를지) 모르는 상대를 죽이는(가르치는) 연습을 ‘방어(교육)’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곳들이 있다는 발견”
<체벌 거부 선언 - 폭력을 행하지도 당하지도 않겠다는 53인의 이야기>, 교육공동체 벗, 2019

체벌거부선언 책 표지

“엄마는 나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며! 잔소리 좀 그만해.”

요즘 거의 매일 아침, 등교를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진다. 활동량이 많아진 어린이가 방과 후 (돌봄) 교실이나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서 온 힘을 다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아파트 1단지부터 6단지까지의 넓은 동네를 헤매며 잘 노는데 보내기 때문일까. 점점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며 늦게 일어나고 있다. 사실 일어나서 부리나케 밥 먹고 옷 입고, 머리 빗고 양치하고 가면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맘에 드는 옷을 고를 때까지 심사숙고해야 하고, 밥 먹으면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할 여유를 즐기고 싶은 어린이에게는 학교 가기 40분 전에 일어나는 것은 대단히 늦게 깨어나는 것인가 보다.

나는 자꾸 나가기 전까지 밥을 다 먹을 수 있는지, 양치하고 갈 수 있는지 걱정되는 마음에 5분 간격으로 시간을 알려주었을 뿐인데, 말하면 할수록 잔소리가 되어 버린다. 나도 늘 친절하게, 어린이의 짜증을 돋우지 않게 얘기하고 싶다. 같은 얘기 여러 번 하게 하면 혼내던 엄마 밑에서 자라기도 했고, 어른들 말을 바로 듣지 않으면 혼났기 때문에 혼나지 않으려고 바로바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애쓰고 살아오면서,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같은 부탁(사실은 명령이나 지시)을 여러 번 하면 화가 쌓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어린이와 살면서 내내 트리거로 작동하고 있기는 하다.

어린이가 나날이 자라면서, 가장 나를 붙드는 고민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같이 만든 약속이나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라는 요구’이다.

사실 이 어린이는 지금보다 더 어릴 때부터 엄마인 나에게 조건 없는 지지와 사랑을 거침없이 요구하고 있다. 생후 3개월부터 보육 기관에서 사회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전적으로 알차게 휴식에 집중하며 보내고 싶어 한다고 느낀 지는 오래되었다. 적어도 엄마와 지내는 시간만이라도 긴장 없이 보내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을 모르진 않는다. 오히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어린이‧청소년 인권옹호자가 되고 싶은 ‘나’와 모성이 없어서 괴로운 ‘엄마로서의 나’ 사이에 있는 심각한 갈등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저는 당신이 만들어 내는 모범답안, 그 자체를 거부합니다.” – <체벌 거부 선언 – 폭력을 행하지도 당하지도 않겠다는 53인의 이야기>, 교육공동체 벗, 2019. 172쪽, 필부의 글

나도 모범답안을 거부하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왜 어린이의 삶에 대해 나는 어떤 답안을 들이밀며 아침마다 싸우고 있을까. 왜 학교에 매일 가야 하는지, 숙제를 꼭 해야 하는지, 제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지 어린이가 질문할 때마다 나는 멈칫하고 만다. ‘그러게. 학교를 안가고 숙제를 안 하고 지각할 수도 있지. 그러나 엄마인 나는 너를 ‘이기적이고 저만 아는 사람’으로 키웠다고 비난받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어나고 씻고 밥 먹고 세수와 양치하고 옷 입고 가방 챙겨서 학교 가라는 말에 재깍재깍 움직여주지 않는 그에 대한 분노를 꾹꾹 누르면서 ‘쟤는 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쥐어짜)는, 나의 노력을 몰라주는가.’ 하는 원망이 더 크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도 그이에게 원하는 모범답안이 있었다는 것.

“언제 쳐들어올지(기어오를지) 모르는 상대를 죽이는(가르치는) 연습을 ‘방어(교육)’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곳들이 있다는 발견” – 앞의 책, 192쪽, 날맹의 글

‘들’이 여는 고개 넘기 워크숍을 참여하고 활동회원을 하기로 하면서 가장 먼저 결합한 모임이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교사연수 기획팀이었다. 이때 세 살이던 어린이와 살며 확인한 ‘고함치는 엄마’로서의 ‘폭력성’을 알게 되었고, 내가 직면해온 수많은 폭력의 순간을 되새기기도 했다. 2018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체벌 거부 선언을 조직한다는 소식을 듣고, 꼭 참여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선뜻 참여하게 되지 않았다. 선언하고 나서. 그 뱉어놓은 말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선언에 참여하긴 했지만 이번 생에는 안 되는 문제라며 도망치지는 않을까. 체벌 거부 선언을 하고, 그걸 다듬은 글이 책으로 실려 나오자 사실 나는 두렵다. 나에게 어린이‧청소년인권은 내가 단지 나이를 먹고 엄마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매 순간 확인하기 위한 잣대라고 쉽게 고백하고 있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긴 했다.

그러나 책은 나와 버렸다. 체벌이 폭력이다. 때리지 않더라도, 폭력적인 분위기와 언어로 너를 제압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역시 폭력이다. 날맹이 써주었다시피 폭력의 언어는 전쟁을 떠오르게 한다. 내 몸을 통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어버린 어린이를 ‘언제 기어오를지 모르는 상대’로 설정하고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통제하고 휘두르고 막 대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나는 언제까지 갈등하게 될까.

*작성: 림보(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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