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워크숍
“청소년노동인권교육, 비상(非常)한 시국에 비상(飛上)을 꿈꾸다”

인권교육센터 ‘들’에서는 매년 인권교육활동가를 위한 역량강화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런데 2016년에는 ‘들’ 내부 차원에서 <인권교육 새로고침>의 해로 삼아 내부 워크숍 등을 통해 인권교육의 의미와 방법론 등을 다시 정리하느라 건너 띄어서, 이번 워크숍은 참으로 오랜만에 준비된 자리였다. 이를 기점으로 11월과 12월에도 다른 주제로 워크숍이 이어질 것인데, 첫 번째로 준비된 것이 청소년노동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자리였다.

내년이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더욱 확산될 예정인데,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우리가 견지해야할 원칙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입론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편이어서 비록 하루의 짧은 시간의 자리였지만 준비되게 되었다. 한편, 노동인권교육에 학생인권을 넣을 것이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어왔다는 것도 이번 워크숍을 준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왜 이런 논란이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학생인권과 노동인권을 분리해서 사고하는데 익숙해져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의 권리가 낱개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녹아있기 때문에 노동인권을 말하는데 학생인권이 녹아있고 학생인권을 말하는데 노동인권 녹아있으므로, 이 둘 중 하나를 택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계기였다.

우선, 워크숍 오전 시간에는 학생인권과 노동인권의 교차점을 찾아봄으로써 <청소년+노동+인권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데 목적을 두고 프로그램을 배치하였다. 오후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 한걸음 더>라는 제목으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단편적 프로그램 중심 혹은 노동에 관한 법 지식을 전달하는 경향이 강해서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역량강화 과정을 만든다고 할 때 어떻게 교육흐름 가져가는 것이 좋을지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엔 대화와 질문이 흐르는 노동인권교육으로 가기 위한 방법론을 다루는 시간으로 마무리 지었다.

청소년노동인권워크샵

“학생인권과 노동인권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왜 노동인권교육에서 학생인권을 말할 수밖에 없는가. 학교는 ‘노동현장’과 분리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는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학교는 사회의 일부이며 동시에 학생들은 알바 병행하거나 학교에서 노동자가 될 준비를 한다. 또한 학교 현장 자체가 노동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터와 학교는 분리된 공간이라고 볼 수 없다. 근대학교는 능력주의를 앞세워 새로운 지위로 도약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계급재생산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을 거쳐 간 청소년들에게 노동의 위계성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고, 이것이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청소를 벌로 하는 것은 또 어떠한가. 청소가 벌이 되는 순간 이것이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전경련이 만든 차세대 경제교과서는 “자본주의만이 민주주의에 친화적인 경제체제”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영혼에서 반기업정서를 빼겠다는 것이다. 또한 교총은 노동교육이 확산되는 추세에 대해 “노동과 인권의 중요성만 강조할 경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필요한 시장경제의 원리에 확고한 인식을 갖지 못할”것이라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학교가 자본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여주는 사건인데, 실제 교과서들도 친기업적인 가치관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것이다. 이로부터 노동인권교육은 단지 ‘불쌍한’ 알바생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학교 공간에서 학생들이 부딪히고 학습하게 되는 것들은 노동공간에서도 일어나는 문제들이다. 일테면 여학생의 외모를 학교가 다루는 방식은 노동현장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영향을 준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노동현장에서 여성의 위치가 학교 교육에서도 나타난다. 특성화고에서 여학생들에게 화장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이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일터와 학교를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은 노동을 단편적으로 다루게 되는 것이자, 학교의 역할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의 관점에서 학교를 해석하는 관점을 길러내는 것이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학교와 일터가 굴러가는 원리 구조가 어떤 면에서 닮아있는가,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받느냐에 따라서 일터에 어떤 사람으로 자기매김하느냐가 연결된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워크숍을 준비하며 이러한 문제의식이 비추어 노동인권과 학생인권의 교차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촘촘히 짚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학생인권과노동인권의 교차점

활동은 모둠별로 학생인권과 노동인권의 교차성을 보여주는 열쇳말 중에서 세개씩 가져간 뒤, 교차적인 장면을 찾아보고, 학교에서의 반복된 경험이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함께 찾아낸 것들을 되짚어보니 노동인권과 학생인권이 교차성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싶게 나왔다. 여기에 모두 정리하고 싶었지만, 알면서 간과했거나 혹은 그동안 잘 몰랐던 부분을 중심으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본다.

