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인권교육, 자기 서사의 ‘저자’가 되길 응원하며~

“아저씨가 꼭 나빠서 그런 건 아닌데…”

“저를 예쁘다고 해서 그런 건 아는데…”

“만지려 했던 것 같진 않은데…”

“선생님이 저를 격려해주려 그러신 것은 알지만…”

누가 어떤 순간에 했던 말일까요?

말줄임표 뒤에는 어떤 말들이 이어졌을까요?

이 공통된 표현들은 10대여성 자기방어훈련에 참여했던 서울 모지역 수백 명의 여중생들이 자신이 경험했던 불쾌한 성적 대상화의 시선이나 성폭력/성희롱을 떠올리며 적었던 말풍선의 서두만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놀랍지도 않게도 이 문장 뒤에는 다양한 양상의 성폭력, 성희롱의 경험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적어낸 이 쪽지를 함께 읽으며 여성청소년들은 자기들로 몰랐던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건 모두 불쾌하다못해 인권이 침해되었던 장면을 이야기하는데 자신들이 가해자의 서사를 만들어주면서, 오히려 상대를 나쁘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을 향한 검열을 잣대를 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10대여성자기방어훈련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리곤 순간 다들 왜 자신들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의 편에서 생각하게 되었을까 의아해했다고 합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줄 알았는데 나도, 너도, 옆 학교 친구들도… 왜 한 두 명이 아니라 한 지역의 수많은 여학생들이 동시에 그랬을까요?

최근에 40~50대 여성들이 대거 참여한 교육에서 이 장면의 이야기를 전하자 많은 참여자들이 자신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했다고 기억해내셨습니다. 떠올리면 불쾌하지만 나를 불쾌한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려고 애쓰고 내가 그 자리를 못 피한 것을 스스로 자책하는 언어를 갖고 있는 자신들도 여중생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발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꺼내놓고 보니 짧은 찰나같은 장면이었지만, 그 순간 자신이 누구의 언어에 길들여져 있고, 자신의 경험을 누구의 언어로 해석했는지 알게 되신 표정이 역력해졌습니다.

사회적 통념

이 장면은 저희가 인권교육에서 주로 사용하는 피피티의 한 장면입니다. 메리트 스미스라고 하는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와 병원에 갔다가 경험한 것을 sns에 올려서 화제가 되었던 내용입니다. 아이가 남자아이에게 맞아서 다쳤고,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병원직원이 아이에게 “걔가 널 좋아했나보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스미스는 이 포스팅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이 서사의 가장 큰 문제는 남을 해치고 상대에게 ‘좋아서 그런 것이었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적 통념의 근원지가 된다는 점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10대여성 자기방어 훈련에 참여한 여중생들의 경험에서 놀랍게도 이런 서사가 지배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육에 참여한 다수의 여성 참여자들도 어린시절 ‘아이스케키’라고 외치며 자신의 치마를 들추고 갔던 남학생들에 분노해서 교사에게 말하면 어김없이 돌아왔던 답변도 이와 같았다고 입을 모아 공통의 기억을 꺼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을 붙여주는 순간들이 쌓여서 자신의 경험을 타인의 시선과 언어로 해석하는 레토릭을 몸에 새기게 된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통념이나 문화적 레퍼토리와 상호 작용을 하면서 서사를 구성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권교육은 참여자들이 끊임없이 이런 서사를 돌아보고 ‘관습적 이야기’에서 벗어나 인권의 언어로 자기 서사를 구성하는 ‘저자’가 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  글쓴이 : 정주연(루트, 들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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