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학교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요

최근 한 중학교의 학생회 임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학교에서의 오랜만의 교육이라 살짝 떨리는 마음을 안고 정문으로 들어섰어요. 때마침 쉬는 시간이어서 학교 운동장을 산책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모두들 교복이 아닌 옷차림을 하고 있더라고요. 교육을 준비하면서 이 학교의 학칙을 찾아보았는데 대부분 학교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통제중심의 여러 생활규정들이 거의 없는 걸 보고 “와, 여기 어떤 곳일까?” 생각했었는데… “교복도 안 입나봐!” 라고 생각하며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학교에서 요청한 내용은 학생회 임원들을 위한 인권과 민주주의, 학생회의 역할 등에 관한 교육이었습니다. 총 3시간의 교육을 요청받았고 상임활동가 날맹과 활동회원인 제가 함께 준비하기로 했어요. 담당 교사는 현재 학생회의 활동이 너무 ‘재미 위주’로 진행되는 것, 학생회의 운영진을 선발하고 면접하는 과정에서 ‘스펙 쌓을 수 있다’며 홍보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학생회가 학내의 이슈와 의제를 발굴하고 학교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기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전했습니다.

담당 교사의 요청과 고민을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의논했어요. 예전에 ‘들’에서 진행했던, 그리고 저도 수원에서 활동할 때 몇 차례 진행했던 ‘학생 자치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교육 경험을 떠올리며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재미 위주’로 활동한다고 느낄까? 학생회 활동을 하며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눠서 학생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인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을 주제로 기본적인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내용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어서 학생회와 학생 자치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학생회의 역할과 활동방향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1부는 날맹의 진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어색함을 살짝 풀어보기 위해 간단한 게임을 하고, 학교와 사회의 몇몇 장면들을 인권의 관점으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학생인권과 각자의 경험을 연결지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각자의 답을 적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학교/집에서) ~할 때 숨막히는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다면 우리 학교에서 ~부터 없애거나 바꿀 것이다”
“~도 교사/학생에 의한 폭력이다. 우리 학교에서 사라져야 할 폭력적인 행위나 정책은?”

이 때 참여자 분들의 이야기가 터져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1부 끝부분에 진행하고자 했던 정리 강연용 PPT 슬라이드 내용은 거의 보지도 못하고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할 정도였어요.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다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미리 살펴본 학칙에 나온 것처럼 이 학교의 생활규정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상벌점제는 폐지되었지만 두발과 용의복장 규제는 존재했습니다. 사실상 염색은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고, 눈화장 금지 등 특히 외모와 복장에 대한 단속, 교복 변형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교복은 없는 거 아니었나요, 라고 여쭤보자 “수요일만 이래요” 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 오늘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다면…”에 대한 답으로 “교복 규정을 바꿀 것이다”, “화장을 금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이 많이 나왔나봅니다.

학생회 활동에 대한 불만과 고민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학생회 활동을 할 때) 의미와 재미 둘 다 중요하거든요. 전체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게 하려면 재미도 있어야 되고… 근데 선생님은 의미만 강조해요.”, “규칙 바꾸고 싶어도 학생-교사-학부모 비율이 3:3:3이에요. 교사랑 학부모랑 같은 편 되면 학생 의견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거죠, 뭐.” 학생 분들이 들려준 이야기 덕분에 2부에서 진행하려고 했던 ‘학생회와 학생 자치’ 주제로 자연스럽게 집중되었습니다.

“회의가 회의다울 권리”가 필요하다

2부에서는 “학생회는 ~한 일을 하라고 있는 기구다!”, “학생회 활동과 학생자치가 보장되려면 학생회에는 ~한 권리가 필요하다!”라는 문장을 토대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는데요, 원래는 포스트잇에 적은 후에 그 내용을 나누는 방식을 생각했지만 앞서 1부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리며 포스트잇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어떤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담당 교사와의 의견 충돌과 간섭, 그로 인해 답답한 상황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입장이 반영된 권리들이 등장했습니다. “학생회 뜻대로 추진할 수 있는 권리(권한)”, “거부할 권리”, “학생회 회의가 ‘회의’다울 권리” 등 생생한 내용들이었습니다.

