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지난여름의 상념(想念)

– 안영선(마나) / 들 활동회원

이천십구년 사월하고도 삼십일 째 되는 날,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끄적일 수 있음에 순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지난여름 갑자기 호흡곤란을 시작으로 아프기 시작한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빈혈 외에 심장, 폐 이상 없었는데 왜 그런 증상이 있었을까? 수술 전 3개월 동안은 고통스런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은 물도 마시는 게 힘들더라. 물도 조금씩 나눠서 천천히 마셨고 약도 안 넘어가서 캡슐을 버리고 물에 타서 마셨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숨을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걷는 것도 힘들어서 계속 누워있으면서 지낸 시간들이다. 그런 나날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면서 가장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던 건 외로움, 쓸쓸함이었다.

복합적인 상실감이라고 해야 할까. 계획했던 한 해의 목표가 일그러지면서 끝내야했던 공부도, 내게 좋은 기회였고 배우고 싶었던 ‘인권세미나’도, 함께하고 싶었던 소모임 프로젝트도 할 수가 없었다.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책도 못보고 생활비도 벌지 못하고 몸이 아프니 어느새 마음도 지쳐가더라. 무엇인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참 신기하게도 내가 정말 힘들고 지칠 때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더라. 학교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었고, 친한 친구들마저 연락이 없었다. 암은 아니니 ‘그냥 건성건성 듣고 있구나’ 마음으로 느껴지더라. 각자 개인의 사정과 상황이 있는 거고,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내심 서운했던 건 사실이다. 초반에는 ‘내가 소위 잘나가거나 능력이 있었다면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어리석게도 자존감 낮은 울분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그럴 수 있다고 쿨하게 생각이 드는데, 그 당시엔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어느 순간,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차분히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마음에 없는 말들을 쉽게 내뱉으며 살아온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마주했는가? 아픈 이들에게 “건강하세요~쾌유하세요~힘내세요” 외치면서도 겉핥기식이 아닌 마음을 다해 말을 하고 행동을 했는가? 한편으론, 나의 이 고통스런 시간들은 ‘인간은 결국 혼자이고 외로운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인가? 나이가 들면, 몸이 병들고 모아둔 돈 없는 인간은 ‘관계’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된 채 그렇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 죽음을 선택하거나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인건가? 참, 생각할수록 마음이 찢어지더라. 내가 죽는다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아니다. 난 아직도 못해본 것도 많고 추억되는 일도 없고 치열하게 살아본 적도 없고 신나게 놀아본 적도 없다. 난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아 왔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행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그럴만한 여유가 있었나? 나의 노후를 생각하니 한숨만 나오고 ‘이도 저도 아닌’ 삶에 대한 아쉬움만 가득하더라. 난 왜 아픈 몸에 대해 담담하지 못할까…내가 삶에 이토록 애착이 많은 인간이었나?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의 상실감과 우울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며 스스로 소위 ‘루저(Loser)’로 위치지우며 의기소침함으로 지내게 되었다. “내 탓이 아니야! 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해!” 마음으로 외치면서도 난 한없이 작아져만 가고 있었다.

 

내 모습이라 생각이 됐던 그림. 김점선 님 작품.

내 모습이라 생각이 됐던 그림. 김점선 님 작품.

 

이런 순간에 종종 전화를 주셔 안부를 물어주셨던 분이 계셨다. 외로움과 소외감, 상실감이 뒤범벅이던 시기였다. 전화가 오면 어릴 적 친구에게 수다를 떨듯 반가운 마음에 오랜 시간 전화를 붙들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소소일상 아픈 일들을 쏟아내는데도 짜증도 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구 쏟아부었던 말들 속에서도 기억해두고 검사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전화로 안부와 결과를 물어봐주시곤 했다. 힘든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안부를 물어봐주고 검사결과가 어찌 나왔는지 궁금해 하고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봐주셨던 그 마음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마음을 다해 물어봐주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되더라. 힘든 시간 속에서도 그렇게 힘을 얻기 시작한 것 같다. 인권감수성이란 이런 것일까? 일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불편함이 없는지 물어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거, 그래서 내가 힘을 얻게 되고 함께 할 수 있는 거! 나도 불편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해 안부를 묻고, 내 주변 누군가 투명인간은 없는지 살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했던 분. 늦었지만, “따뜻했던 말과 전해주셨던 책…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고맙습니다.”

수술 후에는 통증과 후유증이 있었지만, 아픈 몸에 적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상실감도 외로움도 경제적인 문제도 내려놓게 되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갔다. 마음이 아프면 몸에서 바로 증상이 나타나더라.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됨을 몸소 체험했던 시간들. 아픈 몸을 통해 ‘나이듦’과 ‘죽음’, ‘인간존엄성’에 대해 숙고하게 되고, ‘공통자원(Commons)’과 ‘기본소득’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시간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모르는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 인생이거늘, 사는 날까지 잘 살아야겠다. 올해 나의 소망이 있다면, 마음을 다해 사람을 대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 마지막으로 들 상임활동가님들~ 늘 응원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언덕길 옆에 나무 앞에서 찍은 모습

회복한 후 최근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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