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놀이’와 ‘가해자옹호’너머 어딘가
서울시교육청 기숙사인권교육 후기

1. 지난 연말에 갔던 ‘중증’장애인 이용시설 당사자 교육 때 일이다. 교육을 요청한 담당 실무자로부터 “이용인들이 거의 말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직접 만나보면 실무자가 전해준 것 이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리란 기대 섞인 예상도 해보면서 교육 준비를 했다. 긴장 반 궁금함 반으로 도착한 교육장, 맨 앞에 앉아있는 분의 얼굴이 꽤 선명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휠체어를 타고 있던 그 분은 참여자 중에서 가장 많은 말씀을 해준 분이기도 했다. 실무자가 강사를 생각해준다고 이 분을 따로 교육생으로 밀어 넣은 건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비장애인처럼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분이었다. “요즘 하도 장애인권 말을 많이 하니까 자기 인권만 알고 오히려 남 인권이 무시되는 것 같아요. 종사자 분들의 인권도 보장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이 입에서 나온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맞게 들은 건가 싶어 되물어 보는 동안 뒤에서 지긋이 웃고 계시는 (활동보조를 위해 들어와있던) 종사자 분의 얼굴이 보였다.
최대한 ‘말’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해보려는 의도로 가져갔던 엽서들을 가지고 자신의 느낌과 경험을 이야기 나누던 중 ‘외출’ 경험이 화제로 등장했다. 엽서의 버스 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참여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시설에 있는 동안 바깥에 나가본 일로 놀이공원을 꼽는 참여자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예의 저이는 핵발전소 체험을 이야기했다. 물어보니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시설 장애인 대상으로 투어를 시켜준 걸 다녀온 모양이었다. 이 시설에 들어온 건 8년째이고, 서른이 넘었을 때 가족들이 여기로 보냈는데, 그는 지금 자기 현실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단 말을 덧붙였다.

교육이 끝난 후 정리를 하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강의하시려면 힘드시죠?”라고 묻는 그이로부터 “시간 내어 와주셔서 감사해요”라는 인사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날 유독 ‘감사하다’란 표현을 자주 하던 그이가 그런 말을 자주 할 수밖에 없게 된 혹은 그런 전략을 채택한 삶의 배경을 이해하려 하면서도 “나한테 도대체 뭐가 고마운 거세요”라고 되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돌아섰다. 길거리에서 “바쁜데 왜 장애인들까지 나와서 난리야”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고 했다가도 이내 “그래도 연말에 한 번씩 도와주는 사람들한테 감사하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던 분이었다.

(다행히도) ‘들’ 활동을 시작하고 내가 배운 게 있다면, 핵발전소 투어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이에게 곧바로 한수원이 원전마피아로서 얼마나 비열한 짓을 많이 하는지 말하기보다 외출다운 외출을 그런 식으로밖에 경험할 수 없는 시설 이용인으로서 그가 처한 삶의 조건을 살피는 연습이었다.

2. 꼭 인권교육의 자리에서 만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냥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대화들이 있다. 하나는 “나도/그들도 피해자”라고 피장파장 나오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국가/회사/학교 등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일체화하는 논리가 등장하는 경우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명예훼손 드립을 들고 나오는 경우, 문제제기의 내용은 안 듣고 말투가 싸가지 없다고 역공을 하는 이들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삼성이 망하면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겠냐고 걱정하는 이들이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어느 날 한 장소에서 저 두 논리를 다 구사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날은 그냥 일진이 안 좋은 날이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추진한 기숙사인권교육으로 찾아갔던 한 교육이 말하자면 그런 일진이 안 좋은 날에 해당할 법한 날이었다. 이날 내가 만난 이들은 언론에 입시비리를 알린 내부고발자 교사 이야기로 회자되는 고등학교의 1,2학년 자치회장단 학생들이었다.

