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커피노동자의 퇴직’사유’서
후원인 타랑 님이 <소란>에 보내온 글

* 최근까지 한 커피 업체에서 일하다 퇴직을 했습니다. 퇴직을 하고 나니 오히려 회사를 다니면서 겪었던 일들과 고민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불만들이 글로 표현되는 것만으로도 제겐 힘이 됐습니다. 고민 끝에 회사 이름은 밝히지 않으려 합니다.

작년 어느 직원분이 퇴직 하면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소통하는 매장에서 일하고 싶다’…출근 첫날만 같이 일했던 분이기 때문에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 많은 아쉬움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던 매니저에게는 손님들과의 소통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로 줄곧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궁금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행위는 일했던 기간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결정일 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을 한다는 건 더 이상 타협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소통이 정말 고객과의 그것만을 의미했을까요? 단 하루라도 직원들과의 소통을 경험하기엔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소통이 그 사람에겐 어떤 의미였을까요? 비슷한 입장에 놓였기 때문인지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그분의 결정이 나름 이해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최근 각 매장으로 예고 없이 핸드폰이 배송됐습니다. 회사 이름이 프린트된 스티커가 붙어있어서 그것이 공용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했지만 처음엔 다들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뒤늦게 매장별 핸드폰을 마련하게 된 경위와 목적을 ‘카톡’으로 설명 듣고 상황이 이해되긴 했지만 반가움과 동시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매장에 유선전화가 없었던 이유를 운영상 필요가 없어서라고 설명 하셨는데, 그런 상황이 공적인 업무를 개인 핸드폰으로 처리하는 이유가 될 순 없습니다. 휴일에도 담당 매장업무를 위해 개인 핸드폰을 이용하는 환경과 그런 상황을 너무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갑자기 등장한 업무용 핸드폰이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위생적인 이유로도 매장에서 개인 핸드폰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공용 핸드폰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소통채널이라고 소개된 핸드폰은 도입과정 자체가 이미 직원으로서 느끼기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습니다. 본사에서 연락하면 매장별로 신속하게 응답하라는 뜻이죠.

“소통하는 매장에서 일하고 싶다”

작년 워크숍에서의 일입니다. ‘대표님과의 대화’ 시간이라고 사람들이 대표를 중심으로 모여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그건 대화라기보다는 강연에 가까웠습니다. 말하는 대표의 위치와 듣는 직원들의 위치는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강연 내내 말하는 사람은 대표와 선배 한사람으로 고정돼 있었고 다른 직원들은 듣기만 했습니다. 그 선배 역시 이야기의 주체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미리 취합한 질문들을 대신 읽어주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습니다. 질문하기 위해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거나 누군가가 대신 질문해야 하는 상황을 보통은 대화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때 저를 대신해 선배가 했던 질문도 소통 채널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직위에 상관없이 어떤 내용이건 직원들의 생각이나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그런 통로가 소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강연이 끝나고 제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채널이 다양해도 서로의 입장과 조건이 다르면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그건 ‘대화’라는 소통 가능성이 질문 없는 ‘강연’이 되는 주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뜬금없이 영업마감 후 매장으로 모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금까지 회식자리 외에는 모임을 가져본 경험이 없어서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 생각했는데 누구도 분명한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알고 있는데 얘기를 안해줬을 수도 있고 굳이 얘기할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갑작스러운 ‘집합’을 대표가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만으로 모든 질문은 가로막혔습니다. 이유를 몰라도 이미 퇴근을 했어도 일단 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대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직원들은 들어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대표와 직원은 이미 질문을 주고받으며 평등하게 대화하는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도 질문을 받긴 했지만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질문 없음이 무조건 동의한다는 뜻은 아닌데 이럴 땐 질문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질문하지 못한 개인의 용기 없음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질문하기 힘든 분위기와 환경이 문제일까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며 회사의 뜻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직원들끼리의 관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선/후배라는 서열중심 문화는 각각의 역할을 강조하기만 할 뿐 그 둘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습니다. 선배로서의 역할과 후배로서의 역할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호간의 관계를 고민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때 그 역할수행에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은 조직의 부적응자로 낙인 찍히고 개개인의 능력부족으로 폄하되며 집단적인 소외를 경험합니다. 그러다 퇴직하면 원래 참을성 없는 사람이라고, 조직과 안 맞는 사람이라고, 그럴 줄 알았다며 일축해버립니다. 그리곤 곧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혹은 그 역할을 대신 해주기를 기대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역할에 맞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왜 일을 그만두는지에 대해선 크게 관심 없습니다. 조직이 변화하는 것보다 개인이 변화해서 적응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까지 그런 조직문화를 이끌거나 적응했던 사람들이 모두 문제적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니까요. 결정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대답하는 사람과 질문하는 사람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질문할 수 있는 사람과 질문도 할 수 없는 사람마저 정해진 것 같습니다. 질문 가능성이 차단된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호칭의 개선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조직의 문제는 호칭을 사용하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듯 군대식 조직문화가 문제라면 조직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조직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후원인 타랑, 16년 들 송년회 때 커피 내리던 모습

16년 들 송년회. 커피를 내려주던 타랑.

