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뿐, 우리도 할 수 있다.
4주간의 시설 거주 발달장애인 인권교육을 마치고

‘비발달장애인 중심의 사회’

스티커 붙인 이름표

4주 동안 이름표에 다양한 스티커를 붙이면서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 듣고 얼떨떨해지는 말이 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영역을 떠올리게 하는 말. 나에게는 ‘비발달장애인 중심의 사회’라는 말이 그랬다. 몇 해 전 참여했던 한 교육에서 “글씨를 읽을 줄 알면 투표할 수 있지 않을까요?” 했다가 “글씨를 읽고 쓰기 어려운 사람들은 투표할 수 없다는 말이냐?”고 되묻던 어느 활동가의 질문 앞에 화끈 부끄러웠던 기억도 같이 떠오른다.

지난 3월 말부터 4주 동안, 시설에 거주하는 발달 장애인과 인권교육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들’은 이 시설과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몇 차례의 거주인 교육을 진행해 왔다. 이번에는 거주하던 시설을 떠날 시기를 앞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교육이다. ‘타인과 관계 맺고 함께 살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교육 참여자들은 주로 자립을 고민하고 있거나 다른 시설로의 이주를 앞둔 이들이 많았고, 현재 다른 기관에서 운영하는 작업장, 체험 홈 등 새로운 공간을 경험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첫 주에는 학교에서 경험할 법한 사례를 바탕으로 상황극 두 가지를 준비했다. 발달 장애인 당사자 인권교육은 대체로 1시간 동안 진행한다. 최대한 천천히 속도를 늦춰 말하고 차근차근 잘 설명하자고 마음을 먹다가도 얘기를 하다 보면 금세 잊었다. 그새 말은 빨라지고 참여자의 대답을 재촉하는 건가 싶어 멈칫하기를 여러 번, 비발달장애인들과의 교육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말을 빠르게 해왔는지, 또 얼마나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가 해오던 방식의 인권교육은 발달장애인에게는 잘 들리지 않을 수 있고, 피피티 등 이미지 자료를 제시할 때 그 이미지를 통해서 나누고 싶은 얘기를 나누기보다는 참여자들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곤 했다는 이전의 교육경험을 고려해 준비한 상황극은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참여자들이 대부분 학교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학교 친구, 교사와의 관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 두 가지를 극으로 꾸몄다.

<1주 차 상황극>

[상황1 : 친구 관계]

  • 연두 : 빨강. 나는 너 너무 좋아~(껴안으려고 다가간다)
  • 빨강 : 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슬쩍 피한다)
  • 연두 : 빨강빨강빨강빨강~~(덥석 안으려고 하지만 빨강이 중단시킨다)
  • 빨강 : 왜 이래. 싫다고~ 그만해~!
  • 연두 : 야, 나는 좋아서 그런 건데 너 너무 하잖아. (계속 치근덕치근덕)
  • 빨강 : 싫어~~~!! (약간 크게 소리 지르고 연두를 밀친다) 네가 나 좋다고 하면 내가 너 하자는 대로 다 해야 하는 거야? 싫다고 하면 그만해야지~!
  • 연두 : 알았어! 에잇~ (책상/의자를 소리가 나게 밀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 빨강 : 야~! 연두 너~~!! 아프잖아….

 

[상황 2: 교사-학생 관계]

세모와 동글이가 속닥속닥하며 잘 놀고 있다. 그러다가 동글이가 먼저 세모를 한 대 살짝 때린다. 세모가 맞받아치고, 둘이 주고받다가 티격태격하고 있다. 결국, 동글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세모는 소리 지른다.

  • 세모 : 동글이 너 뭐야, 네가 먼저 때려놓고 왜 울어? 와 진짜 너 너무 한다. (짜증 나…)
  • 선생님 : 세모~ 또 무슨 일이야. 넌 왜 이렇게 자꾸 소리를 질러~…. 쯧쯧. 동글이는 왜 울어? 세모가 또 못된 말 했구나. 그치?