이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까 고민 속에 준비해간 질문은 이렇다. “(선택1) 나에게 학교는 ~이다/~하다.” “(선택1) ~이 없다면/있다면 내 삶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선택2)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다.” “(선택2) 기숙사의 생활규칙 중 거부할 수 있는 쿠폰이 생긴다면 거부하고 싶은 규칙은?” 이 네 가지 질문 중 선택 하나씩 골라 적도록 요청했다. 군대나 감옥처럼 ‘시설성’을 가진 공간에서 발견되는 규율들이 기숙사에도 존재하리란 예상을 했었고, 동시에 한편으론 자신들의 입시성적을 위해 ‘스스로’ 선택해 들어간 곳이라는 조건에서 기인하는 분열적 마음을 살펴보고자 구성한 질문들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학 입시가 없다면 내 삶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이 없으면 잠을 더 많이 잘 수 있을 것이다”, “점호 싫어요”, “밤에 기숙사에서 치킨 시켜먹고 싶어요” 류의 답들이 많이 나왔다. 그이들이 갖는 약자성, 즉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 그리고 어른들 말 잘 들어야 하는 어린 존재로서 겪는 경험이 왜 부당한 것인지를 나누며 인권의 의미와 원칙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학생들은 거기서 더 진전된 논의의 위험성 혹은 불온성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밤 11시 45분 점호시간 전까지는 마음 편히 잘 수도 없는, 게다가 모든 학생이 1층으로 달려 내려가 점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다가도 “어차피 안 바뀔 거에요”라거나 “규칙이 있어야 학교가 돌아가고, 지금 시기를 참으면 잘 될 것이다”로 자기 결론을 내리는 모습이었다. 개중에는 그런 규칙들이 단지 자신들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급진적 입장을 표현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왠지 그 학생이 특이한 존재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서로 상반된 의견들을 내기도 하던 학생들이 갑자기 하나가 되어 목소리를 높인 장면이 있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불량학칙제보캠페인을 소개하며 오늘 교육 때 언급된 자기 학교 규칙 중 제보하고 싶은 게 있는지, 실제로 제보한다고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지를 물었을 때였다. 학부모들로부터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자중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그 학교의 ‘내부고발자’ 교사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꺼낸 것이었는데 학생들이 보인 격한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 교사 때문에 당장 고3 선배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고, 그 교사가 언론플레이로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고3 학생들이 어떤 피해를 봤느냐고 되물었을 때 돌아온 것은 구체적 대답이 아니라 “그 선생님 또라이”라는 말이었다.

“그 교사 때문에 학교 명예가 떨어졌다”와 “우리야말로 진짜 피해자”라는 논리. 자신들의 생활을 규율하는 가해자(학교)와 자신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학생들의 분열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들의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시간을 가지기엔 2시간이 짧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금수저’(로 추측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는 계급성에서 오는 인식을 건드리는 건 ‘교육’이 아니라 다른 관계와 세상을 만드는 ‘운동’인걸까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다. 그날 이들과 이야기 나눈 ‘인권’이 다만 자신을 피해자화 하는 알리바이로 활용된 건 아닐까 씁쓸했던 날이었다. 물론 이날 만난 학생 개개인을 깡그리‘금수저’로 퉁쳐버리는 오류는 경계해야겠지만 말이다.

3. 표면상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는 이들이 자신을 억압하는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을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종사자의 인권을 먼저 언급하는 시설 이용 장애인, 밤에 치킨 시켜먹으면 벌점을 주는 학교의 명예를 걱정하는 학생들. 이들의 생각이 자기 존재를 배반한 허위의식이라고, 당신이 속한 계급의 입장을 반영한 생각을 가지라고 계몽하려 한다면 그 교육은 아마 나 혼자 떠들다 돌아오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미 ‘포함된 자(비청소년/비장애인이라는 위치, 그리고 어쨌든 지금은 기댈 생계수단이 있다는 점)’의 위치에 서있으면서 학생들을 향해 장애당사자를 향해 왜 그렇게 학교(시설) 편을 드냐고 말하는 것은 치사하다. 자기 존재의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마음을 살필 수 있다면 그이들이 틀렸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설에 입소한 한 (거리)청소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쉬운 놈이 참아야지 어쩌겠어.” 시설의 답답한 규율을 불평하자 애인이 해준 말이라고 했다.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을 불쌍한 약자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지 자각한 상태에서 ‘선택’하는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볼 것인가는 그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자기 행동의 이유를 의식한 상태 혹은 스스로에 대한 거리감각을 유지한 상태에서 취하는 ‘적응’은 기성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과 겉보기에 똑같아 보일지라도 이후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잠재적 가능성의 차이라는 측면에선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닌 행동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는 상대주의로 ‘반인권적’ 생각들을 용인해주고 끝나는 것 너머를 어떻게 말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학생들이 말하는, “입시만 없으면 행복할 것 같다”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온) 이 학교가 나에게 고마운 존재”라는 분열적 인식 속에 택하는 행동이 어떻게 하면 ‘순응’이 아니라 ‘적응’의 전략으로 위치지어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 것인가의 고민이다.

