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장애인도 군대에 갈 수 있는 ‘평등’?
- 병역/거부와 반차별은 어떻게 만나나

군대를 안 간 것인지 못 간 것인지

최근 한 정신건강센터 이용인 분들과의 교육에서 들은 이야기다. “나는 ~할 때 이게 사람답게 사는 건가 싶다”에 떠오르는 자신의 경험을 여러 권리 카드 중에 골라서 함께 들려주십사 요청했다(아래 그림 참고).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꾸벅 졸던 남성 한 분이 자기 차례가 되자 “내가 뭔가 부족해서 군대에 안 간 거라고 친구들이 놀릴 때”라고 말했다. 나는 갔는데 너는 군대에 안 갔다는 부러움, 그런데 너는 문제가 있는 몸이라는 멸시가 동시에 담긴 말을 들었을 때 이 분이 느꼈을 곤욕스러움이 짐작될 것 같았다. ‘부족한 게’ 아니라고 말하기엔 정신질환이 없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가기 싫어서 안 간 게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현역병이 될 수 있는 ‘건강한 신체’라는 기준을 승인하게 되는 딜레마.

정신장애를 둘러싼 이 사회의 차별과 군대란 공간이 상정하는 ‘건강한 몸’이라는 정상성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다. “본인이 ‘기피’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지금 몸 상태가 괜찮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난감함이 있었을 것 같네요.” 그 분이 고개를 슬쩍 끄덕이셨다.

교육에서 다룬 권리카드 4가지를 모아놓은 이미지.

 

당신의 어려움을 나도 알 것 같다는 공감의 메세지로 “그런데 저도 군대 안 갔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병역거부로 징역을 살아서 전과자라고 못 간 것이기도 한데요.” 순간 낯선 정적이 흘렀다. 지금 강사가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는건가 의아해하는 참여자들의 눈빛을 보며 망설였다. 괜히 내 얘기를 꺼냈나싶은 후회와 그래도 이왕 꺼낸 얘기 마무리는 잘 져야지 하는 마음이 연달아 떠올랐다. 내가 병역거부자란 사실을 굳이 드러내어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지만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군인이 될 수 있는/없는 몸과 이 사회의 차별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설명을 ‘짧은 시간’ 안에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럼 다음 분 이야기 들어볼까요?” 결국 얼버무리며 넘어간 것 같다.

군대에 남들과 똑같이 갈 수 있는 ‘평등’…?

국가인권위에서 정신질환을 이유로 4급 판정을 받은 진정인이 사회복무요원 소집일자 선택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결과적으로 소집대기 기간이 길어진 것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 판단한 결정례가 있다(결정례보기).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병무청의 주장이다. “병역자원 수급상황”상 수요보다 사회복무요원(4급) 숫자가 더 커지면서 입대 순서를 정하는 추첨에 순위를 부여했는데, “수형자와 정신질환자는 복무기관 활용도”가 떨어지기에 후순위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이에 인권위는 “정신질환을 가진 4급자가 다른 사유의 4급자에 비해 자원수급활용도가 낮다는 증거”를 병무청이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입대시기를 예측하고 진로를 설계할 수 있는 삶의 안정성을 남들과 동등하게 누리지 못한 것은 “공공기관 등은 (중략)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제1항에 위배됨을 지적했다.

같은 4급인데 다른 사유에 비해 후순위로 배치된 것은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에 대한 이 사회의 편견과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차별이 맞다. 하지만 인권위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로 ‘자원수급활용도가 낮은 것은 아님’을 제시한 것, 즉 ‘활용도’에 따라 사람의 등위를 나눈 기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대신 ‘정신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복무를 수행할 수 있다’로 들릴 수 있는 논리에 그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87 체제 이후의 군사주의: 신자유주의, 계급, 젠더” 강연에서 정희진은 군대에 “끌려가는 사람, 못 가는 사람 그리고 안 가도 되는 사람”을 둘러싼 동학을 말한 바 있다.(강연문 보러가기). 군대 문제에 있어 남성과 여성 이분법이 아니라 남성과 남성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비남성 즉 군대에 갈 수 없는 여성, 장애인, 퀴어, 학력‘미달’자 등을 분할해내는 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생각하는 군인으로서의 ‘활용도’는 결국 얼마나 명령을 잘 복종하여 군의 목적(방어=살상)을 달성할 수 있는지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걸 떠올린다면 앞서 인권위의 판단이 “정신질환이 있어도 명령에 잘 복종하는 몸이 될 수 있다”로 귀결되지 않기 위한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주어진 운동장 안에서 선택(순서)권의 평등이 아니라 애초에 ‘건강한 몸’이라는 기준으로 존엄의 위계를 둔 운동장 자체를 문제 삼는 것, 다시 말해 병역을 수행할 수 있는 몸과 아닌 몸을 나누는 기준이 ‘정상성’을 기준으로 소수자를 밀어내는 차별의 논리와 다르지 않음에 대한 문제제기 말이다.

