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병역거부, ‘마음의 자유’ 깊이 읽기

병역거부를 주제로 교육을 진행할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병역거부 자체에 대한 강의라기보다는 인권교육의 선상에서 교육이 배치되면서, 당사자이면서 교육가이기도 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을 했던 교육이었습니다. 교육 제목은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을 통해 본 마음의 자유’였습니다.

보통 병역거부로 강연을 하면 ‘국가에 맞서 신념을 지킨 진정 용감한’ 존재이거나 ‘분단 체제가 낳은 피해자’ 이미지를 넘어선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감옥도 감수한 선량한 청년 이미지가 아니라 군사화된 남성성과 여성혐오가 연결되는 지점에 대한 고민의 선상에서 병역거부를 말하면 ‘예비역’들의 반론이 나오는 것이죠.

인권교육에서 당사자로서 병역거부를 말할 수 있었던 이 흔치 않은 기회에 단지 다양한 신념을 관용하는 차원이나 고전적인 권리 목록(사상.양심.종교의 자유)의 일환으로 설명하는 것 이상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는 군대 문제가 안 가도 되거나(‘신의 아들’) 끌려가는 ‘일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에 갈 수 없는 ‘비남성'(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학력미달자 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 사회의 차별이 작동하는 방식과 연결된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불쌍한 피해자의 이야기도 아니고, 일부 남성들만의 문제라는 오해를 피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 속에 결국 ‘나’라는 개인이 병역거부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어떻게 의미화 했는지, 그것이 인권교육의 지향과 연결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인권교육, “견딜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

‘들’에서 ‘마음의 자유’를 주제로 함께 진행한 교육이었고, (영화 제목이기도 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참여자들의 경험을 듣는 시간이 오전에 있었습니다. 한 분이 90년대 중반 교사 시험을 합격했는데 자신도 잊고 있던 국가보안법 기소 전력 때문에 결국 떨어졌던, “어디서 공개적으로 얘기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국가는 자신을 전과자란 이유로 밀어냈지만, 그렇게 순순히 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야학 교사 활동을 하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떨리듯 또렷하게 흐르던 그 분의 목소리를 경청하던 교육장의 기운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네요.

그리고 같은 날 오후에 병역거부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위의 참여자 분 덕분에 교육을 준비하면서 이 말을 할(수 있을)까 하지 말까 고민했던 나의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습니다. ‘마음의 자유’를 짓누르는 힘 앞에서 사람은 어떻게 굴종하게 되나, 그렇게 굴종한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인권교육에서 말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할 때 존엄이 훼손되었다고 느낀다.” 몇 달 전 교육 참여자로 이 질문을 만났을 때 출소하던 날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벌써 5년도 지난 일인데 아마 그 질문을 받은 때가 구속 수감된 전직 대통령의 구치소 내 처우를 둘러싼 말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범죄자에게 무슨 인권이냐”는 주장이 들리던 때라 한동안 묻어두었던 개인적 기억이 소환된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해 출소 이후 부단히 다른 해석을 시도한 장면이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어쩌면 ‘군대 다녀온 남자들의 축구 이야기’처럼 들릴까봐 검열을 했던 이야기. ‘마초 남성’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자기 검열도 있으나 실은 ‘수치스러운’ 나의 밑바닥을 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의 검열이 더 크게 작동했던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만 보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 ‘피해자성’에 숨어 있을 때 뭇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호의 섞인 위로의 달콤함을 거절하기 힘든 욕망도 덕지덕지 붙어있는 이야기입니다.

교도소 문 밖으로 나오는 저를 맞아주려고 먼 길 오는 이들이 외출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 저도 ‘사회’의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대강당에 섰습니다. 언제든 명목을 만들어 ‘징벌’을 줄 수 있는 교도관의 눈치를 보는 것도 이제 정말 거의 끝이 보이는구나 싶던 순간. 입소하던 날 했던 신원확인절차를 다시 밟고 며칠 전 엄마가 ‘영치과’에 넣어준 빳빳한 새 옷을 전해 받았지요. 속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여느 때처럼 교도관들이 주르륵 서있고, 어떡하지 0.1초 정도 망설였던 듯합니다. 그리고선 등을 돌려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 내린 것 같습니다.

