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인권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인권교육활동가들과 함께 인권교육운동의 길을 묻고, 고민하는 자리가 지난 12월14일에 있었습니다. 이날은 인권교육센터 들이 2008년 활동 시작이후, 10년을 맞으며 마련한 토론회이기도 했습니다. 부분적으로, 혹은 분야에 따라 인권교육을 논의하는 자리는 간혹 있어왔지만, 다수의 인권교육활동가들이 인권교육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는 흔치 않았기에 많은 활동가들이 관심 있게 자리를 메웠던 것 같습니다. 이날의 발제문과 토론문을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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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이 양적으로만 확대되었지만 본래 지향했던 가치와 철학은 축소, 왜곡되고 있는 변화하는 지형에 대한 고민이 있어 왔습니다. 인권교육의 제도화는 대표적 변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 흐름 속에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만드는데 필요한 인권교육의 가치와 지향을 여러 인권교육가와 함께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인권교육다운 인권교육이라면 어떠해야 할까요?

첫 번째 인권교육은 ‘모순이나 갈등을 얼버무리지 않는 것’ 입니다. 학생인권과 교권, 장애인 인권과 종사자 인권과 같이 인권을 대립/갈등 관계로 만들 때 사회적 약자들은 더 이상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집니다. 인권교육은 이런 상황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로 얼버무리지 않고 관계와 맥락을 따져 가치판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일상을 ‘사건화’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사소하고 평범했던 일상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하나의 ‘사건’이 될 때, 모두의 문제로 사회화, 정치화되는 것 입니다.

셋째, 인권교육은 구조와 맥락을 살피며 사회적 좌표를 읽어내는 힘을 키웁니다.

넷째는 ‘현장’을 담는 것입니다. 인권교육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인권운동이기 때문에 인권현장과 밀착한 교육을 꿈꿉니다. 그 ‘현장’은 참여자의 삶이 있는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말하기도 하고, 참여자의 삶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서로 다른 참여자의 삶이 만나고 연결될 때이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는 인권교육이 이야기하는 인권은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삶을 전제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인권교육을 말합니다. 권리항목은 저마다 고유한 의미와 내용을 갖지만, 다른 권리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빵과 장미가 모두 필요한 것처럼 개별권리들이 서로 연결되고 통합되어야 존엄한 삶,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것이지요. 인권교육은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권리와 삶을 총체적으로 조명케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권교육은 서로 기대어 성장해왔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운동과, 각각의 인권교육운동 영역이 서로 만나 영향을 미치며 지금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인권교육은 이렇게 기대며 길을 찾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인권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인권교육가들 스스로 점검의 필요를 느껴왔습니다. 이상의 키워드들은 지금까지 인권교육 활동을 이어온 이들의 고민 속에서 건져낸 것들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토론되고 확인하며, 새롭게 만들어 가길 기대합니다. 더불어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만드는 데 있어 인권교육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역시 빠질 수 없습니다. 교육가는 늘었지만 각자 어떤 내용과 고민 속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고, 각자가 인권교육활동 속에서 여러 고민이나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권교육운동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되기 바랍니다. – 인권교육센터 들, 묘랑 (발제 요약)

들에서 준비한 <인권교육운동, 길을 묻다> 발제에 이어, 장애인권교육가 밍구님, 인권활동가 미류님, 전남 청소년노동인권교육가 명인님의 경험 나눔과 질문, 토론이 있었습니다.

