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한문장]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은 4월 16일, 5년 전의 그날처럼 나는 하루 종일 안절부절 못하며 시간을 보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국가는 자신의 보신을 위해 국민을 버렸고 진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인간으로는 견뎌내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국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채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갔던 그 날들, 날마다 눈물을 쏟아냈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그 때처럼.

그때의 질문은 하나도 풀리지 않은 채 5년이 흘렀다는 것이 더 기가 막혔다.

“왜 구하지 않았나?”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에 대해 정치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그들을 폄훼하고 조롱하고 비난하는 말과 행동을 공공연히 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들키면 안 되기에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이들에게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은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비쳤을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렸던 것이겠지.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나 싶어 화가 나다가 서글퍼졌다.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

그 해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나라의 어떤 고위 성직자도 보여주지 않은 관심과 공감을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행사 때마다 세월호 피해자가족을 만났고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행사장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다가 단식 중이던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보자 차를 멈추고 내려와 그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4박 5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리본을 유족에게 받아서 달았는데 반나절쯤 뒤 누군가가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며 “그에게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말했다고 한다.

교황의 이 말은 인간적인 고통 앞에서 자신의 입장과 정치적인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들의 비정상적인 행태에 몸서리를 치던 내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이 말은 지극히 상식인데 우리 사회가 너무 비상식적이다 보니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일 것이다. 누군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그를 그 고통에서 구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일일 텐데 우리 사회에서는 왜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러나 그뿐, 그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막말은 지치지도 않는다. 징글징글하다.

*작성: 고유경(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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