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한문장] “자율적 기술은 인간 전체를 똑같이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율의 역사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자리-과학의 마음에 닿다』 전치형 지음, 이음, 2019

포토샵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손끝이 야물지 않아서 손으로 하는 건 다 못하는 나였다.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이 제일 싫었고, 국어시간에는 글씨를 못썼다고 숙제 안 한 애들보다 더 많이 맞은 적도 있었다. 내가 접은 종이학 날개는 언제나 짝짝이었다. 대학에서도 자연스럽게 나는 대자보 쓰는 일에서 빠졌다. 근데 문제는 대자보 붙이는 일도 잘하지 못했다는 거다. 내가 붙인 대자보들은 늘 수평이 맞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보수공사를 해야했다. 자를 대고 선을 그어도 삐뚤어지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으니, 저절로 반듯한 선을 그어주는 포토샵이라는 도구가 너무나 반가웠다. 포토샵 덕분에 나는 선전물을 만드는 작업에서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다.

과학기술은 군사 분야와 결합해 대량살상무기를 탄생시키거나 자본주의와 결합해 더 악랄하게 착취가 가능하도록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수학 공포증 때문인지 많은 활동가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이 현기증 나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포토샵 겨우 배웠는데 이제 영상 편집까지 배워야 하나 싶다. 하지만 이 변화는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외면하기보다는 적응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자율적 기술은 인간 전체를 똑같이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율의 역사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자리-과학의 마음에 닿다』중에서

문제는 변화를 따라가기만도 급급하고 버겁지만 사회운동 활동가라면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차원을 넘어서 그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적인 기술은 세상을 바꾸고 세상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나 권력의 작동 방식, 사람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택시기사나 버스기사의 일자리를 빼앗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운전은 남성의 일이라는 통념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남성의 자리에 비장애인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변화의 양상은 매우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자율주행 기술만 보더라도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시선으로만 보자면 운송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술이지만, 여성이나 장애인에게는 그들을 억압하던 한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일도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거다. 영상 찍어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버거운데, 누구나 영상을 찍어 올릴 수 있는 기술의 보급이 누구를 드러나게 하고 누구를 여전히 안보이게 하는지 누구에게 새로운 무기가 되고 누구에겐 새로운 폭력이 되는지도 알아야 한다니. 기술이고 나발이고, 과학이고 수학이고 간에 다 때려 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쩌겠나 싫다고 발버둥 쳐봤자 내 발만 아플 뿐. 기쁘게 해내긴 어렵겠지만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나. 나는 프로페셔널, 즉 다시 말해 전문 시위꾼이니까.

 

*작성: 이용석(들 후원인,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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