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나면 병역거부 운동은 무슨 말을 해야할까?
소란63호(2018년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한국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법적으로 무죄일 뿐이지 사회적으로 병역거부가 인정받고 있는 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양심의 자유, 즉 개인의 권리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감옥 가던 걸 대체복무 해주게 하는 건데 왜 그렇게 기간 줄여 달라, 국방부 산하는 안 된다 요구만 하냐.”는 반응은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국가가 병역거부자들에게 베푸는 시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마도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도 양심의 자유와 병역거부가 사회적 권리로 인식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렇다면 평화운동과 인권운동은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요? 무슨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요? 우리는 병역거부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나눠야할까요?

병역거부 운동 활동가들은 오래 전부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고민해왔습니다. 우리는 병역거부 운동이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안 보내는 운동을 넘어서서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가 법으로 인정된 국가들을 보면 대체복무 도입 이후 병역거부 운동이 반군사주의 운동의 면모를 상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꼭 병역거부 운동이 아니더라도, 사회 운동의 성과가 제도화 될 때 본래의 저항적 맥락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항의 결실로 얻은 대체복무제도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병역 형태 중 하나로, 선택지가 하나 늘어나는 정도의 변화에 머물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어떻게 하면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의 맥락을 이어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아직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가치와 방향성, 전략들을 토론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짧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적극적 의미부여

지금까지의 병역거부자들에게는 ‘병역거부=감옥’이었기 때문에 병역거부가 자동적으로 징병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상담할 때 병역거부를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감옥에 가면 감옥살이는 어떻고, 병역거부자에게 필요한 도움은 무엇이고, 그중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어떤 것이고, 혼자서 감당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병역거부라는 행위가 왜 반군사주의 실천인지를 굳이 강조하지 않았던 거죠.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의 병역거부 상담을 어떻게 달라질까요?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가지 않는 상황만으로도 병역거부의 사회적 맥락과 의미가 많이 달라질 것이니 상담 내용도 달라져야 하겠죠. 저절로 의미가 부여 되던 것이 사라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는 상담 자료, 혹은 병역거부에 대한 교육 자료를 만들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거기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대체로 병역거부의 반군사주의 운동적인 성격이 강하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병역거부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전쟁없는세상이 생각하는 병역거부 운동은 군사주의와 징병제에 대한 저항이고 그럼으로써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평화운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역거부 운동이 역사적으로 어떤 정치적인 맥락을 형성해 왔는지, 그리고 병역거부권의 인정은 군사주의에 어떤 균열을 냈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 내용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평화 없는 대체복무제 혹은 평화운동과는 상관없는 대체복무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날맹 병역거부 기자회견 모습

날맹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병역거부의 의미를 우리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면, 병역거부의 의미는 양심의 자유 보장에만 그칠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 뿐만 아니라 양심의 내용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하늘이 부여한 권리는 없다

한편 병역거부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권리가 아니라는 것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권리들이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죠. 천부 인권이 어디있겠습니까. 권리가 아니던 것을 권리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노력하고 싸워온 끝에 법적인 권리로, 사회적인 권리로 인정됩니다. 아직 사회적인 권리로 인정 받지 못한 병역거부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아마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게 권리인지, 어떻게 우리가 가지게 되었는지도 희미해지겠죠. 마치 지금 여성 참정권이 백년 전 여성들의 엄청난 투쟁으로 만들어 낸 권리라는 것을 학교와 국가가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병역거부권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가 공교육이 권리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먼저 인권교육 평화교육이 그걸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맥락이 삭제된 권리는 결국 다른 권리들, 인권 가치들과 공명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나 하나 잘 살고, 우리끼리만 잘 사는 게 아니잖아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권리들이 끊임없이 생겨날 텐데, 권리가 확장되어 가는 맥락과 의미를 새겨야만 저마다의 권리들이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위한 그물로 서로 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의 병역거부 지지 기자회견 모습

2002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의 병역거부 지지 기자회견. 다른 권리들과 마찬가지로 병역거부권 역시 사회운동의 오랜 저항으로 얻어낸 성과입니다.

 

저항의 권리와 방법을 함께 나눠야 한다

저절로 생겨난 권리가 없다면, 결국 저항과 투쟁이 권리를 확장했다면, 권리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저항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병역거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겠군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인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가나, 거대기업 같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저항권이 우리의 권리라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저항권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저항의 방법까지도 서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역거부에 대입해서 보자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동원되는 것에 저항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권리를 위해 병역거부자들과 활동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싸워왔는지, 싸움의 성과이지 결과물인 대체복무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지점에서 한계를 노출하는지, 더 나아가 그 한계는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합니다.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병무청 자료집이나 국방부의 병역거부 안내서(이런 거라도 만들면 다행이긴 하지만)에서 하는 이야기 정도에만 머물면 안 되는 거잖아요.

2012년 사회운동설계 트레이닝 모습.

2012년 사회운동설계 트레이닝.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 함께 공부하고 연습하는 것을 평화교육, 인권교육에서 꼭 다뤄야 합니다.

 

아직까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습니다만, 대체복무제가 어떤 형태로든 그 모습이 결정되고 나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의 병역거부 운동을 열어갈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우리가 해야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갈고 닦아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전략도 짜야겠죠.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변화의 가능성은 바로 사회운동에 있으니까요. 군사화된 사회에 균열을 내는 건 평화운동, 인권운동이니까요.

*작성: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인권교육센터 들 후원인)

*소란 63호(2018년11월) ‘들을짓는사람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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