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회의 문화를 돌아보는 말, 말, 말
노조와 함께한 민주적 조직문화 교육에서

‘민주적 조직문화’를 주제로 한 교육을 요청받을 때마다 머뭇거려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도 잘 못하는데 이 주제로 교육을 할 수 있는 걸까? 해도 되는 걸까?’ 잦지 않은 이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그럼에도 하기로 선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절박한 요청을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이고, 교육현장에서 참여자들과 머리를 맞대며 배우는 게 더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민주적 조직문화를 주제로 교육을 요청받는 곳들은 대개 2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감수성에 대한 고민이 평소에도 많은 곳과 묵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사건’이 발생한 곳. 사건의 규모와 깊이는 다르지만, 사건이 터진 이후라도 외부에 자기 조직의 상황을 털어놓고 교육을 요청하는 조직은 상대적으로 문제해결의 저력을 갖고 있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을 통해 문제 해결의 고리를 찾기에는 너무 뒤늦은 때에야 교육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지요.

지난 9월 중순에는 한 노동조합의 초청으로 ‘민주적 조직문화 교육 기획하기’를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노조 교육 담당자들이 각 사업장으로 돌아가 민주적 조직문화를 주제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획 방법을 함께 짚어보는 자리였습니다. 상반기에 이미 한 차례 ‘민주주의와 조직문화’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던 터라, 이번 교육에선 구체적인 교육 내용을 함께 만들어보는 작업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민주라 말하면서 가장 민주적이지 못한

 

민주라 말하면서 가장 민주적이지 못한

상반기 교육에서 ‘왜 우리는 민주적 조직문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한 참여자가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또렷합니다. “민주라 말하면서 가장 민주적이지 못한 조직이 노동조합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노동조합’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조직의 구성원이 꺼내놓은 말이라는 점에서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참여자 모두 ‘민주’노조의 정체성에 걸맞게 민주주의를 조직 내에서도 구현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었지만, 이 주제로 조합원과 함께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 노조의 조직 상황과 문화에 맞는 민주적 조직문화 교육이 어떻게 펼쳐져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교육에서는 다른 곳에서 진행한 교육 사례를 공유하고 노조의 실제 상황에 맞는 교육내용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모둠별로 ▸회의문화 ▸역할분담 ▸뒷풀이나 회식 문화 ▸‘문제제기’에 대해 반응하는 문화 ▸조합원 사이의 관계 ▸선거문화 ▸집회문화 ▸연대활동 가운데 원하는 주제를 하나씩 골라 변화가 요구되는 장면이나 그 장면을 대표하는 ‘말’을 찾아보기를 요청했습니다. 참여자들이 찾아낸 말과 문제적 장면을 잘 엮어 대본 형태로 정리해서 교육에서 활용하면, 효과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5개의 모둠 가운데 무려 3개의 모둠이 회의문화를 주제로 꼽았습니다. 참여자들이 직접 찾아낸 회의문화의 문제점을 들으며 노조의 회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그려졌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회의문화

– “다들 이해하셨을 거라 보고 넘어갑시다.” (충분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채로 결정된다)

– “그거 꼭 해야 됩니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제안이 거절된다)

– “그거 안돼!”

– “그럼 니가 책임지고 해!” (독박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의견 내기가 두려워진다)

– “아냐, 그냥 이렇게 가!” (답.정.너)

– “이의 없죠?” “네~” (회의 때 그렇게 넘어갔기 때문에 뒷말이 무성하다)

– “10분 쉬었다 합시다.” (회의 진행자가 담배 피고 싶어서 쉬었다 하자고 하는데 회의 흐름이 끊긴다)

– “정해준 대로 해.”

– “니는 가만히 있어라.”

– “고마하자.”

– “(그냥) 다수결로 합시다.”

– “……” (의견을 구해도 다들 말이 없다)

– ‘내 일 아니다’라는 식의 무관심한 태도

– 열심히 설명해도 잘 듣지 않는 모습들

모둠의 발표를 듣다가 참여자 중 한 분을 의자에 앉혀두고 몇몇 분이 찾아낸 ‘문제적 말들’을 뒤에서 소리내어 외쳐보도록 했습니다. “그럼 니가 책임지고 해!”라고 한 사람이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이 메아리처럼 한 목소리로 다시 외쳐보도록 한 것입니다. 의자에 앉은 분께 어떤 말이 가장 마음에 남았는지,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인지 여쭈어보았습니다.

 

“‘그거 안돼!’ 이 말이 제일 꽂히네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와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 때는 아주 큰 차이가 있겠지요.

 

무엇을 문제로 정의할 것인가

참여자들이 찾아낸 말들마다 짚어볼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나 독선적인 회의진행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얼마나 참여하고 얼마나 책임을 분담하려고 하느냐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소통이 말투를 바꾼다고 가능해지는 게 아니라 조직과 사람을 대하는 철학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라는 공감대도 깊어졌습니다.

참여자들과 나눈 대화 중 이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회의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내용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냐고. 가만히 넘어간다는 답이 주를 이뤘습니다. 지금도 세월호 뱃지를 달고 있는 분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는데, 세월호가 아닌 우리 조직 안에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자기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라는 점을 발견한 것은 커다란 수확이었습니다. 눈총 받을까봐, 회의를 빨리 끝내야 하니까, 그건 선배가 또는 후배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내 일 아니니까, 어차피 답이 정해져 있으니까… 다양한 이유들로 가만히 있을 때 민주주의는 우리 조직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에게도, 우리 ‘들’에게도 다시 비추어볼 질문입니다.

 

  • 글쓴이: 배경내(개굴)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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