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처음엔 ‘개거지’, 지금은 ‘개이득’
영수증을 내지 않아도 되는 현금, 청소년들은 무엇을 경험했을까

2018년 결정적 한 장면. 기초생활수급씨와 기본소득씨의 대화

기관에서 올해의 결정적 장면으로 발표한 슬라이드(자몽 최종발표회).

 

‘들’이 청소년 자립지원사업 ‘자몽’을 통해 만난 한 청소년 기관에서 올해 기본소득 사업을 실시했다. 이 때 기본소득은 부양자의 소득이나 재산을 캐묻지 않고, 당사자가 일하려는 의지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매월 초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을 의미한다. 이곳의 활동가들이 청소년들의 적절한 삶을 보장받을 권리를 떠올리며 시작한 사업이었다. 보통 돌봄이나 교육 서비스 제공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청소년 집단에 ‘어디 썼는지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현금’을 개별 지급한 것이다.

몽실팀은 모니터링 활동의 일환으로 이 기관 실무자들의 고민과 청소년들의 반응을 중간중간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사업 초반 시점이던 지난 봄, 들은 이곳 청소년들과 ‘기본소득 썸타기’라는 이름의 교육을 진행했다.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서 기본소득이 갖는 의미, ‘탕진’해도 괜찮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의 교육이었다.

거주하는 모든 청소년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을 때 한분이 이렇게 답했다.

포스트잇(위): 처음 개거지 지금 개이득. 포스트잇(아래): 일단 기본소득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생소했다. 왜? 아무런 이득을 취하지 않고 그런 혜택을 주나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이라는 게 앨리스 뿐 아니라 모든이에게 제공되는 혜택이라라면 조금은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도움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기본소득과 썸타기’ 교육에서 청소년들이 적어준 답변

“처음엔 ‘개거지’, 지금은 ‘개이득’”

이분이 ‘개거지’라고 적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그간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거저 쥐어주는 돈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준다면 그 대가로 뭔가 요구하는 게 있을 것이라는 예감, 그리고 만약 그 돈이 자신을 불쌍한 존재로 보고 주는 것이라면 차라리 안 받고 말겠다는 복합적 반응이 섞인 대답이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너무 생소했다”고 말한 다른 분도 “우리가 그 사람들 이득을 취하게 하지 않았는데 왜 혜택을 제공해주나?” 의문을 남기셨다. 이 사회에서 사회복지 ‘대상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은지 그리고 이 사회에서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시선을 받게 되는지 역설적으로 드러난 반응이었다.

그리고 1년의 기본소득 사업이 끝나가던 최근 어느 날, 기본소득을 받은 경험에 대해 나누는 ‘수다회’ 자리에 초대받았다. 이 기관이 ‘수다회’라 명명한 데에는 ‘평가’라는 딱딱한 형식을 피하는 동시에 청소년들에게 1년간 돈을 받았으니 참석할 의무가 있다는 메시지로 전달되지 않았으면 하는 고민이 담겨있었다.

우리는 이번 ‘수다회’에서 청소년들이 “기본소득 받아서 좋았다”는 답 이상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질문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 이곳 활동가가 큰 도움을 주었다. 얼마 전 경험에서의 고민과 함께 ‘수다회’의 이야기 흐름에 대한 제안을 해주신 것이다. 고민이 됐던 장면으로 청소년 중 한 분이 최근 다른 공간에 나가 강연자로서 기본소득을 받은 경험을 나누는 자리에서 “축복이죠”라고 말한 일화를 얘기해주셨다. 이 사회에 강력한 ‘선한 빈민의 서사’가 고스란히 재연된 장면이었다.

받는 자의 자기 검열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발화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질문이 필요했다. 인권교육센터 들이 다른 기관에서 도입하는 기본소득 사업에 정책 자문을 한다는 가상 상황을 상정한 뒤, 이곳 청소년들로부터 조언을 받는 컨셉으로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제안하셨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됐다.

“기본소득 도입을 생각하고 있는 곳에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을 주의하면 좋을 것이다, ~을 잊지 말아야 한다 등)

받아보니 어땠냐는 직접적인 질문 대신 청소년들을 ‘전문가’의 위치로 초대하여 조언을 받는 방식을 통해 본인이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 질문이었다.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이끌어줄 여는 이야기를 고민할 때 이곳  활동가들이 다시금 도움을 주셨다. 상반기 ‘기본소득 썸타기’ 교육 때 청소년들이 했던 말, 기관에서 진행했던 청소년 개별 인터뷰 녹취를 분석하여 생각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주요 문장들을 뽑아주신 거다. 덕분에 상반기 교육 때 함께 했던 기억들을 환기하며 “저 때는 이런 생각들을 나눠주셨는데 지금은 어떤 것 같아요?” 물어보는 방식의 흐름이 가능해졌다.

“서비스 지원은 좋지만 (프로그램을 들어야 하고 그게) 내가 필요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 근데 현금 지급을 하면 때에 맞춰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본소득을 받기 전에는 하고 싶지 않은 직업인데도 돈을 벌기 위해서 참고 했지만, 기본소득을 받고 나서는 조금 부족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음은 청소년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중요한 삶의 의미라는 점,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다들 놀 것이라는 통념과 다르게 오히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더 한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새삼 확인되는 청소년들의 말이었다. 이 부분은 작년에 몽실팀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한 ‘청소년과 기본소득 실험의 만남’ 연구에서도 확인됐고 또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 반응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이제 그에 더하여, 우리가 아는 한 청소년 공간으로는 최초로 기본소득 사업을 진행한 곳인만큼 더 들어보고 싶은 지점이 있었다.

