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살짝쿵] 돌발 질문이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
예맨 난민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나눈 날

얼마 전, 경기도의 한 시청이 주최한 연속 인권강좌에 교육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두 번째 발걸음한 날이어서 그런지 반갑게 인사하는 참여자들이 꽤 있습니다. 강연 자료와 준비물을 세팅하고 있는데, 담당 공무원이 불쑥 물어옵니다.

“예멘 난민 문제 어떻게 봐야 합니까? 제가 인권담당자니까 주위에서도 물어보는데 저도 고민되더라고요.”

주위 반응은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열이면 열, 다 반대죠.”

질문한 분의 입장도 물어봅니다.

“쫓아낼 수는 없는데, 난민으로 받아들여도 그 사람들이 전혀 동화될 생각이 없으니까 걱정은 되죠. 이슬람 사람들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니깐요.”

얘기를 듣고 있던 참여자 몇 분도 이야기를 보태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수가 들어왔어요. 한두 명이라면 모르겠는데 걱정되죠.”

“인권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머리로는 ‘인권을 먼저 생각해라’ 그러지만 마음은 사실 안 그래요.”

 

이 일을 어쩌나. 제주도에 사증(비자) 없이 입국한 예맨 난민 문제로 전국이 막 떠들썩해지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인권활동가라고 해서, 인권교육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인권문제를 언제나 민감하게 파악하고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당시 예맨 난민 문제가 제게 그랬습니다. 전국적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었지만, 다른 일에 쫓겨 제대로 관련 자료나 기사도 찾아본 적 없었죠. 예맨이 대체 어떤 나라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낯선 상태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전쟁 위험을 피해 피난처를 구하러 온 이웃에게 저 역시 참으로 무심했던 것 같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 준비한 교육을 진행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며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돌발 질문이었지만 그 얘기들이 던져진 순간 중요한 인권 텍스트가 교육현장에 출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세계 난민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짧게라도 다루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결심했습니다.

세계 난민의 날 포스터

돌발 질문, 그래도 피할 수는 없었다

 

먼저 걱정 또는 두려움의 실체부터 건드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맨 난민들의 입국으로 뭐가 가장 우려되는지 물어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일 저지를지 모르잖아요. 대다수가 젊은 남자들이던데 성범죄 우려도 크고.”

“누가 그러는데 한국 남자들이 예맨 난민들 이용해서 강간이나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대요.” (헉! 이건 또 어디서 흘러 다니는 이야기?)

“동화되지 않는다는 거. 다문화수업에서 ‘동화’는 아니라고 배웠지만… 근데 그 사람들이 동화되지 않을 거면 왜 우리나라에서 계속 사는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엄청 힘들게 살 거잖아요. 밑바닥 아래 밑바닥. 그걸 보기가 싫어요.”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남의 나라 사람들까지 돌봐야 하나? 집도 주고 생계비도 주고 그런다는데… 세금을 어디에 먼저 쓸 거냐 선택이 필요하죠.”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전쟁 위험을 피해 피난처를 구하러 온 이들이 ‘잠재적 범죄자’ 아니면 ‘고집불통’, ‘세금도둑’ 정도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니까요. 이야기를 꺼낸 분들은 인권 공부를 몇 차례 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아직 공부나 고민이 충분치는 않아서 지금까지 가져왔던 통념과 인권의 기준이 뒤섞여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럴 때 구체적 이슈로 들어가면 문제적(?)인 관점이 더 잘 드러나곤 합니다. 게다가 ‘내 몫’이나 안전을 위협한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은 ‘연민’이나 ‘우애’를 접어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고 말죠. 폭력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내 아이의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 체벌을 할지 말지는 부모인 내가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이들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후

 

참여자들이 꺼내놓은 한 문장, 한 문장에 다루어야 할 얘기들이 꽉 차 있습니다. 시간은 별로 없고(지금 생각하면 아예 이 이야기로 그날의 교육을 대체할 걸 후회가 됩니다), 자칫하면 ‘당신네들 지금 엄청 반인권적인 이야기한 거야.’ 공격이 되기도 쉬운 순간. 몇 가지 질문들을 돌려드려 보았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난민 혹은 무슬림을 만나 어떤 관계를 맺어본 적 있는 분이 있나요?” 한두 명이 손을 들었지만 살짝 스친 정도일 뿐, 대화를 나누거나 관계를 맺었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부풀려진 이야기’나 편견일 수 있음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집단화, 일반화의 폭력은 모든 차별 문제에 등장하는 단골메뉴이니까요.