밍구님은 노들장애인야학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인권교육가로 활동해오면서 만들어낸 장애인권교육의 원칙과 고민을 나눠주셨습니다. 학교를 다녀 본 적도 없고 한글도 모르고, 모르는 사람 앞에서 길게 얘기를 해 본 경험도 없는 장애인이 인권교육가로 나서게 되는 과정이 인권운동이고, 성장과 교육의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비장애인 교육가와 장애인 교육가가‘1+1’으로 짝을 이뤄서 진행하게 된 것도, 학교에서 요청한 1,2교시 수업에 지각하지 않게 교육장 인근에서 합숙하다가 3,4교시로 되레 학교측에 요구하게 된 것도 시행착오와 직접 부딪히며 바꿔온 것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맞는 교육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비장애인 중심의 학교문화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도화된 인권교육 안에서 강사의 자격을 따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여전히 장애인 차별적이고 기득권 중심적인 것이라는 밍구님의 고민과 질문도 있었습니다. 장애인권교육은 차별을 만드는 구조의 모순을 짚어내는 것인데 장애인권강사의 자격 역시 이런 기존 질서의 틀로 보고 있다는 것이지요. 밍구님은 (‘장애를 이유’로)35살에서야 첫 외출을 할 수 있었던 장애인 당사자가 인권교육활동을 통해 지금은 ‘장애’를 편하다고 말하게 되는 과정을 보며 인권교육이 가진 혁명적인 역할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미류님은 ‘인권교육운동은 인권교육에 대한 운동인가, 교육으로 하는 인권운동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인권교육 자체가 인권운동의 한 현장이라면 교육의 내용이나 방식을 비롯해 제도 안팎으로 인권교육다운 인권교육을 확립하는 것이 인권(교육)운동의 목표여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제도 안팎의 현실은 인권교육운동만으로 고민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토론문에 소개된 이주민정책의 예를 보면, 정부는 이주민정책을 분할하여 다문화로 일부를 포섭하고 고용허가제로 일부 배제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때문에 ‘다문화인권교육’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또 배제된 사람들이 나오고, 그래서 오히려 일면에서는 인종차별적 시선이 강화되는 것이지요. 제도를 통해 접하게 되는 현실의 문제 상황을 인권교육만으로(안에서) 대항하여 풀기보다 인권운동 안에 과제로 제시하며 큰 틀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인권’을 설명하는 교육에서, ‘인권’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교육에 선 지금, 한 발 더 나아가, ‘삶의 구체적 문제나 사회적 쟁점을 집중해서 다루며 깊이를 만드는’인권교육되길 기대하며, 더불어 적극적으로 ‘들 다운 인권교육’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말라는 조언도 붙였습니다.

명인님이 속해 있는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는 학교로 찾아가는 ‘노동인권 수업’을 주 활동으로 하지만 캠페인을 하거나 청소년 노동상담, 권리 지원활동, 조례제정 활동 등 다양한 인권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명인님은 이러한 활동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상담을 해보지 않은 강사와 해본 강사, 그리고 상담부터 권리지원까지 경험해 본 강사는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때도 그 역량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권교육가는 ‘인권교육 활동’에 걸 맞는 감수성과 나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데, 이제 막 ‘인권 교육’에 첫 발을 내딛는 교육가에게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가 고민이라는 것입니다. 인권교육의 ‘질’과 ‘강사의 성장’이라는 두가지 질문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명인 님은 인권교육이‘참여자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고 할 때, ‘페미니즘, 장애인권, 성소수자인권, 청소년인권 등 요청에 따라 언제까지 백화점 식의 교육을 진행해야 하는 것인지’고민 던졌습니다. 각각 따로 진행하는 인권교육 안에서 어떻게 교차성을 담보할 것인가부터 백화점식으로 진행되는 인권교육에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인권교육운동이 풀어야할 숙제로 제시했습니다.

인권교육운동의 지향, 인권교육의 방법,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사람과 참여자의 관계, 인권교육의 실천, 인권교육의 법제화 등 인권교육이 처한 상황을 둘러싼 고민과 질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양한 고민지점이 한 자리에서 펼쳐져 몇가지 토론으로 모아가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날의 토론은 인권교육을 키워드로 고민하는 지점과 사람을 함께 확인할 수 있던 자리로 의미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인권교육이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된 현재의 제도안에서, 역설적이게도 인권교육운동은 낯설어지는 우려가 있어왔으니까요. 이날의 질문과 고민은 ‘인권교육운동’이기에 가능한 것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함께 토론하길 바라는 마음들도 확인한 자리였는데요, 이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글쓴이 : 은채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