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청소년 알바십계명’대신 청소년노동 인권 선언을~

여러 지역과 공간에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 ‘노동인권’으로 자치 법령을 검색해 보면 28개 조례가 나타난다. 조례엔 청소년이 참여하는 노동인권교육 시행이 꼭 들어가 있다. 시행을 앞둔 조례가 있고,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고 있으니 앞으로 더 늘어날 일만 남은 것 같다. 척박한 노동인권 현실을 바꾸기 위한 여러 움직임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과속방지턱을 놓고 싶은 장면도 여럿 있다. 그 중 하나는 청소년과 함께 하는 노동인권교육에서 노동법에 정한 내용의 테두리 안에서 권리를 나누는 장면이다.

학교로 들어가는 교육 중에는 1년에 한 번 2교시, 100여 명과 50분 강당 수업 등인 경우가 많다. 시기는 1학기보다는 2학기가 많다. 제한된 조건에서 ‘이것만이라도 남기고 와야지’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일할 때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아닌가 싶다. 교육활동가 과정이나 강사양성 과정에서 다룬 인권의 이야기들은 노동법 내용을 추려 담은 내용으로 수렴하곤 한다. 강사가 직접 권리 내용을 OX퀴즈로 만들거나, ‘도전, 골든벨!’의 형식을 빌려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가 배포 하는 <청소년 알바십계명>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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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노동부 <청소년 알바십계명>

‘계명(誡命)’의 한자 풀이를 찾아보니 ‘종교ㆍ도덕상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規範). 예수교의 ‘십계명’ 같은 것’이라고 나와 있다. 이 풀이대로라면 <청소년 알바십계명>은 청소년이 일하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열 가지 규범이 된다. ‘아르바이트 청소년과 사업주가 알아야 할 열 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내용은 현행법에서 정하고 있는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 사항 으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제목은 <청소년 알바십계명>인 이유를 곱씹어 보게 된다. ‘사장은 ~해야 한다.’가 아니라 ‘청소년은 ~ 해야 해요 혹은 할 수 없어요.’로 주어가 바뀌는 순간 마땅히 권리를 누려야 할 사람에게 두루 뭉실 책임을 얹는 결과가 된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제67조(근로계약)에는 “사용자는 18세 미만인 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제17조에 따른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여 교부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내용이 <청소년 알바십계명>에서는 “제3계명, 근로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해요.”로 정리되었다. 근로계약서는 일 하기 전 노동조건을 분명하게 하려고 쓴다. 청소년노동자가 요구하지 않아도 사업주는 일 하기 전 근로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해서 줘야 한다. 사업주가 이를 어기면 벌금도 내야 한다. 의무를 다해야 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채 ‘근로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해요.’라고 알리는 순간 청소년노동자가 알아서 챙겨야 할 일로 둔갑하기 일쑤다.

노동법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최소한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생겨났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와 자본가가 자유롭게 계약을 맺고 대등하게 책임을 지는 관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법은 철저하게 노동자의 입장에서 만들고 해석해야 한다. 사업주가 적어도 이 이상의 노동조건을 만들고 지켜야 사업이 가능하도록 법이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를 물건처럼 ‘사용하는 자’가 법을 지배하고, 그 법에서 정하고 있는 내용들이 최고기준이고 중립적인 기준인 것처럼 다뤄져서는 곤란하다. 근로기준법의 ‘근로’는 사업주에게 종속되어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법이라고 얘기하기에 부족함이 많다. 인권의 내용이 법에 의해 보장되어야 하지만 ‘근로기준법’에 대해 여러 의문을 품고 때론 저항하고 바꿔야 한다.

그런데 청소년노동인권 교육을 할 때 가끔씩 이런 의문을 잊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것을 생략한 채 근로기준법이 마치 청소년노동자에게 알아두면 쓸모 있는 무기가 될 것 같이 소개하곤 한다. 현행법을 아는 건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선 곤란하다. 처음 접하는 노동인권교육에서 <청소년 알바십계명>을 그대로 소개한다면 마치 사업주의 의무 사항을 ‘알바’가 일할 때 잘 지켜야 할 메시지로 둔갑할 수 있다. 의무의 주체가 생략된 유체이탈 화법으로는 권리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없다. 또, 십계명에 정리된 내용 일부는 5인 미만이 일하는 식당, 배달 대행이나 호텔 연회장 노동 등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는 청소년노동자에게 적용하지 않아도 사업주에게 법적 책임이 없는 내용이라 공허하기까지 하다. 알바십계명을 반복해서 숙지할수록 노동자가 기본적으로 향유해야 할 권리 중 어떤 권리는 종종 실종되고, 어떤 권리는 나와 먼 것이 되어 버린다. 일 경험이 쌓일수록 법 좀 알면 알수록 냉소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노동법은 어떤 노동자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노동법이 생긴 후 수없이 고쳐 쓰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일부 두터워지기도 했지만 왜 현실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수많은 예외 규정이 우리 사회 노동인권의 수준을 어떻게 후퇴시켜 왔는지, 심지어 사업주가 합법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뭉갤 수 있도록 바뀌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더 살펴야 한다. 사업주의 관점과 언어로 노동자의 권리를 얘기하는 한계는 분명하다. 근로기준법이 노동인권법으로 거듭나도록 <청소년 알바십계명> 대신 청소년노동자의 인권 선언을 정하고 나눠 보면 어떨까?

 

*글쓴이 : 수정_이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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