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기본소득팀] “빈곤에 대한 사회적 서사를 다시 쓰는 싸움”
- <청소년기본소득팀> 초청간담회 스케치

지난 2년간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의 지원을 받아 활동해온 “(위기)청소년자립지원사업 자몽自夢과 동행하는 몽실 프로젝트팀(줄여서 ‘몽실’로 불렸음)”의 연구 사업이 올해 독자적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이번 상반기에 “청소년 기본소득 타당성 연구-청소년 자립지원현장에서 현금직접지원이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연구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함께 관련 책과 논문 등을 읽어나가며 공부를 한 뒤에 본격적인 청소년(및 현장 교사/실무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연구 결과를 내보려 합니다. 팀에서 같이 공부한 내용 중에 들 사람들과 나누고픈 책 한권씩을 꼽아 이 지면에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지켜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 상반기 청소년 기본소득팀 공부 과정에서 명료해진 것들이 있습니다.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세계관이 파고 들수록 매력적이란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더 현실의 장벽을 새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현금‘직접’지원이라고 했을 때, 기존 사회복지체계 논리대로 부양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개인에게 주자는 논리가 지금 이 사회 정서상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소득을 심사하지 않고 모두에게, 그것도 바우처나 서비스가 아닌 현금으로? 아동·청소년을 부양하는 의무를 지운 부모들의 줄어든 임금소득 분을 채워주는 차원의 ‘양육수당’ 혹은 ‘여성정책’의 일환으로서가 아니라 아동·청소년 개인을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차원에서 ‘아동수당’이 논의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눠주리라 기대하며 초청간담회를 6월 초에 진행했습니다. 사회복지 전공자이시면서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계신 이건민 님 그리고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인 스밀라 님을 초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고민들을 나눴습니다. 전교조서울지부 강당을 빌려 진행한 이 자리에는 들 활동회원들과 ‘자몽’ 사업 참여기관 실무자 그리고 함께걷는아이들 직원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기본소득, 필요와 응분의 원리가 아닌 시민권의 원리

첫번째 발제자였던 이건민 님으로부터 현 사회복지 체계와의 관련 속에 기본소득 논의의 맥락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아동, 청소년 대상 지원 정책에 대한 조망 속에 기본소득의 논의 지형을 좀 더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는데요.

지금도 ‘현금’지원 정책은 가령 ‘가정양육수당’이나 ‘장애아동수당’의 경우처럼 존재하고 있지만, ‘모두에게’라는 조건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전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을 때, 후자는 ‘장애’라는 조건을 충족할 때 지급되는 현금인 것이죠. 매월 일정액을 저축하면 정부 지원금이 더해져 만18세가 된 시점에 적금 만기상환처럼 지급받는 ‘아동발달지원계좌’ 정책 또한 현금 지원 형태의 제도이긴 하지만 이는 ‘빈곤’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고요.

이건민 님 발제 속에서 OECD 국가들의 평균 GDP 대비 한국의 ‘아동가족’ 관련 급여 공적 지출 비율이 최하위 수준이고, 서비스 지원 정책 대비 현금 지원 정책 비중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는데요. 현금 지원보다 서비스 지원 정책 비중이 높은 것은, 국가 입장에서 용처를 예측하기 힘든 현금 지원보다 교육 등 공적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 아동·청소년들에겐 더 적절한 지원이라는 통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나눴습니다. 빈곤할수록 합리적 소비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와 나이가 어리기에 미숙하다는 통념, 이 둘은 빼다 박은 듯 비슷하죠. 이 사회에서 어린이·청소년이 처한 조건들, 나이와 빈곤이라는 이중의 차별 속에 보호의 대상으로밖에 호출되지 못하는 위치성의 한 연원을 여실히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이건민 님의 발제 속에 필요와 응분의 원리가 아닌 시민권의 원리로서 기본소득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게 언급됐는데요. 임금노동을 통해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사람들, 즉 노동능력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국가가 정한 빈곤선 아래 있다는 선별을 통과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부조가 ‘필요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라면, 실업급여의 경우처럼 자신이 고용되어 있던 시기에 ‘기여’한 금액을 나중에 돌려받는 사회보험은 ‘응분의 원리’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기본소득은 ‘필요’나 ‘기여’를 따지지 않고 누구나에게 지급된다는 점에서 ‘시민권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고요.

