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초등학생들로부터 오히려 배우고 온 사연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닌 저 자신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어린이/초등학생으로 산다는 건 어떤가요? 즐거울 때도 있겠지만 어떤 것이 바뀌면 좋을까요? 오늘 바로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왔습니다!”

지난해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과 인권 이야기를 나누러 학교로 찾아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권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인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인권이 그들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자기 삶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초등학생들이 적어준 말말말초등학생이 적어준 말말말

‘그동안 말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어른)의 눈치를 보느라 하지 못했던 마음 속 이야기’가 있다면 적어보자고 제안했다. 이야기를 분류하기 쉽도록 ‘학교, 집, 학원, 우리동네’로 나누어 적어 달라고도 했다. 처음엔 “그런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참여자도 있었지만, 이내 칠판이 꽉 채워졌다. 나중엔 제안된 공간 외에 정부, 기업,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어린이들까지 등장했다. 마음에 묻어둔 이야기가 어찌나 많았는지, 소중한 쉬는 시간까지도 칠판 앞을 가득 에워싸고 이야기를 계속 덧붙이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칠판을 꽉 채운 말.말.말

‘일기검사는 프라이버시 침해 아닌가. 왜 성적을 공개하고 애들 앞에서 망신 주냐, 공부 시간을 줄여달라, 비교 좀 그만해라.’ 칠판을 빼곡 채운 이야기들 중에는 예상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새롭게 들리거나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어 몇 가지 옮겨 적어본다.

 

구름3구름4 구름5

2학년 때 선생님께서 어떤 친구를 괴롭히던 애들을 계속 보고만 있고,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앞에 세워서 혼냈다. 내 얘기는 듣지도 않은 채!

수업시간 1시간, 쉬는 시간 1시간, 시간도 공평해야 한다.

시험 뭐가 중요해요! 공부만 하면 뭐가 되는데요?

여자애들 왜 생리대를 숨겨 다녀야 하죠?? 왜??

누나라고 꼭 양보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핸드폰 하지 말라고 하지 마라. 엄마는 하고 왜 나는 못하냐

나도 노력했는데 점수가 안 나오는걸 어쩌라고. 내 마음 알지도 못하면서…

못해도 다독여 주세요!

어린이가 게임중독이면 어른은 술, 담배, 욕 중독이다.

목욕탕에서 샤워기에 사람이 꽉 찼는데 나는 씻고 있었는데 뒤에서 할아버지가 ‘어린애가 노약자가 기다리는데 어허~’하면서 내 자리를 뺏음

놀이터에서 친구들한테 나가라고 하신 점, 시끄럽다고 내쫓으심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저 자신입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뇌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정부나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이들도 이미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문제에 다양한 관심과 요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기도 있었다.

구름6 구름7

군대를 이제부터 못 가게 하라

공휴일을 더 많이 늘리자!

뇌물 좀 작작 받아라

물가는 오르는데 왜 월급은 안 오르냐

댓글 막 쓰지 마세요

인권교육 하러 갔는데 받고 온 느낌!

분명 초등학교에 인권교육을 진행하러 간 것이었는데,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오니 인권교육을 받고 온 느낌이 들었다. 어린이들의 속마음에 귀 기울이다 보니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던 그 무언가’가 점점 더 허물어지는 기분도 들었다. ‘어린이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실제 나의 삶 속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른은 이런 존재이고 어린이는 이런 존재야’라고 단정 짓고 행동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들의 말들은 나에게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과 남과 비교해서 내가 좀 더 우월한 존재임을 증명하도록 강요받으며 자랐다. 솔직히 최근까지도 마음 깊은 곳에 주변 사람보다 내가 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야 비로소 안도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 역시 우리 부모세대처럼 내 자녀의 대학이나 직장을 자기 삶의 성적표로 여기게 될까 두려워지곤 한다. ‘착함을 강요받는 존재는 권리를 박탈당한 존재다’라는 말을 보고 가슴이 쿵 했었다. 나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가정에서,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마음도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기에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의식하고 살았다.

인권은 그런 나를 옥죄고 있던 족쇄를 벗어던지게 해주었다. 인권을 지속해서 만나다 보니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나의 존엄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면 좋을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인권교육에서 만난 어린이들도 그 마음들이 쪼그라들지 않고 이날 꺼내놓은 이야기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응답하는 이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어차피 안 바뀐다.’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로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안 되는 것인지!, 왜 꼭 그래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글쓴이 : 구름(장혜영)/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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