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북토크에 다녀왔어요 ②

□ 과거현재미래가 뒤섞인 시간을 살아가기

 

단감: 이번 북토크에는 고 문지성 님 어머니 안명미 씨와 고 김용균 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주로 말씀을 나눠주셨어요.

호연: 네, 그날 오신 지성 엄마 안명미 씨의 인터뷰를 제가 했는데, 처음에 인터뷰 가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안명미 씨를 내가 언제 알게 됐냐면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를 했을 때 이야기 손님으로 몇 번 오셨거든요, 근데 말씀을 너무 잘하시는 거야. 그래서 아, 이 어머님은 평소에도 이렇게 여러 가지 고민을 하시면서 얘기를 활발히 하셨던 분인가보다 했었단 말이죠. 그런데 인터뷰 가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는데 전혀 아니었던 거야. 세월호 전에는 자기 얘기를 꺼내는 경험이 정말 없으셨고, 그래서 사람 앞에 나서고 자기 얘길 꺼내는 거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엄청 아프던 시기도 있으셨다더라고. 그 얘기를 듣는데, 기록하느라 제가 이분들과 5년을 만나왔는데도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내가 지성 어머님께 그런 분이신지 정말 몰랐다고 그랬어. 이번 책 준비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그날 내가 지성 엄마를 정말 다시 만났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개굴: 이번 북토크 때도 그 얘기 좀 해주셨었잖아, 나도 좀 놀랐었어요. 416TV로 방송 활동 하면서 언제나 앞에 나와 계셔서 활달하게 활동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보면서 각자가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다르구나 싶더라고. 그래서 안명미 님이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각자가 견뎌왔던 시간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어요.

단감: 사회적인 이유로 가족을 잃었을 때, 그것이 개인이 삭여야 할 슬픔이 아니라 사회에 진상을 묻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을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시금 보여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자리에 김미숙 님도 오시고 화재 피해 문제와 싸우고 계신 분들도 오셔서 서로 의지하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개인적 문제라고 생각하면 본인이 알아서 해결하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새삼 떠올리면서 더 힘을 내시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물론 반올림 분들처럼 이전에도 그런 싸움을 해오신 분들이 있었지만.

개굴: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 황유미 님 아버지 황상기 씨를 만났을 때 정말 좋아하셨잖아. 일종의 선배지.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에서 황상기 님이랑 같이 한 자리가 있었는데, 자식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답을 구하면서 싸우고 있는 선배 유가족을 보면서 너무 위로를 많이 받으시던 모습이 기억 나.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자기들은 몰랐고 관심 없이 지내왔었다고 사과를 하시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돌아가신 국가폭력 피해자의 가족분들도 유가협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화된 경험이 있고, 군의문사 가족들도 조직화 된 적이 있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아주 특별한 상황을 겪으신 분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사회적 사건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유가족들의 집단 구성이나 역동 등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그 이후에 사건에 대처하는 모습도 더 많이 참고하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정치가 사라지는 시대에 정치적 주체로 다시 서는 사람들

개굴: 그날 북토크에서 김미숙 님이 1년에 노동재해로 사망하는 사람이 2천명이 넘는다는 말씀을 하셨잖아. 이토록 큰 규모의 살인, 참사가 매년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고. 이게 산재 사망에 대해서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과 자식을 잃은 분이 전체 사고를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싶더라고. 각 현장에서의 죽음은 끊어져있는 것으로 보이잖아요. 그래서 하나하나의 개별적 사건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을 확 엮어서 매년 반복되는 하나의 거대한 재난참사로 얘기하셨을 때, 이분이 자기 아들의 죽음을 해석하기 위해서 굉장히 치열하게 고민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호연: 우리가 김미숙 님께 책을 보내드렸는데, 다 읽어오실 줄 몰랐어. 책 읽을 시간도 넉넉히 드리지 못했고, 바쁘고 힘드실텐데 책 읽어주십사 하는 게 괜찮은 건가 싶기도 했거든. 근데 책 받으면 다 읽는다고 하시더라고. 그러니까 엄청 열심히 공부하시고 이 상황에 어떤 이야기를 보태서 사회적으로 알릴지 늘 고민하시는 것 같아. 요즘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를 읽으면서 세월호 유가족들 생각이 많이 났거든. 신자유주의로 인해 모든 것이 경제화되는 맥락에서 정치가 사라지는 구조를 얘기하는 책이잖아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굉장히 정치적인 주체로 구성되는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거지. 정치 부재를 얘기할 때 사실은 사회도 부재한 거나 마찬가지인 거잖아요. 그런데 이 참사와 관련해서는 어쨌든 이 분들과 함께 하는 사회적 관계들이 있었던 거지. 시민 사회가 어떤 면에서 이 참사와 공감의 지점이 있었는지를 지금 정확히 짚기는 어려울 거 같아, 아이의 죽음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분들이 싸워가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를 같이 애도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만났던 거고, 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기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순간을 경험한 거지. 그분들이 다 그러잖아, 내 일이 아닌데 이렇게 손을 내밀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놀라웠고, 자기는 과거에 그러지 않았음을 성찰하는 시간이었다고. 그러면서 이 문제가 얼마나 사회정치적으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문제인지를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5년을 보낸 거 같거든요. 내가 인터뷰를 하면서 이게 참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 점이 있어요. 이런 변화가 사실은 자식을 떠난 보낸 사건과 함께 일어난 전환이잖아요. 그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기도 하고요. 내가 자식을 떠나보내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 슬프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 외에도 아주 여러 가지가 복합된 감정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사실 참사라는 경험은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완전히 조각나는 경험이잖아요. 그러니까 새로운 삶의 지형을 연다는 것은 정말 다 그렇게 산산이 깨져야만 가능한 건가 싶을 때가 있는데, 이렇게만 해석하면 새로운 삶을 위해 너무 큰 대가를 감수했다는 게 되니까 그렇게 간단히 정리하기는 어렵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계속 남는 것 같아요.