특히 “회의가 회의다울 권리”는 여러모로 학생 자치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 자치권 실태를 조사하며 학생인권조례에서 다루고 있는 ‘자치 활동의 권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물을 때 “회의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지”를 묻곤 합니다. 최소한의 자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회의가 열리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보니 ‘정기적인 회의’를 자치권 보장의 기준 중 하나로 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인권을 이야기할 때, 특히 학교와 사회에 변화를 요구할 때 “말하고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듯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자치’에 대한 문제의식도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치’는 무엇을 논의할지부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며, 자치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두려움 없이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이 반영될 힘을 갖는 것입니다. 이번 교육에서 만난 참여자들은 “우리는 회의를 너무 많이 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회의를 적게 하고 싶거나 안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회의, 이미 답이 다 정해져 있는 회의, 해봤자 내 의견은 반영될 수 없는 회의라면 누가 그 회의를 하고 싶을까요?

참여자들의 결과물. "휴대폰 하는 것도 쉬는 것입니다"와 "말만 학생이 주인인 학교가 되지 말자"

여전히 남는 고민

교육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길, 문득 무력감이 몰려왔습니다. 진행 과정을 돌아보면 학생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발한 교류 덕분에 교육은 잘 된 편이었습니다.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인권의 필요성을 나눌 수 있었고, 학생인권조례 등 관련 정보에 대한 안내도 이루어졌고, 학생회 자치 활동을 통해 함께 만들고 싶은 의제, 바꾸고 싶은 것들을 직접 구호로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서로 힘을 주고받는 시간이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무력감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의 인권교육 요청의 주체는 누구일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반 학교에서, 학생들이 참여자인 인권교육을 학생들이 직접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던가? 그 동안 이루어진 수많은 학교에서의 인권교육은 모두 교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이번 교육도 담당 교사가 ‘들’로 연락을 주었기에 진행되었습니다. 그 분이 전해준 정보와 고민을 참고하여 교육 내용을 준비했는데 막상 참여자들을 만나보니 현실은 많이 달랐던 것이지요. 교사는 학생회가 ‘회의하는 방법을 모른다’며 평가하듯이 말했지만 정작 학생들은 ‘교사의 과도한 간섭으로 회의하기 힘들다’는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 서로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새삼 실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만약 학생들이 전체 학생을 대변하는 학생회가 아니라 자신들의 소소한 재미를 찾으려고 한다는 평가가 진실이라면, 재미를 찾으려는 학생들의 선택은 어떤 경험이 축적된 결과일까요? 학생들의 관심 폭이 실제로 좁아서가 아니라, 어차피 말해봐야 바뀌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학교 생활에서 권한을 행사해본 적이 없을 때 학생회 구성원들의 학생 자치에 대한 상상력 또한 제한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아는 것으로 그치는 건 아닐겁니다.

교사와 학생의 힘의 차이,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좁혀지지 않는 한 학교 인권교육에서의 어려움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등장하겠죠. 앞으로도 학교에서의 학생인권교육은 진행될 것입니다. 그럴 때 인권교육활동가는 어떤 태도로 학교 교육에 들어가면 좋을까요? 역시 학교는 안돼, 라는 절망감에 빠지지 않고, 한번의 교육으로 뭘 바꿀 수 있겠어, 라는 회의감에 빠지지 않고, 잠깐의 만남이지만 그 속에서 참여자와 함께 변화의 틈을 열어냈다, 라는 뿌듯함은 무엇을 통해 가능할까요? 오랜만에 학교로 인권교육을 갔다가 갑자기 많은 고민을 떠안고 온 듯합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함께 이런저런 고민을 이러쿵저러쿵 그리고 살짝쿵(?)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성: 난다(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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