메뉴교육과 테스트는 연차 중심의 선후배관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입사 3개월 전후로 받는 메뉴교육은 경험 많은 선배의 노하우를 후배에게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교육과정은 이론과 실습이 나뉘어져 있고 이론을 설명하고 시연하는 주체는 선배로, 설명을 듣고 따라하는 주체는 후배로 설정됩니다. 경험이 많다는 건 무조건 많이 알고 있다는 뜻으로 통하고 커피도 더 맛있게 그리고 빠르게 내릴 수 있다는 능력으로 평가됩니다. 선배가 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쉽게 용납되지 않습니다. 당장 이해가 안 되거나 문제적이어도 일단은 그 방식을 따르라고 합니다. 해보지 않고는 말할 자격도 없다는 듯. 노하우가 전달되는 방식도 구체적인 설명이나 설득보다는 암묵적 동의와 강압적 반복학습인 경우가 많습니다. 테스트에서 평가되는 건 실제 매장에서의 업무 수행능력이 아니라 개개인의 노력여부와 회사에 대한 충성도입니다. 평가의 주체와 대상 역시 선배와 후배로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정답 같은 선배의 기준으로 만든 공식화된 매뉴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특징을 잘 관찰하고 눈치가 빨라야 하며 빠른 속도로 비슷하게 따라할 줄 알아야합니다. 평가 방식과 목적 그리고 기준들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에 해왔던 방식대로 눈치껏 하려고 하지만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혼나고 저렇게 해도 혼날 것 같은 분위기에서 무엇이든 잘 하긴 어렵습니다. 몸이 상해가면서까지 연습하지만 정작 테스트 당일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연습한 만큼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테스트가 끝나면 다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반복수행이 기다립니다. 안되면 될 때까지 밀어붙이고 그 과정을 견디고 버티면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다음에 어떤 단계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음’을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것은 하늘같은 선배뿐이며 그런 선배를 옆에서 착실히 보조하며 고분고분한 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때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소통의 부족은 부서간의 관계에서도 반복됩니다. 로스팅과 추출은 일의 성격과 환경이 많이 다르지만 그만큼 밀접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끔 로스팅 실에서 커피콩에 대한 피드백을 구하기도 하지만 비정기적일 뿐더러 일회적이고 일방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맛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피드백 하면 어떤 생두를 바꿔서 그렇다는 피드백을 받지만 그 이상의 연결은 없습니다. 왜 그 생두를 바꿨고, 바뀐 생두를 어떻게 로스팅 했으며, 결과적으로 맛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추출에도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듣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생두가 섞이는 에스프레소 블렌드가 새롭게 출시 됐을 때에도 그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부족했습니다. 기존에 판매하던 에스프레소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지만 이미 레시피는 정해져 있었고 그때부터 음료로서의 에스프레소는 새로운 블렌드로만 제공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음료의 맛이 바뀐 이유를 묻는 손님에게 회사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특정 핸드드립용 원두의 로스팅 스타일이 예고 없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맛에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그 맛 때문에 바꾸었다는 피드백만 전달 받을 뿐입니다. ‘맛’ 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이기도 해서 ‘좋은 맛’ 때문이라고 하면 쉽게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매번 그 ‘좋은 맛’위 범위와 성격을 규정하는 사람과 부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커피 노동자들과 소통에 실패한 커피는 소통하는 커피가 될 수 없다”

