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잃어버린 20년, 내가 인권교육을 시작한 이유
“왜 아무도 귀띔도, 질문도 해주지 않았을까”

지난 4일, 3.8여성대회가 열린 광화문광장에서 학창시절 교사에 의한 성폭력 경험을 용기있게 증언한 여성청소년이 있었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해 한겨울에도 거리와 국회를 땀띠 나도록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눈물겹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했던 이였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그녀는 다리가 풀렸는지 휘청거렸다. “수고했어요.”라며 다가서는데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기엔 정말 어려운 이야기였을 텐데…’ 그녀의 등을 쓰다듬다 나의 어릴 적이 떠올랐다.

 

우리는 청소년 서프러제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십대를 지나는 동안 내 모든 신경은 지옥 같은 집을 떠날 명분과 자원을 만드는 일에 집중돼 있었다. 버스 안에서 난데없이 겪게 된 첫 추행의 기억도, 시험이 끝나면 반별로 순위를 매겨 놓고 ‘너네는 그 성적에 밥이 넘어가냐’며 벌레 취급하던 교사들의 모욕도 견딜 만 했다. 술만 취하면 온 집안을 발칵 뒤집고 엄마에게 손찌검 발길질하던 기력 좋은 아버지의 패악질에 비하자면. 이를 악물었다. ‘사춘기’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다른 도시로 꼭 유학 가자!” 그 바람으로 청소년기를 버텼다.

원서를 쓸 때 고3 담임은 말했었다.

“니 성적이면 여기 국립대 갈 수 있다. 그래야 시집도 잘 간다.”

헐, 시집이라니! 난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아버지도 말했다.

“부모 곁에서 학교 다니다 취직하고 시집가면 얼마나 좋노. 왜 굳이 서울로 갈라 카노?”

헐, ‘곁’이 아니라 ‘밑’이었거든요!

어려운 집안형편을 감안하면 고향에 남는 편이 좋았겠지만, 난 ‘이기적으로’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페미미즘/인권을 만나고 나서야

집을 벗어났지만 해방은 곧장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집안사정을 친구들에게도 잘 말하지 못했다. 페미니즘과 인권을 만나 새로운 인식의 창이 열렸을 때에야 비로소 치유도 해방도 시작되었다. 아무런 힘도, 선택지도 갖기 힘들었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스스로 토닥이고 해석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조금씩 내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인권교육을 중심으로 한 인권운동을 시작한 건 그 ‘잃어버린 20년’이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왜 아무도 귀띔조차 해주지 않았을까. 가부장의 폭력을 해석할 언어와 정보를. 왜 아무도 내게 물어봐주지 않았을까. 너는 어떻게 살고 싶고 무얼 바꾸고 싶냐고, 나는 그걸 사람들에게 물어봐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좀더 어린 나이에 그런 질문을 만나게 되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했다. 누구보다도 내가 페미니즘/인권 운동과 교육의 수혜자였으므로. (최근 경향신문에 실린 “[커버스토리 – 교과서에는 없는 것] 성·인권·정치·대화법…배워두면 쓸모 있는 교육, 교과서는 왜 외면하나요?”에서도 이 이야기를 살짝 전하긴 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십대 시절엔 페미니즘이란 말을 들어본 사람조차 주변에 없었다. 성폭력방지법이 제정된 것은 1994년,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것도 1997년의 일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전개된 여성들의 참정권 획득과 이어진 여성운동 덕분에 나는 20대를 한참 지나서야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같은 서사가 아니라 ‘부정의와 차별’의 서사를 쓸 힘을 얻었다. 피해자인 엄마를 외려 비난했던 나를 고백하고 용서할 힘도 얻었다. 지금 미투(#MeToo) 운동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고 있는 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은 역동적 인권교육의 장

또 돌이켜보면 이 사회는 십대인 나와 내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질 이유가 없었다. 우린 하찮은 존재였으니까. 3.8여성대회 광장에서 청소년들이 ‘청소년 서프러제트’ 손팻말을 들고 샤우팅과 행진을 했던 이유도 그런 처지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은 그저 ‘투표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평등을 포함한 사회변화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삶의 해방을 청소년도 스스로 만들 사회적 기회와 위치를 갖고 싶다는 이야기다. 십대 때 나는 그러지 못했으므로, 지금 청소년들은 그런 불의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기회가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 운동에 정성을 쏟는다. 청소년 참정권 획득을 위한 발걸음은 청소년과 비청소년에게 사회적 질문을 던지는, 강의장 안에서는 만들어내기 힘든 역동적 인권교육의 장이라고 믿는다.

청소년 서프러제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지방선거 D-100일을 맞이한 지난 5일, 민주당 원내대표, 박원순 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까지 한 자리에 불러모아 선거연령 하향에 목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다. 자유한국당이 반대를 고집하는 한 전망은 밝지 않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도 이르다. “청소년의 투표로 OOOO당을 심판하고 싶다”는 고3청소년의 청와대 국민청원 성공으로 꽉 막힌 국회를 뚫는 또 다른 돌파구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청소년 선거권 국민청원 참여하기 ☞ bit.ly/청소년투표청원

 

* 글쓴이: 개굴_경내(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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