상황극을 보고 지금 일어난 상황을 알 수 있는지, 혹시 학교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이미 학교를 졸업한 참여자들은 약간 ‘내 얘기는 아니네’ 하는 느낌으로 교육에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대체로 학교에 대한 느낌은 긍정적이라고 표현했다. 학교에서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관계에서 겪은 비슷한 경험을 말하고, 어떻게 그 상황에 대처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얘기하거나, 자기가 이해한 대로 상황극 자체에 대해 열심히 말해주는 참여자도 있었다.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열심히 얘기하던 사람들의 모습, 인권교육 재밌다고 즐겁게 말해주는 세심한 마음이 ‘솔직히’ 참 고맙고 좋았다.

“그러면 안 돼요” 앞에서 작아진 마음

2주 차는 시설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상황극을 꾸몄다. 발달장애인들이 맺는 관계, 특히나 시설 거주인의 경우에 시설 종사자, 같은 방을 쓰는 동료와의 관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떠올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살면서 대개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헤아려 보려고 애쓰기도 할 테지만 가끔은 자기 요구를 굽히지 않고 주장할 때도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구성한 상황극이었다. 이 상황극을 보고 나서 참여자들이 나눠준 얘기는 예상 밖이었다.

<상황 1> : 한방을 쓰는 동료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 연두가 그림 그리느라 쓰던 연필과 공책을 그대로 둔 채 인형 놀이에 빠져 있다. 그걸 보던 ‘형’이 한소리를 하는데도 연두는 듣는 둥 마는 둥. 결국, 형이 연두의 인형을 때리거나 떨어뜨려 연두가 운다.

<상황 2> : 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빨강이와 시설 종사자의 대화.

연두가 억울하다고 볼 수 있을까?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을 꺼리는 사람이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싫어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형’은 왜 연두를 울렸을까. 혹시 어질러진 방을 치우라고 하고, 같이 사는 공간을 챙기는 노동이 언제나 형의 몫이었을까?

이런 후속 질문을 이어가려고 준비한 것이 <상황 1>이다. 각자의 답답한 마음이 있고, 그로 인한 갈등이 숨어 있지만, 갈등은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얘기해보면 좋겠다 싶었고,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직원과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를 다룬 두 상황극을 보고 참여자 대부분은 약속/규칙은 꼭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안 돼요’. 단호한 손 가위가 그이들 가슴팍을 왔다 갔다 하고, 내 머릿속도 복잡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라거나 ‘오늘은 눈치 안 보고 신나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놀고 싶다’는 마음이 떠오른 적이 없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참여자들이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정말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오랜 시간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느라 생활규칙을 잘 지키고 따르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자율적인 선택의 가능성을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참여자들의 상황을 마주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컸다.

3주 차는 ‘하늘 작업장의 무법자(?)’ 버전. 지난주,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참여자들과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강한 의지가 반영된 기획이었다. 규칙이 필요한 이유는 뭔지, 규칙은 어떨 때 바뀔 수 있는지를 얘기해보려고 했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이 규칙과 부딪힐 때 어떻게 타인과 소통해야 하는지 시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늘작업장 규칙

<상황1>

[햇님이가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고 있다. 이때 작업장에 들어온 달님이가 햇님이를 보며 화들짝 놀라 말을 건다]

  • 달님 : 어 햇님아, 너 여기 작업장 규칙 있는 거 몰라? 혹시 모르는 거면 내가 잘 설명해줄게. 우리는 음악 틀고 일하면 안 되는 곳이야. 휴대폰은 사물함에 넣어야 해.
[이때 별님이가 들어온다]
  • 햇님 : 아 그래? 근데 나는 음악 들으면서 일하면 더 잘 되더라~
  • 별님 : 어머 음악이 들리네~. 햇님이가 틀었어? 아~ 너는 음악 들으면서 일하는 게 재밌어?
  • 햇님 : (별님에게) 응 나는 그게 훨씬 좋은 것 같아.
  • 달님 :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저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거잖아.
  • 별님 : 햇님이는 우리랑 다른가 봐. 음악을 들으면서 일을 하네…~!