어느 날 한 손님이 새로 생길 매장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5월 중으로 오픈 예정인 매장의 정보가 뉴스레터에 실린 것을 보고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궁금해 하신 겁니다. 하지만 대답 할 수 없었습니다. 직원들조차 그 신규 매장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매장으로 배송된 뉴스레터에는 오픈 예정인 신규 매장 외에 동일지역의 또 다른 신규매장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었습니다. 물론 사전에 공지된 적이 없었기에 다들 기존의 신규매장은 아직 공사 중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 매장은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그런데 그 매장과 멀지 않은 곳에 다른 컨셉의 작은 매장이 이미 공사가 끝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배송된 뉴스레터를 미리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배포한 직원들의 성급함이 아쉽다고 하기엔 뭔가 아쉽습니다. 만약 그랬다고 하더라도 직원들은 손님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생기는 매장 정보를 고객용으로 제작된 뉴스레터를 통해서 알게 된 경험은 정보 공유 차원에서 고객과 직원의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이때의 직원은 동료로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매장이 생기면 매장 근무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발령뿐입니다. 다른 매장이 언제 어떻게 생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언제 어떻게 또 다른 매장으로 가게 될지 알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이런 불안은 쉼 없이 반복되는 노동의 연속으로 무감각해질 뿐, 소통의 상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상태에서는 해소는 물론 그 표현조차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회사는 커피산지와의 소통엔 적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두 번의 산지 세미나는 커피 생산자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합니다. 피드백을 통해 가공방식을 개선하거나 지속적인 교류로 커피의 품질 향상뿐만 아니라 농부들의 지속가능한 삶의 질까지 고민하는 모습은 스페셜티 커피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 했습니다. 음료로서의 커피에서 맛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그 맛에서 커피 생두의 중요성 또한 점점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니 맛있는 커피를 위해 생두 수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커피 생두만 가지고는 맛있는 음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회사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일단 로스팅도 해야하고 무엇보다 손님에게 전달되기 직전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출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추출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매장에서 근무하는 바리스타들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스타들의 삶의 질이 추출되는 커피의 질 또한 결정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저절로 삶의 질이 나아지진 않습니다. 커피가 소통의 중심이라면 바리스타들과의 소통 역시 존중받아야 하며 바리스타들과 소통하려면 일단 그들을 합의 가능한 주체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직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못한 복지는 직원들을 위한 복지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노동이 지속 가능하려면 노동의 강도와 속도가 지속 가능한 수준이어야 합니다. 현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그리며 자신의 미래를 함께 그리는 사람들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목표를 정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분리돼 있다면 공감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과정으로서의 삶이 지속 가능할 때 삶의 질도 고민할 수 있습니다.

3년 전 이직을 결심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누군가 이직의 이유를 물으면 커피를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매장에서 바리스타로 오래 일하는 게 목표라고도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전히 커피에서 재미를 느끼며 추출을 전문으로 하지만 로스팅과 생두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로 커피를 다루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레시피대로만 하면 되거나 속도와 효율만을 중시하는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그런 제게 또 다른 기능성이었습니다. 커피를 매개로 생산지의 환경을 상상하고 생산자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 제게 커피는 그 자체로 소통의 수단입니다. 스페셜티 커피가 제게 특별했던 건 소통으로서의 커피라는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일하면서 느끼는 커피는 수단이 아닌 목적에 가깝습니다. 절대적인 지위를 물려받은 커피는 특별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질문을 가로막습니다. 맛만 좋으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듯 생두의 특별함만이 커피 품질을 보장 한다고 생각하며 소통으로서의 커피도 생산자와의 연결만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품질 개념엔 커피 체인에 관계된 사람들의 삶의 질 문제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노동자로서의 지속가능한 삶이 보장되지 못하면 커피의 지속가능함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커피 노동자들과의 소통에 실패한 커피는 소통하는 커피가 될 수 없습니다.

‘사유하다’는 대상을 두루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동안은 일만 하느라 회사를 상대로 두루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퇴직을 결심하고 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회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회사는 아직 성장하는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지금의 행보가 그 목표에서 어떤 중요성을 가지는 지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3년 전과 비교해 분명 나아진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이 수정되는 정도에 그치면 곤란합니다. 잘못된 관행이 아직 성장 중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도 없습니다. 회사가 정말 성장하길 원한다면 직원들의 복지와 성장이 담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근로자와 사용자는 엄연한 계약관계입니다. 언제까지고 변화하길 기대하며 기다려주는 종교적인 신뢰관계가 아닙니다.

일하는 동안 늘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적인 소통방식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난 3년간 적극적인 문제제기 없이 위계와 서열에 익숙하게 적응하며 고질적인 관계를 침묵으로 강화했음을 인정합니다. 퇴직서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소통에 실패했다는 반증일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불만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지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공식적인 대화나 면담에서도 제 이야기가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회사는 일상적인 소통을 이야기하는 제게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닌지 되묻습니다. 소통은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기본이며 커피로 소통하려는 사람들에겐 특별히 중요한 자질일 것입니다.

직접 로스팅을 하지 않아도 생두를 이해하고 로스팅의 과정과 변수를 해석할 수 있어야만 커피를 맛있게 추출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커피가 복합적이며 소통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커피가 소통의 매개가 아니라 팔리면 그만인 단순한 상품에 그쳐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커피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맛있는 커피뿐만 아니라 커피로 소통하려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한때 생산자와의 소통에 성공적인 커피만을 특별하다고 느꼈습니다. 직거래로 수입하고 직접 로스팅해서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사이클이 그 자체로 특별한 커피의 조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커피의 특별함은 다른 방식의 소통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생산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런 커피를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직원들과의 관계도 오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중 하나일 것입니다. 퇴직서로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역설처럼 느껴지지만 퇴직하는 나름의 이유를 분명하게 하는 것은 노동자로서의 몫이고 그런 사유를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회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직장에서 누군가 왜 다시 이직을 했는지 묻는다면 이젠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통하는 매장에서 일하고 싶다” 이 말은 작년 어느 동료가 단 하루를 일하고 그만두면서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작성: 타랑 (후원인, 커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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