첫째, 불쌍함을 연출하거나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소득을 지급받은 경험 속에 타인과 공동체, 세상에 대한 청소년들의 생각이 변화한 부분이 있을까. 자신들은 기본소득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지만 남들은 그렇지 않으니 “전체에게 주는 건 아닌 것 같다”거나 “모두에게 주되 일하는 사람에게 더 주는게 맞다”고 생각했던 지점에 변화가 생긴 게 있을까, 얄궂은 호기심이었다.

선별의 경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받을만해서 받았다고 믿게 하고 동시에 노력하지 않는 타인을 밀어내고 결과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감각을 저해한다고 했을 때, 반대로 자격을 묻지 않는 환대의 경험은 공동체 혹은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감각을 증진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석유 자원을 통해 얻은 수익을 주민들에게 분배하는 일종의 기본소득 제도(PFD)를 시행해온 미국 알래스카 주의 여론조사가 떠올랐다. “세금 부담이 커지더라도 PFD를 유지하는 데 찬성하는가”를 주민들에게 물었을 때, 제도 시행 초기에는 반대가 높던 것이 30년이 지나 다시 물었을 때에는 세금을 더 내더라도 제도가 유지되길 원한다는 답변이 더 높게 나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30년에 걸쳐 변화한 감각을 고작 1년도 안 되는 시간을 두고 청소년들에게 물어보려 한건 지나친 욕심이었나 싶지만 그럼에도.

“어떤 청소년들은 열심히 일하고 어떤 청소년들은 펑펑 쓰는데…근데 제 생각에는 청소년들에게는 그냥 다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 주게 되면 그 돈을 허튼데 쓰는 사람들은 그 돈을 아무렇지 않게 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또 다 주지 말라는 건 아닌데…참 어렵죠 이게?(다같이 웃음)”

동일한 청소년이 해준 말이었다. 사회복지를 둘러싼 보편성과 선별성이라는 두 경합하는 서사가 동시에 읽힌다. 즉, 인구 집단으로는 부분적일 수 있으나 누군가에 ‘딸린’ 존재의 위치에서 경제적 자율성을 갖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다 줄 필요가 있다는 ‘보편성’ 원칙, 그런데 그냥 주면 허투로 쓰기 쉽고 재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더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줘야 한다는 ‘선별성’이 교차하며 등장한 것이다. “참 어렵죠 이게?”라며 웃는 이 분의 말에서 기본소득 사업이 좀 더 지속적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음을 믿는다.

또 다른 궁금함은, 지원에 고맙다고 굽실거리지 않아도 되는 관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위계를 없애고자 노력하는 이 공간의 지향이 공동체 차원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였다. 이날 ‘수다회’에 앞서 가진 기관 실무자/활동가 면담 때 들은 얘기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

“청소년들이 이제는 우리랑 놀고 싶어하지 않는다.(웃음)”

예전에는 활동가들이 있는 사무실에 가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으며 찾아왔다면 지금은 “나 영화표 있는데 같이 갈까? 밥 쏠게”와 같은 말을 청소년들로부터 듣게 됐다는 것이다. 눈치보는 일이 줄었다는 점 그리고 정기적인 소득이 보장되면서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상상의 폭이 넓어졌고 결과적으로 청소년들과 나누게 되는 대화의 내용과 주제도 다양해졌다고 했다. 물론 조건 없는 현금지급만으로 촉발된 변화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하지만 이 공간이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어떤 관계를 맺고자 꿈꾸는지, 그 지향과 철학 속에서 기본소득이 등장할 수 있었고 지금과 같은 사무실 풍경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믿을 수 없으니 줄 수 없다가 아니라 그냥 주는 행위를 통해 청소년 입장에서 신뢰받는 경험이 만들어지고, 실무자들은 좀 더 여유를 갖게 된 청소년들을 만나며 한결 더 의미있고 보람 있는 노동을 하게 되는 선순환. 어디에 썼는지 왜 물어보냐고 따질 수 있게 된 청소년들은 이제 다른 지원 사업에서는 왜 영수증 증빙을 꼬박 요구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청소년들의 반응에 활동가들은 반가워하며 기관의 사업을 점검하며 청소년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이어간다. 그리고,

 

기본소득수다회 결과물.

“기본소득에 대해 개념을 잘 설명해주고, 기본소득 받는 입장을 잘 고려하여 기본소득을 줄 때 갑질을 하지 않아야 되고, 30만원은 너무 적으니 적정량 50만원 상당의 금액을 지급해야 하고, 어디다가 지출했는지 물어보지 않고 쿨하게 주어야 한다. 주는 사람은 편견을 갖지 않고 기분 좋게 주고, 받는 사람도 기분좋게 받아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메리크리스마스, 해피뉴이얼. I LOVE YOU”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는 곳에 정책 자문을 요청했더니 이렇게 공들인 응답을 받았다. 받는 입장을 잘 고려하라, 주면서 갑질하지 마라. 이렇게 말한 청소년은 월 30만원을 준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원래 도움 받는 걸 안 좋아해서 싫어했다”고 말했던 분이었다. ‘주셔서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보장하라, 내놔라’ 외칠 수 있는 것. ‘문제로 정의된 자가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는 외침을 떠오르게 하는 이 멋진 공동체에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듬뿍 담아 보낸다.

*작성: 날맹(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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