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노골적으로 의식을 담아 ‘비청소년’

“비청소년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으세요?”

처음으로 물었습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인권교육의 참여자 전체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본 기억이 없으니까요. 쉬는 시간에 “근데 비청이 뭐예요?”라며 살짝 다가오는 참여자를 만나면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좀 더 친절한(?) 교육을 다짐’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청소년을 만나 교육활동을 하는 인권교육가도 ‘비청’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는 얘길 여럿에게 들으며, 이러저러한 생각과 함께 ‘비청’이라는 말을 쓰며 어색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비청01

‘비청소년’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비청소년이라는 단어를 가장 자주(?)사용할 법한 청소년인권단체 한 활동가의 말에 의하면 2010년 이전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검색찬스를 활용해보더라도 2008년 자료에도 사용됐으니까요. 하지만 ‘장애인/비장애인’의 말이 쓰이는 정도와 대충 가늠해보더라도 ‘비청’은 여전히 대중적이지 않은 말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비장애인이라는 말 대신에 ‘일반인’이라고 말하곤 무척이나 큰 잘못을 지은 듯 사과를 하는 모습과 또 그것을 호되게 지적하는 모습을 몇 차례 마주한 적이 있는데 마음속으로는 ‘뭐,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정상이고 일반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장애인 중심적 사고를 위해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지만, 대체로 이런 사과는 문제의식 자체를 이미 공유하는 사람들의 실수니까요. 하지만 ‘인권을 좀 들어 본’ 사람에게도 ‘비청소년’은 아직도 낯선 기준, 혹은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는 인권은 아닐까 싶습니다.

단지 몰라서 확산되지 않고 낯설어 쓰이지 않는 말이 아니라 무게중심을 옮기고 싶지 않은 의식 깊은 곳의 외면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청소년과 비교해 사용하는 어른과 성인이라는 말에 담긴 문제점을 깨닫고 난 후에도 ‘비청’이라는 단어 사용에 한참이 걸렸던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색함 뒤에 무게중심의 이동이 불편하게 여겼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왠지 기울어진 것 같았던 것일까요. 하지만 기존의 청소년과 어른/성인도 기울어진 시각이 들어있긴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어른을 두고 어른이라고 말하는 게 뭐가 문제냐?’ ‘굳이 장애인 중심이어야 해?’라며 기존의 생각을 고수하는 참여자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비청소년, 비장애인’이라는 말이 영원히 쓰일 것은 아니겠지요. 기본적으로 어느 한쪽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지향을 담은, 노골적으로 의식적인 말, 아직은 써야 ‘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청소년과 비청소년의 구분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비청소년 (어른)

▶ 청소년이 아닌 사람. ‘어른’.

▶ ‘미성년자’와 ‘성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구도라서 차별적이고, ‘어른’이라는 표현에도 ‘성인’과 같은 의미, 또는 ‘시대의 어른’처럼 존경할 만한 권위자/인격자를 가리키는 어감이 있다. 이에 청소년 중심적으로 건조하게 정의한 것이 ‘비청소년’. 말 그대로 청소년운동에서 논하는 청소년이 아니라는 뜻.

▶ ‘장애인’, ‘비장애인’과 유사한 조어 방법이다.

▶ 줄여서 ‘비청’이라고도 한다.

▶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지만, 청소년활동가들이 ‘비청소년’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낯설어 하고 놀라는 사람들도 많다.

[출처] [10주년자료집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백과사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글쓴이: 은채(상임활동가)

차곡차곡 쌓아가는 소중한 문자후원

#2540-5353

문자메시지에 #2540-5353을 입력 후,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전송하면 인권교육센터 들로 3천원이 일시 후원됩니다. 지금 들을 충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