 

<상황 2>

  • 복지사 : 어어어어~! 지금 무슨 음악이 들리네. 우리는 일할 때 음악 틀어놓지 않는데? 누가 잊어버리고 나갔나?? (음악을 끈다)
  • 햇님 : 우리가 음악 틀어놓고 일하기로 했어요. (다시 음악을 튼다)
  • 복지사 : 아니 왜 다시 틀어? 음악 끄고 일하는 거잖아(음악을 끈다)
  • 별님 : (음악을 틀면서) 우리가 다시 정했어요. 햇님이는 일하면서 음악을 들으면 재밌대요.
  • 햇님별님달님 : 맞아요. 우리가 정했어요.
  • 복지사 : 그러면 안 되지~. 왜 선생님하고 얘기도 안 하고 물어보지도 않고 너희 마음대로 바꿔? 이렇게 허락도 안 받고 말도 안 하고 맘대로 하면 안 되지 않아요?

그러나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라는 참여자들의 확고한 생각 때문에 규칙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우리지만, 규칙을 만드는 사람은 ‘엄마나 아빠’(시설 거주인들이 종사자들을 이렇게 부르는 일이 흔하다.)라는 사실을 의심해 보자는 질문을 낯설어하는 듯 보였다. 특히나 작업장을 경험한 참여자들은 더더군다나 작업장의 규칙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표현했다. ‘복지사의 개입(나한테 허락도 안 받고 너희들끼리 바꾸면 안 되지) 방식’이 불쾌하다고 하면서도 규칙은 ‘꼭’ 지켜야 한다고 했다. 참여자들에게 규칙을 대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어 고민되었다. ‘우리도 어딘가에 새로 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그때 우리의 의견을 전하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또 얼마나 가 닿았을까. 시설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주어진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했을 텐데, 우리가 건네는 얘기가 힘들지는 않았을까.

혼자 살고 싶어요

참여자가 써준 메모

마지막 시간에는 여행 가방 꾸리기와 내가 살고 싶은 집 꾸미기를 중심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꼭 잘 씻어야 한다. 규칙이니까’를 연신 주장하던 이들 중에서 세면도구를 챙겨 넣은 사람이 또 몇 안 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남자는 화장품 바르면 안 된다고 단무지처럼 말하던 참여자도 있어서 언제 다시 기회가 된다면 ‘성 역할’, 젠더를 주제로 이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꾸며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집’을 꾸미는 활동을 하면서는 참여자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곧 다른 자립 홈으로 이동하게 된 동0씨는 이곳에서 함께 하던 사람들을 놓고 떠나게 되는 마음을 보여줬다. 누구, 누구, 누구와 내가 같이 사는 집에 이제 나는 없을 거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말했다. 이미 다른 곳에 자립해 나간 언니를 보고 싶다고 말한 유0씨, 여자친구랑 살 거라서 넓은 침대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던 성0씨까지 모두 자신의 ‘자립’, 자신이 살아갈 새로운 집에 대한 생각을 말하느라 시끌벅적했다. 한 참여자가 며칠 전 뉴스에서 봤다며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소식을 꺼냈을 때, 그 얘기를 받아 한참 그 부모들이 왜 삭발했는지를 설명했을 때 참여자들은 정말 사뭇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집중하는 참여자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참여자가 뭔가를 꾹꾹 눌러쓰고 있었다. ‘직업을 갖고 싶어요. 혼자서 살고 싶어요.’를 크게 쓴 종이를 선물해 달라고 청해 받아 들고 돌아왔다.

흔히 만나게 되는 참여자가 아니었고, 흔히 쓰는 교육자료를 활용하지 않은 탓에 매번 새로운 활동지를 만들어야 했지만, 이들을 만난다는 그 설렘과 두려움을 오래 간직해보기로 한다. 이들이 비발달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이들이 좀 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살필 수 있으려면 어떤 질문을 만나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기 삶에서 필요한 것을 획득할 방법과 기회를 찾으려고 그이들도 애쓰고 있다. 비발달장애인 중심의 사회는 그들에게 어떻게 응답을 할 수 있을까.

 

글쓴이 : 림보(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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