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가 함께 하는 교육에 다녀와서

풀피리님은 언어표현이 서툰 자폐성 발달장애인입니다. 그이는 최근에 어렵다는 취업의 세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이가 일하는 곳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가 함께 운영하는 협동조합입니다. 그이는 매일 이곳에 어머니와 함께 출근합니다. 이 협동조합에 인권교육을 갔을 때 풀피리님을 만났습니다. 교육에는 대부분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이 참여하셨고, 당사자는 풀피리님이 유일했습니다.

풀피리님의 특징은 매일매일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에 집중하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날은 교육장 뒤편에 걸린 당일 교육을 소개한 플랭카드에 꽂히셔서 계속 그것만 주시하며 웃거나 가끔 중얼중얼거리고 계셨습니다. 인사 나눔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도 자신을 다섯가지로 비유하여 적어보라고 나눠준 종이에 이름만 크게 써두고 역시나 플랭카드에만 시선을 두고 계셨지요. 마치 사람을 대하듯, 플랭카드와 대화라도 나누듯 계속 웃고, 뭐라 뭐라 하고, 보고 또 보고… 그래서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풀피리님이 참여하곤 있지만 교육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는 저도 처음에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이의 중얼거림이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무언가 제가 참여자들에게 질문하거나 강의하는 내용의 어떤 특정 순간에 나온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가 발언을 할 때는 그 목소리가 더욱 커지거나 이야기를 차단하는 듯이 특이한 발성의 소리를 내시곤 하셨지요. 그리고 제일 듣기 싫다고 느껴지는 대목에선 일어나서 돌아다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풀피리님이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는 강렬한 표현을 하셨지요. 다름이 아니라 그이 어머니가 장애 자녀를 두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시며 “제가 저 아이 걱정에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너무나 힘들게 살아왔어요. 제가 죽으면 저 아이가 어떻게 될지 정말 걱정입니다.” 대략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하던 순간이었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풀피리님이 갑자기 아주 또렷한 말로 “신경 꺼”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단호하고 반복적으로 “신경 꺼, 신경 꺼, 신경 꺼….” 그리고 급기야는 일어나서 강의장 안을 왔다갔다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어떤 반응들이 나왔을까요?

아마 표현들은 안하셨지만 교육에 참여했던 발달장애인 부모님들 대부분 풀피리님이 외친 소리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님 이야기에 대한 그이의 반응이었음을 감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다들 섣불리 알아들은 채는 하지 못하시고, 풀피리님의 왔다갔다하는 반응만 달래려고 하셨지요.

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부모기에 더 잘 알아듣고 이해할 거라 생각하지만, 일상생활의 소통은 다른 이들보다 잘 될지 모르지만 보호의 마음이 가장 앞서기에 깊은 곳에서 나오는 그이들의 마음을 알아채기는 오히려 어려운 경우를 교육하며 종종 봐왔습니다. 풀피리님은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는 분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규정하는 어머님의 이야기가 몹시 불편했던 것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말을 잘 하게 될까요?” 사실 부모가 의미하는 의사소통은 자녀가 어서 빨리 말을 잘하게 되기를 바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소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말과 글을 가르치고 교정해주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부모는 아마도 곧, 혹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결국, 자녀가 또래만큼 유능한 의사소통자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일단은 이같은 시도를 중심으로 교육에 집중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실 발달장애인들은 거의 모든 의사소통의 지점에서 다양한 실패를 경험하기 쉽습니다. 의사소통 의도가 약하고,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이 적으며,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렸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고, 함께 대화하는 중에 상대에 맞추어 자신의 반응을 조절하는 모습을 잘 보기 어렵고, 무엇보다 눈에 띄게 미숙한 언어표현을 사용하는 발달장애인의 (개인차는 있지만)특성 자체가 의사소통의 걸림돌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질문은 계속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말을 잘 하게 될까요?” 거나 “내가 어떻게 해줘야 아이의 말이 늘까요?”를 오가며 반복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이들과 의사소통을 시도하려면 발달장애인의 언어능력을 늘리려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 나, 혹은 우리들의 의사소통 스타일과 태도 변화에 우선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발달장애인과 소통이 어렵다면 아직 우리가 그 발달장애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진정한 소통능력이란 어휘를 현란하게 잘 구사하느냐가 아니라 나와 처지가 다른 타인의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하는 듣기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 제목으로 쓴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는 청소년 인권운동에서 나온 외침입니다. 이 문장이 이 교육을 떠올릴 때 제일 와닿았습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의사소통 능력이 충분히 가능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필요한 일이고 가능한 일입니다. 발달장애인이라 해도 현재 그이의 소통능력 안에서 가능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면 아직 우리가 그 발달장애인을 충분히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풀피리님은 이 글을 쓰며 제가 붙인 가명입니다. 실명을 밝히기 그래서 지어본 것입니다. 가늘게 떨리는 풀피리 소리는 작은 떨림과 불안한 음색으로 곡을 연주하지만 그 울림이나 감동은 어떤 악기 못지 않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언어표현도 우리가 잘 듣을 준비를 해간다면 소통의 채널을 점차 맞춰가게 되지 않을까요. 벌써 두 달여 전에 다녀온 교육인데 지금도 그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풀피리님의 “신경 꺼!”는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나에게 묻지 않고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정주연(루트),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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