출소 후 한동안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고 무기력한 상태로 꽤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교도관 앞에서 옷을 스스럼없이 벗었던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당신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냐.” <남영동 1985> 영화 속 주인공이 고문 앞에 무너지려 할 때 환청으로 들리던 아내의 목소리였습니다. 고문기술자들이 가하는 고통을 견디는 이유, 이 모든 일의 발단에 대한 생각, 어떻게든 지금의 시간을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들이 겹쳐졌을 때, 당국에 굴복하(려)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내면의 목소리로 보였습니다. 수감 시절 저의 모습이 겹쳐진 것이죠.

수감 초기, 징역살이의 의미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규율에 따르고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온순한 수용자가 되지 않으면 그 울타리 안에서 내가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것들마저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였습니다. 교도소 담장 안에 갇혀 있다는 고립감이 사람을 과장된 공포 안에 가두는 것이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앞에서 항의하지 못하고 작아진 나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잘못한 게 없는 내가 왜 이런 자유의 구속을 겪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괴로웠습니다. 결국 내가 찾은 대답은 그냥 하루 빨리 이 시간을 견뎌서 출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반군사주의, 비폭력, 평화주의 신념 이런 것들이 당장 내게 닥친 생활의 국면에선 부질없게만 느껴질 때, 오늘 자고 나면 하나 더 줄어있을 달력 속 숫자만이 유일한 믿음의 끈이던 시간.

교도소 안에서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내 가석방이 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만기 출소보단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병역거부자 중에는 안에서 문제제기도 잘 하고 가석방도 별 탈 없이 받아 출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드는 부러움과 동시에 난 그들처럼 내 주장을 표현하지 못했단 자괴감. 잘못한 게 없는데 교도관에게 ‘죄송합니다’를 조아려야 했던 순간들의 기억을 직면하기 싫어 도망칠수록 무력감 또한 심해졌습니다.

유럽병역거부강연 나눔행사 웹자보

물론 “시간이 약”이기도 했지만, 출소 후 무기력한 시간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전쟁없는세상에서 최현정 님과 함께 진행했던 집단상담이었습니다. “수치심을 분노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 굴욕감의 늪에 빠져 있던 자아를 꺼내준 것이죠. “당신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냐”란 목소리는 수치심에 맞서는 내면의 방어기제였습니다. 때론 위로가 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냉소는 무력감을 심화시키기에 벗어날 필요가 있는 최면제였습니다.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그런’ 경험을 한 게 아니라는 확인과 더불어 인간을 그런 무기력한 상태에 가두고 쉽게 조종하려드는 구조가 문제라는 확인을 하자 비로소 징역의 때들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저에게 인권교육 활동은 다른 존재들이 처해있는 조건을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의 공통성을 확인하며 지난 ‘고통’의 해석을 갱신하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가며 견딜 만한 상태가 되는 것, 더 나아가 이제는 그 ‘고통’을 조몰락거릴 언어적 공간을 갖게 된 과정이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서사를 재구성하고 관계 속에 자기 위치를 재조정할 수 있는 감각과 힘을 갖게 하는 것이 저에겐 곧 ‘인권’의 매력이자 ‘인권교육’의 지향으로 여겨집니다.

출소 날 기억을 재구성하는 이야기의 끝은 이렇습니다. 옷을 갈아입는 우리들의 맨몸을 여전한 감시의 눈빛으로 영혼 없이 바라보던 교도관들 사이에 저와 친분이 있었던 ‘고충처리반 주임님’의 눈빛이 떠오릅니다. 당시 옷을 내리던 내 눈과 마주친 그는 옆 부하 직원에게 가림막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려 ‘주었’습니다. 나에게 인권침해 진정을 당할까 불안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맨몸을 지켜보는 상황에서 그가 느꼈을 곤혹스러움, 모종의 ‘인간다움’이 발현된 것이라 믿고 싶어졌습니다. 그이의 인간성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제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는 최후의 근거란 생각도 감히 듭니다. ‘확신범’으로 구속은 됐지만 ‘교화’되어 출소한 것이라면, 제가 경험한 ‘교화’가 남들에게도 수월해지기 위해서 전직 대통령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감옥인권 전반이 개선될 필요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을 모욕하고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도록 만드는 조건을 문제 삼으며 존엄과 상호연결성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확장해가는 시간이 바로 인권교육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성: 날맹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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