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불편함을 마주하는 연습

퍼즐

인권교육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종종 떠올리는 질문이 있다. “나는 어쩌다가 ‘인권’이라는 말에 이끌려 인권교육을 하게 되었을까.”

능력 있는 사람, 예쁜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되어 사랑받으며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었던 내가, 나 생긴 대로 살아도, 딱히 친절하지 않고 뭐든 잘하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여기며 살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기까지는 인권 혹은 인권교육이 나에게 전해준 수많은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들이 나의 일상과 관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내가 어떤 위치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지 결정하도록 도왔던 셈이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그 질문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갈등하는 나와 함께 얘기하고 토론해준 동료들이다. 그들이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의견을 나누어주지 않았다면 나도 크고 작은 시도를 계속 이어가기 힘겨웠을 것이다.

인권교육은 소소한 일상의 장면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공간이자, 다른 존재들의 알록달록함을 마주하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편견 또는 고정관념이 송두리째 흔들려 떠오르는 불편함을 경험하게 되는 장이기도 하다. 인권교육은 어찌 보면 그런 불편함을 마주하자는 초대장인지도 모르겠다. 그 초대장을 받아들고 우리가 어디로 움직여 갈지는 교육에서 만난 진행자와 참여자 각자의 몫이긴 하지만 말이다.

최근에 청소년들과 문화예술을 통해 자치, 인권 등을 교육하는 청년 기업과 만나 교육을 진행 중이다. 참여자들은 교육에서 받은 질문을 가족이나 지인들과 나누고 돌아왔다. 딱히 진행자들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다양하게 생각하는 연습을 시작하는 참여자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큰 즐거움이다.

어린이 청소년 인권, 인권의 역사를 통해 본 인권의 의미, 반차별 등의 세 가지 주제를 다루어 오는 동안 인권은 차별받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얘기에 참여자들이 공감하기를 바랐다. 나의 경험, 나의 일상과 노동을 낯설게 들여다보아야 타인의 경험이 나의 경험과 연결된다는 것을 발견하는 힘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 청소년과 만나는 교육을 직접 하는 분들이고 보니 ‘어른’, ‘선생님’으로 자리잡게 되는 자신과 청소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꽤 있었다.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평등한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나누어준  몇 가지 말들을 적어본다.

  • 지금까지 가족, 학교, 사회 안에서 우리는 무시당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그때마다 할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왜 말하지 못했을까. 인권이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는 게 새롭다.
  •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짧다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지?’ 하면서도 ‘그래, 뭐 내가 좀 더 노력하자,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괜찮아지겠지.’ 하고 버텼던 일. 요즘 유행하는 ‘존버정신’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버텼다.
  • 근데 가끔 인권이나 페미니즘은 너무 이상적인 현실을 만들자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까지 들추고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하는가.

이분들과 남은 교육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정돈하면서 이 글을 쓴다. 아무래도 하루 정도는 “왜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이번에도 지인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거리가 생기기를 바라면서..

 

글쓴이 : 림보(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