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학생의 날, 두발자유·청소년참정권·스쿨미투에 응답하라!
주목해야 할 회견문과 발언문 모음

181102학생의날-창살

 

[2018년 학생의 날 선언문]

나가자! 창살 밖으로청소년의 인권을 가두는 창살을 무너뜨리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차별교육에 저항하며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이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학생들이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촛불집회의 시작을 열었으며, 2016년에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함께 외쳤던 청소년들이다.

그러나 지금 학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학생들에게 지금의 억압적인 학교와 사회는 일제강점기와 다르지 않다. 학생인권이 ‘학생다움’의 감옥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생다움’이라는 명목으로 부당한 학칙에 의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열 당한다. 학생에 대한 체벌은 교육/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교사-학생 간 위계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은 그 위계적 관계 때문에 쉽게 은폐된다. 학생들은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수업을 들어야 하며, 입시중심의 경쟁교육과 과도한 학습시간으로 인해 휴식권은 커녕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은 그저 말뿐, 부당하고 불합리한 규칙을 바꿀 권리, 학교 운영에 참여하여 의견을 반영할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학교 밖의 청소년인권은 어떠한가? 청소년인권은 ‘미성숙함’의 감옥에 갇혀있다.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보호/교육의 대상 혹은 미래의 시민으로만 여겨진다. 지금, 여기에서,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에도 지금은 ‘없는 셈’ 취급당하며 숨죽이고 살 것을 강요받는다. 청소년의 자발적 활동과 참여는 한정된 자원과 틀 안에서만 허용되곤 한다. 이러한 현실은 대한민국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으며 유일하게 ‘만 19세’ 선거연령 기준을 고집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청소년의 인권을 가두는 창살을 무너뜨리자. 더 이상 갇혀있지 않겠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 ‘학생다움’이라는 감옥을, ‘가만히 있으라’는 창살을, 연대의 힘으로 무너뜨리겠다. 우리의 목소리는 오늘의 외침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시민들의 힘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꿔온 것처럼, 우리는 학교와 교육을 바꿀 것이고, 사회를 바꿀 것이며,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꿀 것이다.

학교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청소년참정권 보장하라! 학생인권법 제정하라!

우리는 더 이상 갇혀있지 않겠다! 우리의 힘으로 감옥을 무너뜨리자!

인간답게 살고 싶다! 나가자, 창살 밖으로!

2018112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선거연령 하향 농성단 청소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봄 선거연령 하향 촉구를 위해 국회 앞에서 삭발식을 하고 농성에 함께 참여했었던 김윤송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당시에 고작 참정권으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참정권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재의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거대하고 복잡한 체제와 구조를 가진 국가라는 틀 속에서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참정권은 단순히 제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 이상으로 우리가 가정, 학교, 일터 등 모든 사회 구성에서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이기도 합니다. 배제되는 존재들은 더 쉽게 비참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청소년들의 삶을 보십시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늘 양육자와 교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를 받으며, 사소한 일 조차도 허락을 구해야 하고,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서조차 쉽게 의견을 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청소년들의 낮은 지위 때문에 청소년들은 이보다 더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기 쉽고, 이미 억압에 익숙해진 존재들에겐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것도 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입니다.

청소년들의 참정권이 조금이라도 더 보장된 사회였다면, 청소년들의 존재가 좀 더 뚜렷하고 온전하게 인정되는 사회였다면, 청소년인권과 학생인권의 현실에 대해서도 정치인들이 좀 더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요? 다른 시민들도 우리의 목소리를 좀 더 쉽게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청소년 참정권 농성은 단순히 선거연령 하향이라는 선거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는 우리의 존재를 외면하지 말고 똑똑히 보고 들으라는, 청소년을 같은 인간으로 봐달라는, 동등한 시민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해달라는 호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농성의 목표였던 선거연령 하향은 실패했고, 결국 지난 지방선거에서 역시 청소년들은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삶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청소년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도, 학생인권법제정도, 아직 이르다고 미룰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국회와 정치는 응답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승리의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바꾸라고 외치고 요구해서 잠깐 주목을 받고 결국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쓸모가 있고,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이제는 승리의 경험으로서 꼭 학습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구호 하나 외치고 마치겠습니다.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안녕하세요.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소속 박하은입니다. 현재 스쿨미투를 비롯한 미투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 시간에도 또 어디에선가 학생들은 여전히 숨죽이며 부당한 일을 참아내거나, 혹은 용기를 내어 폭로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졸업생 신분으로 저희가 재학 당시 경험한 교내 권력형 성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타파하기 위해 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쿨미투를 진행하며 깨닫게 된 것은 교내 성폭력 및 부조리는 틀림없이 개인의 문제뿐만이 아닌, 그러한 개인을 묵인하여 양산해내는 사회구조적 문제이며 이는 ‘모든 학교의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용화여고의 경우, 총 18명의 교직원에 대한 파면, 해임, 정직, 등의 징계 절차가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이 또한 저희 학교 내에서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저희 학교의 문제에 있어 지속적인 해결책이 되어주진 못할 것입니다. 저희가 목표로 하는 것은 특정 교사의 교권 박탈이나 혹은 특정 학교 내 체제의 붕괴가 아닙니다.

오래 묵고, 곪아버린 특정 선생들에게 자기검열과 자기반성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와도 이 사회가 용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생을 비롯한 기간제 및 젊은 교사들도 학생들과 별 다를 것 없는 대우를 받기 쉽상입니다. 몇몇 교사분들 역시 기존 고착화된 권력 구조에 편승한 교사들의 ‘라인’을 잘 타야 학교에 남을 수 있고, 그들에게 같은 교사 취급조차 못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내 지위가 굳건한 선생들은 우리를 자신들과 동등한 사람 취급이 아니라 아랫사람 취급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렇게 학생들과 더불어 교사들마저, 학생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모르거나, 알게 되어도 현실에 부딪혀 암묵적으로 수긍하게 되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학교를 무너뜨리는 대신 이 세상의 구조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근본적인 사회 구조적 부조리의 원인을 뿌리 뽑기 원합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교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같은 뜻을 가지고 우리는 이렇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부조리를 답습하는 몇몇 교사들과, 학교 행정을 비롯한 이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스쿨미투로 이어지고 있는 현 학교 세태에 대한 고발과 행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내가 아니면 누가하겠습니까? 내가 조금만 더 분노하고, 내가 조금만 더 행동하면, 그 다음 사람들은 조금 덜 분노하고, 조금 덜 슬퍼하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동생은, 내 후배는 어쩌면 조금 더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당해놓고 내가 참지 않아도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 그런 세상을 만듭시다. 미투가 뭔가를 망쳤다, 미투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미투 운동이 진행 중인 학교에 배치된 상담교사마저 “여러분 미투 때문에 많이 소란스럽죠?” 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미투 때문에 힘든 게 아닙니다. 미투를 외치게 만든 사회 때문에 지금까지 ‘힘들었었던’ 거고, 이제야 그 아픔들을 토해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지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대해달라는 것. 한 사람을 어떤 사회적 틀에 규정하고 억압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지금 이 법대로라면 그들은 당당히 학교로 돌아와 우리를 더욱 억압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법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것을. 권력이라는 것은,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적게 가진 자를 보호하기 위해 갖는 것이라는 것을. 이 너무도 당연한 것을 잊고 살게 만드는 세상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바꾸어야 합니다.

학생 인권의 문제는 법과 권력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상식적인 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었던 잘못된 일들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대한민국이여, “스쿨미투에 응답하고 학생인권법 제정하라! 제정하라!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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