기숙사가 ‘집’이라면 내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어야 하고, 야밤에 눈치 보지 않고 치킨도 시켜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단생활이니 규칙은 필요하다고? 그럼 그 규칙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 공간의 규칙을 만드는 데 1인1표라는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담보되었는가를 따지고 나면 가령 오히려 학생들이 엄격한 규율을 원하는데 어쩔 거냐는 질문을 다룰 여지도 생긴다.

기숙사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에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이 “학교랑 집이 먼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기숙사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기숙사가 ‘권리’라면 그 권리의 주체는 좀 더 뻔뻔해져도 되지 않을까. 내 집에서 왜 점호를 하느냐고 따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회(학교)가 교묘하게 주입하는 논리는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복지를 권리가 아닌 시혜로 둔갑시킨다.

내가 보기에 ‘점호’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시설institution’이라는 특성 자체에서 기인한다. 교도소나 ‘형제복지원’에서는 도망간 이가 없는지를 수시로 점검하기 위해서라는 ‘실용적’ 이유가 나오지만 기숙사에서 점호의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학교를 감옥과 동급으로 놓고 설명할 베짱 있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기숙사에서 점호의 유용성을 증명하려는 이들이 내세우는 최후의 논거에는 학생이 ‘죄수’는 아니지만 아직 미성숙하는 존재라는 신념이 자리한다. 미성숙하기에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옥에서든 학교에서든 동일하게, 그것이 왜 필요한지 누구도 명료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넌 그 규칙에 따라야 하는 존재의 위치에 있다는 자각을 체득시키는 매우 유용한 훈육의 도구이라는 점 동시에 직접적인 폭력성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점호는 ‘시설’이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까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에서 참여자들과 점호를 어떻게 없앨지 토론하는 것이 핵심은 아닐 것이다. 참여자들의 삶에서 길어진 이야기 속에 다르게 해석해볼 수 있는 질문과 이어지는 대화의 과정 속에 인간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질 것이다(라고 믿는다).

내가 ‘인권/교육’이란 이름으로 해보고 싶은 건 교육 참여자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활용되는 ‘인권’이 아니라 지금 삶의 조건을 직시한 상태에서 스스로 학대하지 않으며 언젠간 ‘송곳’이 될 가능성을 품어보는 작업인건가 싶다. 자기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을 때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무기력에 빠지거나 규칙에 문제제기 하는 동료를 비난하는 ‘수평폭력’의 가능성이 조금은 낮아지지 않을까. 가령 이런 훌륭한 ‘시설’을 제공해준 학교에 고마워하며 참아야한다가 아니라 나의 존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의 ‘언어’를 (주입이 아닌) 소통의 과정 속에 만들어간다는 것인데, 이는 나에게 여전히 구체적 실천의 차원 보다는 추상적인 (뜬구름 잡는 말장난?) 수준에서 먼저 생각하게 되는 질문인 것도 같다. 역시 난 머리만 큰 ‘먹물’이라는 자의식이 있다. “상대방의 경험에 대한 수용력, 호기심을 갖지 않는 예의, 취약한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동정하지 않는 사랑”(정희진)을 떠올리지만 여전히 현실에선 그저 오늘 일진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 드는 이 함정에 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의 과제가 남는다.

⁍ 정리 ‖ 날맹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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