3번. 계급 계층화된 공간 분할

▸떠오르는 곳 : 화장실. 교장실과 교무실. 교사 식당. 교사 라인. 학교 엘레베이터. 우열반의 존재. 교실 안에 교사 자리와 학생 자리. 사장실.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대표적으로 교직원 화장실. 학생들 입장에서도 선생님들과 같이 쓰기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사 화장실에는 비데가 있는 경우, 학생들은 “누구 엉덩이는 귀하냐”고 외친다. 분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분리가 위계적으로 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이로서 차별 받는 것에 익숙해지게 만들뿐 아니라, 차별하는 것에도 익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4번. 유니폼/ 유사 유니폼/ 복장 단속

▸떠오르는 장면 : 학생은 교복, 감옥은 죄수복, 일반 직장에서도 노동하는 사람은 유니폼을 입는다. 전문직도 유니폼을 입기도 한다. 사회적인 나이, 신분, 성별로 인해서 관리되고 통제됨. 여학생에 대한 복장통제는 여성의 몸을 더 유순하게 만드는 통제의 역할까지 이어진다.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통제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원래 힘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힘이 점점 축소된다. 가장 기본적적 권리가 신체의 자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동시에 유니폼은 차별을 은폐하기도 한다. 유니폼은 지위나 역할에 따라 다르게 입는데 그렇기에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라는 메시지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것이 차별을 양산하고 은폐하며 동시에 사람들이 이를 내면화해서 자신을 통제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5번. 장시간 + 초강도 노동

▸떠오르는 장면 : 야간자습, 0교시 수업, 야간노동.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아간자습을 거부해본 적이 없으니 사회 나갔을 때 8시간 넘어 야간 근무하는 것을 선택할 기회로 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정규수업 전에 학교에 와서 자습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도록 한 분위기에서, 노동시장에서 업무를 하기 전에 사전에 오는 것도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된다.

교실 안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좋은)대학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 회사에서 승진도 군말없이 오래 잘 버티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좋은 월급 받는 것과 연결되어, 자기 시간에 비주체적이 되고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어쩌다 무슨 날이라 일찍 하교하게 되면, 그날은 너무나 운좋은 날처럼 여겨지고, 오늘 일찍 끝내줘서 너무 감사한 것처럼 느끼기까지 한다. 그런데 당연한 것에 왜 감사해야 하지? 시간주권성, 즉 내가 시간의 주인이고 내 시간에 주권자라는 인식을 생각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바로 이런 강제로 요구되는 초강도 학습시간에서 찾을 수 있겠다.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실제로 우리는 어떤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가 하는 질문도 해봐야 한다. 시민으로의 시간, 곁을 돌아볼 시간, 내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사라진 채 사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승진만 하면, 대출금만 다 갚으면.. 미래의 문제로 유예하는데 익숙해지며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6번. 친밀과 하대 사이.

▸떠오르는 장면 : 학교에서부터 학번에 따른 서열을 몸에 익힘. 선후배 사이 같은 친밀함이 권위나 권력관계를 통해서 폭력적 상황으로 되지만 저항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 가족같은 친밀함을 내세우는 것, 성희롱. 의대/치의대 같은 곳에서는 본과/예과 사이에 엄청난 위계구조가 있다. 본과생은 실험을 하고도 치우지 않고 이것을 예과생을 일로 당연시 여김. 나름 건강한 사회문제의식을 가진 의대생들을 만나도 이 부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고 역할을 하는 모습을 봄.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친밀함의 외향이 권력관계를 가리는 효과를 만들어서 폭력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하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존감에 대한 감수성이 낮아져서 문제의식을 못 가지거나 해결방안을 못 찾는다.