단감: 김미숙 님이 북토크에서 이 말씀 하셨던 게 떠오르네요. 정확한 표현은 다르겠지만, 나한테 남은 건 내 목숨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이 목숨을 걸고 계속 싸울 거다 라는 내용의 말씀을 하셨잖아요. 이번 책에도 난 사람 자체가 세월호인데 내가 1년 2년이 급하겠냐 길게 보면서 싸울 거다 라는 박혜영 님 말씀이 있기도 했고. 그런 말씀을 들으면서 이분들이 직면해야 했던 주요 고민 중 하나가 내가 여기서 죽어야 하는 걸까 살아야 하는 걸까 였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린 대개 그냥 태어났으니까 별 생각 없이 쭉 살아가는데, 이렇게 상실의 괴로움이나 허무 속에서는 죽음을 택해야 하나 삶을 택해야 하나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는 거지. 그 고민 속에서 살기를 결심하게 될 때, 그 결심의 근거가 싸워야 되겠다, 싸우기 위해서 살겠다 였던 것이 아닐까. ‘내게 남은 건 목숨밖에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을 다 잃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기 목숨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잖아요. 자기 목숨을 강하게 인식한다는 건 그만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거고. 내가 여기서 더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지? 를 계속 물어야 했던 시간을 보내셨기 때문에 그 고민의 결과를 저렇게 말씀해주시는 거 아닐까 하고요.

세월호가 어떤 사건인지 전 국민이 자기 말로 서술할 수 있는 그날까지

호연: 죽음과 삶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걸 늘 경험하셨기도 해서 그게 인식에 들어와 있는 상태인 거지. 우리가 5년의 시간을 기록한다고는 하지만, 그 5년이 사람들의 일반적 시간 감각처럼 쭉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잖아요. 이분들의 시간적 감각은 되게 분절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는 시간을 계속 품고 그렇게 지금도 멈춰있는 시간의 이유를 찾기 위해 현재를 사는 거고, 그 현재의 삶이란 싸우는 과정으로서의 삶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미래를 바꾸려고 하는 기대와 소망이 공존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분들에게 이 시간대가 과거현재미래의 선형적 순서로 구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시간적 구조를 생각할 때의 감각은 ‘세월호 사건은 과거의 일’인 건데, 사실은 그게 전혀 아니라는 거죠. 완전히 다른 시간의 감각 속에서 살고 있고 그것은 유가족이 아니면 실감하기 어려운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개굴: 김귀정 열사라고 91년에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었어요. 그때 내가 대학 신입생이었는데, 당시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분신을 하거나 거리에서 사망하거나 그러던 때여서, 죽음에 대한 공포, 분노, 무력감을 굉장히 많이 느끼던 시절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분 생각이 가끔씩 나요. 그분 어머니가 왕십리 행당시장에서 30년 넘게 노점을 하시는데, 자기 딸이 어느 날 나갔다가 갑자기 시신이 되어서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는 걸 보면서 몸에 열불이 나가지고 그때부터 창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잠을 못 주무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껏 추운 날에도 홑옷만 걸치고 창문을 열고 지내시고, 일할 때도 옷을 딱 채워놓질 못하신다는 거예요. 30년 가까이 그런 신체적 증상이 지속된다는 걸 곱씹으면서, 그럼 이분은 일어날 때마다 매일 그 일을 경험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분들은 정말 시간이 순차적 개념이 아닐 거 같아. 그날로부터 5년이 ‘흘렀다’ 이런 표현이 안 나올 거 같아요.

호연: 그래서 저는 세월호에 대한 얘기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알았다고 생각하는 게 되게 착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여전히 잘 상상이 안 되는 거 같아요.

개굴: 그런 일이 있었지 라는 방식으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내 말로 하려면 책 한 권 읽는 걸로 되지 않거든요. 수많은 이야기에 매일 적셔지는 과정이 있어야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애.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그럴 시간이 있었나? 그런 생각을 여전히 하게 되는 거죠. 세월호가 어떤 사건인지 전 국민이 자기 말로 서술할 수 있는 그날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말해보려고 하면 모르는 게 들통나니까.

 

* 다음 편에서는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정리 및 작성: 단감(활동회원)

 

[들을짓는사람들]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북토크에 다녀왔어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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