퀴어운동과-반군사주의운동이-연대해야-하는-6가지-이유

퀴어운동과 반군사주의운동이 연대해야 하는 6가지 이유. 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 전쟁없는세상 부스 앞 걸개.

 

군대에 갈 수 없는 존재들(장애인, 여성, 퀴어, 이주민, 저학력자 등)이 군인이 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군은 철저히 자기 이익에 따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일례로 병무청은 “저출산으로 병역자원이 부족해질 것을 예상”하여 몇 년 전 중학교 중퇴 이하의 학력을 가진 이들에게 더 이상 면제처분이 아니라 현역병 입영(1-3급)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입영 대기자가 많아져 문제가 되자 고교 중퇴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4급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학력 차별이라는 진정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혼혈인, 고아,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이 정정된 사람, 귀화자”는 ‘전시근로역’으로 병역이 면제되지만 이중 가령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이 아니라면 원할 경우 군복무를 하게 해주겠다고 선심 쓰듯 국방부와 병무청은 말한다. 그럼 퀴어는?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가 존재하는 한 ‘젠더퀴어’는 여전히 군인이 되고자 해도 ‘면제’되거나 입대하더라도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숨어있어야 한다. “성소수자도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군 복무를 (선택)할 권리’를 가로막는 국방부를 반박하는 논리일 수 있으나, 군대란 공간의 생리 자체가 헤테로 중심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또한 동시에 질문될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Speck은 미국에서 성소자의 군복무를 ‘허용’하는 취지로 도입됐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정책이 폐지됐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 퀴어들은 “게이에게도 군복무할 기회/권리를” 외치기보다 스트레이트들과 함께 군사화된 남성성, 호모포비아를 재생산하는 군대를 거부하자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유토피아처럼 들릴까? 그럴지도. 하지만 호모포비아가 없는 군대를 상상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가능성이 희박한 상상이다.

–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폐지를 지켜보는 퀴어 반군사주의자의 입장” (Speck의 글 보러가기)

병역/거부와 ‘반차별’ 교육의 연결고리

인권교육에서 병역거부가 소재가 될 때는 왠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측면에서 말해야 할 것 같은 개인적 느낌(자기검열?)이 있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양심의 자유 프레임(“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생각 때문에 억압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은 ‘비범죄화’를 목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유용한 대신 병역거부자를 선량한 피해자 혹은 용감한 남성의 위치에 가두기 쉽다는 함정이 있다. 피해자의 이미지로 관용의 대상에 갇혀버릴 때 병역거부자는 ‘양심/비양심’ 도식을 깨려다(“군대간 우리는 비양심이냐”) 도리어 횡단보도 신호등도 잘 지킬 것 같은 ‘양심적’ 인간이 되는 역설이 생긴다. 한편, 국가에 맞선 ‘용감한’ 남성으로 그려졌을 때 병역거부 운동을 함께 하는 여성의 역할은 비가시화되거나 부차화되는 부분에 대한 지적 또한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무엇보다 양심의 자유 프레임의 결정적 한계는 “총만 아니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겠다”는 논리엔 수긍하지만 “평화를 지키는 군대는 없다”는 주장엔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반감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비(非)국민이 국민이 되려는 노력은 받아들이지만, 비국민을 만들어내는 힘에 도전하는 것에는 불편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권교육은 ‘양심의 자유’까지만 말하고, ‘반군사주의’는 평화교육의 몫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건 이상하다.

지난 8월 30일에 열린 “여성, 병역거부를 선언하다” 행사에서 받은 영감을 나누고 싶다. 이날 숲이아는 “생물학적 여성이자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로서 병역거부를 하는 이유(숲이아 소견서 보러가기)를 밝혔다. 자신은 현행법상 입영대상자가 아니지만, “가부장-군사주의-국가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하나가 성별이분법이 아닐까” 질문하면서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인 사람만 징병대상자로 삼는다는 점에서 성별이분법을 강화하는 시스템”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비국민으로 취급받은 존재가 국가의 체제에 저항하겠다”는 숲이아의 말을 들으며 서두에 언급한 정신건강센터 이용인 분이 떠올랐다. 군대에서 밀려난 당신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정상 남성’을 전제하는 징병제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인권’교육에서도 나눌 수 있는 영감을 준 숲이아의 선언이 반갑고 고마웠다.

국가안보나 평화라는 명분의 군비확장, 위계와 복종이라는 군대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반차별의 언어로 병역/거부를 둘러싼 다른 질문들도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고, 해봐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여성 병역거부 선언의 맥락은 무엇인지, 징집 대상으로 소환되는 존재와 밀려나는 존재는 누구이며 이 사회의 소수성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와 같은 질문 말이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다양한 주체들의 병역거부 선언이 이어지면 좋겠다”는 숲이아의 말을 기억하며, 병역과 젠더, 병역과 장애 등 소수성이 교차하는 지점과 이 사회의 ‘정상성’을 의심하는 질문들을 교육가의 위치에서 어떻게 건낼 수 있을지 고민을 함께 나눠가고 싶다.

*작성: 날맹(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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