8번. 지배자의 언어/세계관.

▸떠오르는 장면 : 알바생이라고 하므로써 노동자라는 생각을 지우는 것. 미숙한 너희를 쓰는 게 어디냐는 선심성이 느껴지는 표현을 통해 권리의 유보를 당연하게 여기도록 한다.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누구의 언어와 시선으로 사용하도록 훈련받는가. 알바생이 아니라 ‘노동자’라고 하는 것은 이런 언어의 세계관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노동부에서 알자알자 알바 10계명을 유포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캠페인을 하면서 ‘하루 7시간 이상 일할 수 없어요’라는 피켓을 들고 나왔다. 자신을 불법으로 만드는 언어를 자기가 쓰는 것이다. 이것은 동의없이 7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사업주가 문제인거다. ‘사용자는 동의없이 ~해서는 안된다’와 같은 어법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9번. 지루함을 견디는 연습

▸떠오르는 장면 : 야간자율학습, 노동절에 회사가 전체 야유회 가는 것, 시간통제 50분 수업 10분 휴식도 직장도 비슷하고.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말. 의무라는 걸로 자기 시간을 버티며 보내게 하는 것. 참여가 보장되지 못하고 자치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정해진 교과과정대로 따라가야하는 것.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초등학생 입학식을 가보면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시간에 학생들 얼굴에 지루함이 가득. 그렇다고 소리 내서 하품하거나 돌아다니거나 할 수는 없다. 재미없다는 것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이때부터 훈련된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이라는 만화에 보면 ‘매일매일 변함없이 일하기 싫은걸 보면 난 참 꾸준한 사람인것 같아’ 라고 말하는 이가 나온다. 노동이 지루하고 하기싫은 것은 왜 노동인권문제가 되지 않을까. “너무 지루해~ ”라고 하면 “(학교/일터에) 자아실현하려 오냐?” 이런 반응들이 돌아온다. 무엇을 위해 공부/일 하느냐는 질문은 사라지고 지루함을 견뎌내는 몸의 능력이 학교에서부터 길러져 노동시장까지 연속된다.

17.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

▸떠오르는 장면 : 성적이 떨어진 건 열심히 안한 네 책임. 좋은 일자리를 못구하는 것도 네가 공부를 안한 책임.

▸노동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웹툰 <송곳>에서 ‘경쟁에서 져서 그런 걸 어쩌라구요. 본인이 책임져야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학교 다닐 때 매일 매일이 기회였다’고도 한다. 이런 말들이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되며 자기 무능을 남탓, 구조탓하면 안된다는 논리가 확고해진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권리연합회를 만들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이에 앞서 우선 했던 말이 ‘우리가 공부 못해서 특성화고 온 게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었다. 이 사회에서 발언하기 위한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성적 문제에서부터 책임을 개인화하는 것은 결국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과 연결된다. 책임을 개인화하는 과정에서 파괴되는 것은 공동체가 함께 노력하고 변화하는 과정 자체가 깨어지는 것이 문제다. 협력을 통해 문제의 구조를 바꾸어내는 경험들이 삭제된다.

 

<학교에서 배운 것>

인생의 일할을 /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 아마 그랬을 거야 /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 경멸하는 자를 / 짐짓 존경하는 법 / 그 중에서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유하의 시다. 이 시는 1절에서 끝났지만, 모둠토론을 거치고 나니  추가할 것들이 2절, 3절, 아니 그 이상으로 넘쳐난다. 도대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뭐였던가. 학생인권이 노동인권과 만나는 교차점을 분석해보니, 더욱 학교의 폭력적인 교육문화가 일터의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학생은 학생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기존의 메시지를 꼬아서 만든 포스터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학생은 학생답게 잘 쉬자.’ 쉬는 것은 학교 생활 안에서만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세계를 바꾸는 이야기기도 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을 인권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노동인권을 확보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워크숍에서 나눈 이야기의 정리를 마무리 한다.

*글쓴이 : 정주연(루트),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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