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질문같은 질문아닌,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장난으로 그런 건데…”

“그것도 못 버텨?”

“네가 너무 이뻐서 그런 건데 …”

“이 정도면 (여자/장애인/..) 살기 좋은 세상 아니야?”

 

폭력과 차별을 마주하는 우리 사회의 익숙한 방식은 부당함을 깊숙이 품고는 있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듯한 언어로 흘러다녀서 딱 꼬집어 반박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반박을 삼키고, 부당한 질문을 계속 받다보면 오히려 내가 마주한 ‘세상’의 문제는 보이지 않고 ‘나’의 문제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어보면 질문받는 이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 거리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들’에서 진행했던 교육에서 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을 들려달라고 했다. 차별에 익숙한 우리 사회는 거리청소년들에게 “왜 나오게 되었느냐?”고 묻지도 헤아려보려 하지도 않고 철없는 말썽장이로 낙인찍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교육에서 던져진 이 질문 앞에서 그이들의 대답은 그 어느 상담전문가 못지 않은 조언을 내놓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조언은 ‘부모라도 힘들고 화날 때 있지. 그렇다고 때리고 싸우지 말고, 힘들다고 말을 해’, ‘계속 (참으며) 그 사람하고 살 거야?’와 같은 것이었다. 미성숙하다고 치부되는 청소년들이 부모를 오히려 부모로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서 이해해주는 너무나 성숙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질문에 오버랩되어 기억 하나가 재생되었다. 90년대 말, 황혼이혼이 한참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올랐던 때가 있었다. 대법원은 45년간 남편의 폭언/폭력/첩살이 등에 시달린 여성노인의 이혼 청구에 “결혼할 당시의 문화를 감안할 때 참고 살라”는 판결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을 보며 무엇이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잣대인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인지도.

성숙과 미성숙은 나이가 아니라는 뻔한 답을 우리는 알지만 우리가 목격하는 ‘철없는 아이들’ 때문에 이것은 늘 오답처리 된다. 하지만 실상은 세상이 ‘철부지’라 불리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진 적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이 정상과 비정상가족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의 기준은 구성원의 유무가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태도이어야 한다. 폭력적인 상황을 견디고도 기꺼이 가족 구성원으로 뭉쳐서 살지 않는 것. 그러한 선택을 한 청소년들을 그래서 가출 청소년이 아니라 거리를 선택한 거리 청소년들이라고 부른다.

 

오래된 방의 문을 열고 나오다

 

한 해가 지는 12월의 마지막에 거리청소년들의 쉼터에서 이이들과 만나서 교육을 진행했다. 이야기책을 가지고 인권교육을 해달라는 요청과 그 쉼터가 여성청소년들의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여성주의로 읽는 옛이야기를 교육내용으로 준비해갔다. 여성주의(페미니즘)을 통해 인권이야기를 풀어가려 한 것은 페미니즘은 ‘성차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차별의 감수성이자, 우리 사회의 인권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히 때문이었다.

인권교육을 할 때, 특히 나도 여성이기에 여성들이 참여하는 교육을 갈 때는 참여자들이 말을 함으로써 그것이 위로가 되든 속시원함이 되든 무엇이든 얻었으면 좋겠다는 염치없는(?) 바램을 가지고 간다. 그녀들이 머뭇거리고 웅얼거리며 담아둔 말을 꺼낼 수 있길 바란다. 그럴려면 말을 잘 퍼올릴 방법이 필요하다. 마침 옛이야기를 통한 교육을 원했기에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통해서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길 바랬다. 좋은 질문이 질문받는 이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옛이야기는 <헨젤과 그레텔>, <선녀와 나뭇꾼>.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전지에 적어내려갔다. 옆에 삽화도 그려넣으며. 그날 사진을 찍을 형편이 못되서 삽화를 소개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삽화는 질문들이 하나하나 생생한 이미지로 재현되는 장면들이었다.

옛이야기 인권교육

 

“다른 건 다 아빠 맘대로 하시면서 왜 우리를 버리는 건 새엄마 말을 듣었나요?”

“새엄마는 왜 죽은 건가요?”

“우리가 정말 아빠랑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보세요?”

옛이야기 인권교육2

 

  “왜 선녀에게 묻지도 않고 데리고 왔어요?”

“그게 성폭력인지 정말 몰랐나요?”

“당신이 꾸린 가족이 우선이에요. 어머니 핑계대지 마세요”

“왜 맨날 남에게 의존하시나요? 당신이 만든 가족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죠”

“운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당신이 없으면 선녀와 아이들이 못살 것 같으세요?”

 

‘인터뷰’ 질문을 만들어 달라는 것은 이전 인권교육에서도 자주 사용해온 것이었지만, 이번 교육에서는 참여자들이 질문을 함께 읽으며 나누는 시간이 마치 상황극을 하는 듯, 혹은 빙의한 사람의 모습으로 읽어 내려간 것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듣고 있던 나는 어느덧 내 눈앞에서 마치 그이들이 직접 자신의 아버지에게 묻고 있는 듯한 장면이 영상처럼 어른거렸다. 단지 질문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 참여자들의 살아온 나날들이 그려지는 듯한 시간이었다. 모둠작업과 나눔의 시간을 가진 후 이전의 쉼터 청소년 교육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호흡과 집중의 시간으로 교육이 마무리되었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짧은 찰나의 교육 시간에 오래 걸어잠근 마음의 방문을 열었던 경험이 이들에게 작은 불빛을 안겨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염치없는 바램을 다시 꺼내보며 늦은 시간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 정주연(루트),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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