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쓰레기’와 ‘청소 전문가’ 사이
- 하나의 슬라이드로 노동의 존엄을 질문하다

지난달, 학교로 나가 청소년들과 노동인권교육을 하시는 분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주제로 교육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든 노동이 소중하다’는 자칫 교훈적으로 흐르기 쉬운 이야기나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을 안내하는 실용적인 이야기로 학교 노동인권교육이 채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좀더 깊이 이해한다면, 노동의 가치나 권리도 더 풍부하게 이야기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참여자들을 만났습니다.

첫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 일본과 한국의 환경미화 노동의 차이를 살펴보는 슬라이드를 준비해 갔습니다. 생활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은 시민의 일상에 가장 가까운 노동이면서도, 주로 야간에 이루어져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습니다. 슬라이드는 2016년 9월 <한겨레> 장은주 기자가 쓴 기사(“일본 청소차는 낮일..한국은 왜 밤에 할까”)를 참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일본 도쿄는 ‘햇살 아래 환경미화’, 서울은 ‘어둠 속의 환경미화’라는 인상적인 부제가 달린 기사이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환경미화

먼저 도쿄의 청소차량이 지닌 특징부터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청소차량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냄새도 배지 않는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조수석에 타기 쉽도록 차량의 높이를 낮췄다, 압축기계에 사람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자동 멈춤 장치가 달려 있다, 배기 가스통 출입구를 앞쪽으로 빼내 청소차를 뒤따라오는 노동자들이 배기가스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다들 보지 못한 청소차의 구조에 놀라워하시는 눈치였습니다.

‘햇살 아래 환경미화’가 가져올 변화는?

청소차량만 달라지면 그만일까. 무엇보다 이 차는 ‘햇살 아래’ 운행한다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리면서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햇살 아래 환경미화가 이루어지면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지를 여쭈어봤습니다.

“아무래도 사고가 덜 나겠죠.”

“밤을 새지 않아도 되니까 건강도 덜 나빠지겠죠.”

주로 노동안전과 관련된 변화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교통사고, 낙상, 손 베임 등 업무 중 다치거나 숨지는 일이 많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노동뉴스>의 최근 기사(“[남양주시 환경미화원] 밤새 3톤 쓰레기 치우니 동이 텄다”)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3년간 일하다가 다친 환경미화원은 무려 1,800명이 넘고 업무 중 숨진 분들도 18명이나 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건강이나 안전문제에 국한하여 변화를 짐작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부분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학생인권에서 0교시와 야자(야간‘타율’학습) 폐지를 주장해온 이유가 단지 잠자고 밥 먹을 시간을 빼앗아서가 아니라, 교육에서 학생을 공부하는 기계로만 위치 짓는 동시에, 학생들에게서 무엇으로 채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비어있는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기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남들과 다른 시간에 깨어있고 남들이 깨어 있는 시간에 자야 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야간노동은 단지 건강과 안전뿐 아니라 관계, 사회활동, 여가생활 등 인간의 삶에 총체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요? 환경미화 노동자는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면서, 시민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노동의 조건이 일터 안팎 모두에서 살아있는 존재에게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존엄을 고민하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쓰레기’와 ‘청소 전문가’ 사이

‘햇살 아래 환경미화’가 가져올 변화 중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제가 생각한 것은 바로 이분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의미였습니다. 시민들이 낮에 청소차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이유로 많은 지자체들이 근무시간을 야간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일하라’는 사회적 명령이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요?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고개를 숙인 채 일하거나 시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일을 조심스러워 하는 태도를 보이시는 것은 어쩌면 이 가혹한 사회적 명령이 낳은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선 <한겨레> 기사에는 45년간 환경미화 노동을 하다 은퇴한 오시다 고로(66) 씨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과거엔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처럼 다뤄졌다.”

이 말에 한참이나 멈춰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바라보는 인식을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에게 곧장 덧씌우고, 쓰레기를 대하듯 노동자들을 비위생적 환경에 내몰고, 쓰레기를 버리듯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함께 버렸다는 뜻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쿄에서는 환경미화 노동자를 “어떻게 하면 생활쓰레기를 줄이고 지역을 깨끗이 유지할지 지역 주민과 대화하는 청소 전문가”로 바라본다고 합니다. 지역 초등학교를 방문해 재활용 분리 및 배출 방법을 교육하기도 하고, 고령자나 장애인이 요청하면 집 앞까지 찾아가 쓰레기를 수집하기도 하고 홀로 사는 고령자가 며칠 동안 쓰레기를 내놓지 않으면 사회복지사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청소라는 공적 업무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시민들과 접촉하고 교류할 기회를 다양하게 열어둔다는 것입니다.

모든 노동이 소중하다는 말은 자칫 교훈적인, 당위적인 선언이 되기 쉽습니다. 노동의 의미와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환경미화 노동자를 ‘쓰레기’로 대하는가, ‘청소전문가이자 공공서비스 제공자이자 시민(이웃)’으로 대하는가.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 노동의 존엄을 대하는 사회적 감각입니다.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마지막으로 이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혹은 도쿄에서는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지를 질문해 보았습니다.

“교육!”

참여자 중 한 분이 이렇게 답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인권교육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이지만, 교육은 충분조건이 되기 어렵습니다. 모든 노동이 소중하다고 배웠다고 해서, 당장 내 곁에 악취가 나는 노동자를 마냥 환영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냄새가 배지 않는 업무 환경이 필요하고 업무 환경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도쿄의 변화도 도쿄청소노조의 강력하고도 오랜 싸움이 빚어낸 결실이었습니다. 환경미화 노동자의 95%가 가입한 도쿄청소노조는 생활쓰레기 처리는 민간에 위탁해선 안될 공공서비스라며 강력히 맞서 민간위탁을 막아냈고 임금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을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변화는 ‘싸움’과 ‘연대’를 통해 가능해집니다. 노동인권교육이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광주의 한국형 청소차

최근 광주 서구와 강원도 정선군에서 한국형 저상 청소차가 운행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환경 미화 노동자들이 차량 뒤에 매달려 일하지 않도록 발판을 없애고 탑승공간을 별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환경부가 최근 마련한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에는 작업시간대를 야간·새벽에서 낮 시간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근무시간의 최종 결정은 여전히 지자체에 맡겨져 있습니다. 주간근무로 전환하면 야간수당이 없어져 임금이 크게 떨어지니 환경미화 노동자들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구조지요. ‘햇살 아래 환경미화!’ 우리 사회에도 머지않아 이런 변화가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의 존엄에 대한 감각도 더 깊고 넓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 글쓴이: 배경내(‘들’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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