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학습지 교사의 일터에 ‘웅크린 말들’
(-)누계에 맞서는 이들의 전략

 

 

․계란 : 에어컨 고치다 추락사 한 사건 후 삼성전자 에어컨 수리 노동자가 자신들을 일컫는 말

․분급 : 이동시간을 다 빼고 수리하는 데 걸린 시간만 분 단위로 계산하여 지급하는 임금을 일컫는 말

 

‘계란’, ‘분급’은 에어컨 수리 노동자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말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알아듣기 힘든 말이다. 의미를 알게 되면 이보다 더 노동자의 처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싶어 씁쓸하다. 이문영이 쓴 <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恨국어 사전>에서 에어컨 수리 노동자의 ‘웅크린 말들’로도 소개했다 한다.

웅크린 말들 표지

나는 얼마 전 학습지 교사 노동조합 교육에서 알게 됐다. ‘토토즐’이라 이름 붙인 매달 첫 주 토요일 모임이었다. 교육에서 나온 학습지 교사의 ‘웅크린 말들’ 중 (-)누계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누계

학습지 교사의 월급은 관리하는 회원수*과목당 월회비*수수료율로 정한다. 경력과 실적에 따라 수수료율이 다르고, 월급도 다르다. 상수는 과목당 월회비다. 회원 수, 과목 수, 수수료율, 실적 등은 매달 또는 주기적으로 변동이 있다. 변동이 많은 건 회원 수와 과목 수다. 지난달보다 회원이나 과목 수가 늘어나면 ‘순증’이 되고, 줄면 ‘–(마이너스)’다. –(마이너스)가 쌓이는 걸 ‘(-)누계’라 한다. (-)누계 값에 따라 실적을 평가하고 실적에 따라 수수료 등급을 매기고, 이에 따라 월급도 들쭉날쭉 한다. 매달 들고 나는 돈이 (-)누계와 연동이 되니 신경 쓰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어떤 교사는 (-)누계를 피하기 위해 탈회한 회원의 회비를 대납한다. 붙들고 있는 회원 수가 늘어나면 월급을 잠식당하고 빚이 늘어난다. 신문기사로 봤던 영업실적 강요와 마이너스 통장 빚, 위약금 압박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 등이 모두 (-)누계와 관련이 있었다. 학습지 교사는 일주일 중 3일 정도 오전 9시~10시 사이 지국에 출근해 ‘미팅’, ‘집체교육’ 등을 받는다. 회원 관리는 보통 오후 1시~밤 10시 사이에 한다. 한 회원당 2~3과목을 하면 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30분 남짓이다. 하루에 10여 명의 회원 집을 이동하면서 수업을 하느라 10분, 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써야 하고 따로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무릎과 허리 통증, 위장장애에 시달린다. 사력을 다해 휴회를 막고 회원수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 봐도 (-)누계를 피하긴 어렵다. 개인사업자로 위장된 학습지 교사는 (-)누계를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회사는 학습지 교사와 위탁 관계를 맺었을 뿐 근로기준법상 사업주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특수고용 형태가 그렇듯 사업주는 눈꼽만큼의 위험 부담도 지지 않는다. 노동자에게 빚이 쌓이는데 회사엔 이윤이 쌓이는 이상한 고용 형태다.

(-)누계에 맞서는 순증 “0”

노동자를 숨막히게 하는 (-)누계에 대해 재능교육 노동조합은 순증 “0”으로 맞서고 있었다. 재능교육 각 지국에선 매달 순증이 “+1”이라도 있으면 성과급을 준다고 한다. 이 성과급은 가짜 회원을 3~4명 잡고 있어도 상쇄가 될 만한 돈이라 한다. 교사는 (-)누계를 피하고 회사는 외관상 안정적인 매출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고육지책 같아 보였다. 실적과 영업을 강요하며 노동자를 옥죄어 왔던 문제를 얄팍한 성과금으로 숨기려 한 회사 전략에 맞서 재능교육 조합원 중 일부는 매달 순증을 “0”으로 잡는다고 한다. 성과급을 안 받는 방식으로 성과급의 문제를 드러내고, 순증을 “0”으로 잡아 회사의 보여주기식 매출 증가에 절대 기여하지 않으며, (-)누계로 인한 심리적 압박도 벗어나는 꽤 괜찮은 전략이었다. 성과급을 마다하는 조합원을 이해할 수 없다며 갸웃거릴 관리자의 표정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누계에 순증 “0”으로 응수하는 조합원의 전략에 (-)누계가 ‘웅크린 말들’로만 들리지 않았다. 앞으로 (-)누계를 떠올리면 부당 영업 강요에 오랜 기간 맞서온 노동조합의 힘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누계, 말해지지 않았다면 깊게 이해하지 못했을 말이다.

 

  • 글쓴이 : 수정_이갈리아(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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