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이제는 사회가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어렵지 않게 ‘청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정책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년구직활동 지원금, 청년 추가 채용 장려금, 청년 전용 보증부 월세대출, 청년전용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청년 내일 채움 공제 등은 정부 및 공공기관의 대표적인 청년지원정책들입니다. 지역, 연령, 경제상황에 따라 지원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고용, 주거, 교통 등 다방면으로 확대되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가만 들여다보면 ‘일자리’ 중심이라 보편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청년구직활동 지원금과 청년 추가 채용 장려금은 물론 희망두배 청년통장, 청년내일채움 공제, 청년동행카드도 그렇습니다. 희망두배 청년통장은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의 목돈 마련을 돕는 제도로 현재 근로 중인 자를 대상으로 하고,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 대상 장기근속과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제도이며, 청년동행카드 또한 교통여건이 열악한 산업단지 입주 중소기업 근무 청년을 대상으로 합니다. 청년정책이 너무 제한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건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물론 일자리의 중요함을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연령대별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통념이 2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취업으로만 수렴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여 어떤 이유로든 취업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미완 혹은 충족되지 않은 상태로 규정해 버리는 건 아닌지 우려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일자리 지원이 아닌 삶의 지원, 청년유랑단

청년유랑단. 한 땀 쉬어가도 좋다고 말해주는 듯한 ‘청년유랑단’은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Training) 상태의 청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여기서는 소속감과 안정감 없이 홀로 외로운 유랑을 하고 있거나 즐거운 유랑을 통해 자립하고 싶은 ‘유랑청년’, 사회적응이 쉽지 않아 사회에서 적당한 중력을 받지 못한 채 떠 있는 ‘무중력 청년’들이 모여 각자의 흥미와 필요를 돌아보면서 자립을 준비해 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타의 청년지원정책들이 일자리를 중심으로 개인의 삶의 계획표를 만들어낸다면, 청년유랑단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 안에서 일자리도 배치해가고 있었습니다. ‘마음유랑’이라는 이름으로 마음 돌봄을 계획하면서 인권교육을 떠올리게 된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문제를 상담을 통해 치유해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이 아닌 내가 초라해지는 순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고통에도 우리 열심히 잘 살아왔음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나의 언어를 찾을 때 살아갈 힘도 길러질 테니까요.

20190320_청년지갑

 

 

청년유랑단과의 교육 모토는 ‘너무 무겁지 않게’였습니다. 교육을 받는다기보다는, 물론 인권교육은 언제나 참여자들을 교육을 받는 자리가 아닌 교육의 주인공으로, 청자가 아닌 화자로, 독자가 아닌 저자로 초대하려고 노력해오고 있지만 보다 더 그 부분에 무게를 실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소소하고 단출한 8페이지 미니북 만들기를 진행하였습니다. 각 페이지마다 다른 질문들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동시에 ‘내가 만난 꼰대/진상들’, ‘꼬매고 싶은 입-‘저 얘기만 안 들어도 살기 편할 텐데’’ 하는 질문들을 통해 사회구조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가씨~”(나는 아가씨가 아니라 직원인데…)
“다~ 커보면 알 거야.”
“다 너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의지의 문제야. 니가 기운 내려는 마음이 없는 거 아냐?”
“니가 노력을 안하니까 그렇지”
“○○이니까 ~해야지.(여자니까 요리해야지. 여자니까 담배피면 안 돼)”
“너도 나이가 있는데 ~”
“우리 청년들 힘내라!”, “청년들, 고생이 많네”
“넌 왜 사냐?”, “왜 그렇게 생각없이 사냐?”
“넌 안돼.”, “넌 실패할거야”
“너만 힘든 거 아냐”
“쟤만큼은 해야지”

 

다른 사람의 상태를 자신의 기준으로 정의내리고 판단하는 사람, 자기의 말과 의견만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 나이를 무기삼아 가르치려 들거나 함부로 무시하는 사람 그러면서 한 편에 이어지는 맥락 없는 파이팅. 개개인을 둘러싼 상황이나 관심사는 물론 사회경제적 상황도 뒤로 한 채 ‘네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일방적 응원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말하는 자신을 드높이려는 행위이기에 순간 도구가 되어버린 나를 발견하는 일이 반가울리 없습니다. 다른 유랑단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이야기는 나도 경험한 일이기에 또 어떤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노스러워서 함께 공감하고 격려하며, 미니북의 마지막 페이지를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격려와 응원의 댓글로 장식하며 첫 시간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우리의 바람을 현실로 만드는 정책제안

두 번째 시간은 첫 시간에 나왔던 ‘나를 모욕하는’ 사회적 통념들에 맞서는 일로 출발하였습니다. “니가 노력을 안 하니까 그렇지”라고 늘 개인을 탓하지만 “사회가 더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요? “무기력”하다고 나를 자꾸 나무라지만, “난 이런저런 일로 지금은 조금 쉼이 필요한 타이밍이라구요. 사람이 항상 힘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고 항변해보기도 하고, “니 나이가 몇인데 그러고 사니. 이제 결혼해야지.” 하는 걱정 뒤에 숨겨진 집장만, 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생애주기에 빠지는 순간, 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여자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현실을 바꾸는 정책들로 만들어 보면서 우리의 필요를 구체화하고 언어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대라고 다 건강한 건 아니야. 의료지원 강화해 주세요.”
“머리를 염색했다고 면접에서 차별을 해선 안되요. 외모, 학력 등 차별 없는 면접”
“구인 시 경력자만 뽑지 말고 초보자도 뽑아라. 이러면, 초보는 언제 경력을 쌓냐?”
“무엇이 경력인가요? 경력이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누가 정하나요?”
“청년에게도 안식년을 지원하라!”
“무료 기술교육 신청, 면접을 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년대출, 자격요건을 낮췄으면 좋겠다.”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모두에게. 기본소득!”
“다양한 가족을 인정해라. 남+여, 여+여, 남+남 그리고 반려동물, 반려동물은 이미 우리의 가족인데 의료보험 등이 안 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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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지원정책에 의료지원? 안식년? 좀 낯설게 들린 이야기들이 살짝 설명을 곁들이니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보이기도 했습니다. 건강은 개인의 선천적인 기질부터 생활환경, 사회경제적 조건의 영향을 받습니다. 비단 나이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어리면 혹은 젊으면 건강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청년정책에서 의료정책은 빠져있기 일쑤입니다. 지금은 백세시대,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20여 년 진짜 빡쎄게 살아왔는데 인생의 쉼표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너무나 정당해 보입니다. 일을 가르치지 않아도 적임자를 구하고 싶은 게 고용주의 마음이겠지만, 신입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경력이 만들어 질 수 있나요? 경력만 뽑지 말고 경력을 쌓을 기회를 달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노동자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가늠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당사자들의 위치에서 보니 청년정책의 구멍들을 어떻게 메꾸어갈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한편 청년대출과 관련한 의견이 흥미로웠습니다. 모두들 한 번쯤은 대출 앞에서 미끄러져 본 경험을 있기 때문에 자격요건을 완화하거나 이자율을 낮춰달라는 경험에 기반 한 요구들이 구체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학비든 교육비든 주거든 살아갈 수 있게 보장하라 혹은 내놓으라고 얘기하면 안될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기본소득을 요구해보자며 살짝 선동 아닌 선동을 했더랬습니다. 자꾸 개인들에게만 노력해라, 일해라 하지 말고 이제 사회가 청년들의,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 아닌가요?

*작성: 묘랑(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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