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왜 개인이 아닌 가구의 소득을 묻는 거죠?”
질문을 질문하다 마주친 새로운 질문들

지난해 가을 발간된 <인권교육 새로고침>, 어떻게 읽고 계신가요? 책이 발간되고 후속 워크숍이 이어지면서 우리가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좀더 정리되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데요. 책의 2부에서 ‘왜 질문을 질문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야기를 주제로 한 교육들도 그랬습니다.

장학금 신청 서류가 수상하다

얼마 전, 장애인권교육을 하고 계신 분들과 질문 워크숍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저소득층 대학생을 위한 장학금 신청 서류에서 요청해도 되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에 대해 참여자들이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중간에 있었습니다. 그 기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여자들의 정보인권에 대한 감각뿐 아니라 인간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을 대하는 자세도 점검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문제가 보이시나요?

장학금신청시 요청해도 되는 정보는?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까지 물어보는 건 과도하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는 가구소득 조사할 때 이미 사용했을 텐데 왜 중복해서 물어보냐

형제자매의 직업은 대체 무슨 상관이냐

사진을 붙이게 하면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나

소득을 기준으로 한 장학금인데 왜 성적까지 물어보냐(등록금 버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성적이 낮은 이들도 있는데 성적이 전제나 요건이 되어선 안 된다)

자기소개서는 자기가 얼마나 불행한지 기술하도록 하는 폭력이다

이 질문은 2017년말 국가인권위원회의 장학금 제도 개선 권고문을 참고해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국가인권위는 대학생 장학금 신청 요건 서류에서 어떤 정보들을 요구하고 있는지 분석한 뒤,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 바 있는데요. 참여자들의 의견처럼 국가인권위도 비슷한 개선 권고를 내놓은 적 있습니다. 특히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것은 ‘가난을 증명하도록 하는 낙인 효과’를 낳고, 특히 성장환경에 대해 기술토록 하는 것은 내밀한 사적 영역에 대한 고백을 강제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해서 눈여겨보았던 권고였습니다.

앞서 다른 교육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을 때도 거의 비슷한 문제가 지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워크숍에서는 국가인권위도 문제로 판단하지 않았고, 저 또한 별로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왜 개인의 처분 가능한 소득을 묻지 않고 가구의 소득을 묻는 거죠?”

부양의무제와 오랫동안 싸워온 장애활동가였기에 발견할 수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날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을 문제 삼으면서도, 결국 그 등록금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가족이라는 생각에 어느 순간 나도 포박당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사실 교육권이 인권이라면, 대학교육도 소득에 관계없이 보편적 접근이 가능해야 할 겁니다(물론 대학은 필수가 아닌 하나의 선택이어야 하겠지만요). 공부라는 학습노동을 수행하는 동안 경제활동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으므로, 학생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조건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죠. 우리보다 복지제도가 공고한 나라들이 학생수당을 지급하는 이유일 겁니다.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의 복지제도를 구상할 수 있는 나라라면, 자녀 부양을 이유로 자녀의 삶을 옥죄는 일을 당연시하는 문화도, 자식에게 버려질까 두려워 노년의 도래를 두려워하거나 노년 자체를 혐오하는 일도 줄어들 겁니다. 이처럼 ‘왜 가구의 소득을 묻느냐’는 질문은 장애, 경제적 곤궁을 비롯한 여러 어려움을 개인적 불행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부정의의 문제로 볼 것인지, 나아가 개인과 가족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철학의 문제를 품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적절한 질문을 직접 빚어보는 경험

이날 워크숍에서는 참여자들과 직접 장애인권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질문들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는데요. 교육가들마다 매번의 교육에서 핵심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리해갈 텐데, 이를 어떻게 질문의 형태로 만들어 보면 좋을지, 그 질문을 통해 참여자들의 생각에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함께 찾아본 것입니다.

한 모둠에서 찾아낸 질문은 “장애인 인구수는 몇 년째 왜 늘어나지 않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받자마자 저에게도 뭔가 미심쩍다는 기분이 찾아왔습니다. 실재하는 장애인 수에 비해 등록된 장애인의 수가 훨씬 적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몇 년째 제자리 수라면 뭔가 분명 사회적 이유가 있을 테지요. 이 숫자의 비밀을 참여자들은 이렇게 알려왔습니다.

“예산에 맞춰 장애인등급제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마냥, 예산에 맞춰 사람의 삶을 재단하는 장애인등급제의 폭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잘 빚어진 질문은 이미 알고 있던 문제도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받아쓸 준비와 생각할 준비

새로고침s<인권교육 새로고침>에서 우리는 교육에서 질문이 수행하는 역할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질문받기 시작하자 참여자의 생각하기가 시작된다는 것(물론 생각하는 힘을 통해 새로운 질문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요), 질문은 참여자의 이야기를 초대함으로써 대화의 교육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리고 질문과 대답 사이의 여백의 시간을 둠으로써 환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여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참여자들이 인권 이야기에 좀더 주체적으로 접근할 기회를 만들고픈 마음에 질문의 역할을 고민해보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질문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안들을 궁리해 몇 가지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펴내고 워크숍을 이어가다 보니 질문의 역할로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가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배움을 얻는 시간을 제공한다는 것, 받아쓸 준비를 하는 참여자가 아니라 생각할 준비를 하는 참여자를 만나는 기쁨을 제공한다는 것 말입니다. 가르치는 교육에서 서로 배우는 교육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질문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 글쓴이: 배경내(들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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