<우리 곁의 난민> 책 표지

 

다음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이중기준’을 들여다보기를 청했습니다. “8·15 무렵이면 고려인 이야기가 자주 나오곤 합니다. 아리랑을 부르고 지금도 김치를 담그고 우리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고려인을 보며 칭송과 안타까움을 보내곤 하죠. 그분들도 당시엔 난민이었거나 강제이주된 분들입니다. 문화적 정체성은 인격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버릴 수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러시아 문화를 전혀 수용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외국으로 이민간 분들이 한인교회 같은 곳으로 모입니다. 이를 두고 ‘동화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지금 예맨 난민들에게 요구하는 건 모든 정체성을 버리고 우리와 똑같은 한국인이 되라고 요구하는 ‘흡수통일’식 접근은 아닐까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종교나 문화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경제력과 유엔에서의 위상에 비추어 한국은 난민 인정률도, 난민 지원 수준도 지극히 낮은 나라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반가워하면서도 국제협력에 대한 책임은 이행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난민 보호의 핵심은 그저 입국을 허락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종국에는 살고 싶은 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난민을 만들어낸 정치적 상황을 해결하는 국제협력임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내국인이 저지르는 성범죄와 외국인이 저지르는 성범죄 중 어느 게 더 많을까요? 백인이 저지르는 범죄와 비(非)백인이 저지르는 범죄 중 어느 게 더 많을까요?” 이런 단순 비교성 질문은 적절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예맨에서 온 검붉은 피부색의 난민들을 (예비) 범죄자로 바라보는 건 편견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질문을 이어갑니다. 한국사회에서 미군이나 백인 외국어강사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잘 보도되지도 않고 격분의 대상도 되지 않는 반면, 반면 가난한 나라 출신이거나 비(非)백인의 범죄는 대대적으로 보도되곤 하니까요. 어떤 집단을 통째로 범죄시하는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환경을 파악해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짚습니다.

 

난민을 쉽게 내쫓는 나라는…

 

짧은 이야기를 끝으로 교육의 본 주제로 넘어가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진행 중인 이슈는 대개 너무나 논쟁적이어서 풍부한 토론보다 자칫 찬반 대립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가가 입장을 강하게 얘기하다 보면 반감을 사기도 쉽죠. 그런데 때론 피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짧게라도 나눈 이날의 이야기가 이후 예맨 난민 문제를 고민하는 방향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살펴본 어느 블로그 글이 분노와 서글픔을 자아냈습니다. ‘실제로 난민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적다, 생활지원금도 아주 조금 준다, 무사증 입국 나라에서 예맨을 제외했으니 더 이상 안 몰려온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라.’는 논조로 쓰여 있습니다. 이어진 사회 분위기도 무시무시했습니다. 난민법과 ‘무사증 입국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수십 만을 돌파하고 6월말에는 “국민이 먼저다.”는 손 팻말을 든 수많은 인파가 참여한 집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난민들에게 내어준 ‘곁’이 너무나 좁고 냉담하다는 걸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죠. 난민을 쉽게 내쫓는 나라는 제 나라 안에서도 제 나라 시민을 쉽게 ‘난민 처지’에 내모는 나라라는 걸, 저는 인생을 통해 배웠습니다. 난민을 내쫓고 ‘아낀 세금’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도 난민들에게 자기 집을 선뜻 내어준 한국인들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리고, 제주에 난민들을 지원하는 시민대책위도 생겼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피난처를 찾아 떠돌면서 배움과 놀이의 시간을 잃어버린 예맨 난민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을 함께 보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고마운 이야기입니다. 최근 소신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정우성의 말마따나 그들은 “이름과 추억, 일상이 있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 글쓴이: 개굴_경내(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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