토지 등 자연 자원, 전파와 같은 공공재나 지식처럼 본래 모두의 것이었거나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부터 나온 이익을 평등하게 공유하는 것,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갖는 ‘몫’에 대한 권리로서 기본소득이 존재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청소년 기본소득팀’ 연구가 ‘모두에게’라는 범주에서 잊히기 쉬운 어린이, 청소년의 존재를 드러내는 작업으로서 의미가 있겠다는 것이 이건민 님 발제와 토론 속에서 다시금 확인되었습니다.

초청간담회 스밀라님 발제 시간 모습

“선별의 경험은 공공성에 대한 감각을 약화시킨다”

초청간담회 두 번째 발제자였던 스밀라 님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 과정에서 맞닥뜨린 고민과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나눠주셨습니다. 서울시 청년수당과 성남시 청년배당 그리고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실험의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노동 가능한 인구인 청년들에게 대체 왜 현금을 줘야하냐는 흔한 통념에 맞서 운동의 언어를 제시할 때 부딪히는 고민을 들었습니다. 가령 누군가 자신은 50대고 차상위계층이라 힘든데 왜 청년에게 주냐고 물어왔을 때, 청년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설명함에 있어 사회적으로 설득하기 쉬운 이미지가 당장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게 덫이 된다는 고민이었습니다. 빚더미에 나앉은 ‘불쌍한’ 청년의 모습이거나 혹은 반대로 약간의 지원만 있으면 일도 열심히 하고 결혼해서 애도 낳을 수 있는 ‘기특한’ 청년의 모습이 전형처럼 등장하는데, 이는 ‘~때문에 준다’를 묻지 않는 기본소득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들 선상에서 스밀라 님이 ‘선한 빈민의 서사’를 언급해주셨는데요. 크라우드 펀딩 후 추첨 방식으로 진행한 <한겨레21>의 기본소득 실험 1호 참여자가 되신 분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가 첫번째인데 흥청망청 쓰면 다음 프로젝트에 안 좋은 영향 줄테니 잘 쓰라”고. 복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 기존 복지를 둘러싼 서사의 한 축이라면, 이와 달리 사회 성원으로 누구나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소득의 문제의식인데, 위의 한 어머니 말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는 ‘가난한 자가 도움을 받아 흥청망청 낭비’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검열하게끔 만들고 있다는 거죠. 실은 흥청망청 쓸 수 있을 만큼 국가가 준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빈곤을 말하는 기존의 전형적 서사에 기대지 않고 다양한 삶의 방식과 존재들을 드러내면서 기본소득을 옹호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스밀라 님의 이야기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서의 복지를 말하려는 인권의 고민과 연결되어 들렸습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함께 수행했던 성남시 청년배당 수령자 설문조사 및 인터뷰의 뒷이야기들도 흥미로웠습니다. 성남시 거주 만24세 청년 일만 명 가량에게 분기별 12만 5천원 상당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정책이 작년에 시행됐는데요. 배당을 받음으로써 사회구성원이라는 감각을 체감했는지 설문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는데, 이 사회가 나를 돌봐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답이 90%를 넘었다는 겁니다. 더 고무적이었던 결과는, 자신이 해당 연령을 지나서 정책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 청년배당 정책이 유지되면 좋겠다는 응답 또한 비슷하게 높게 나온 부분이었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기존 선별적 방식의 복지에서 빈곤한 사람과 더 빈곤한 사람 사이에 선을 긋기에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막는다는 논의가 있는데, 위 성남시 청년배당 결과 분석에서 보이듯 (물론 모든 연령이 아닌 특정 연령대 해당자에게 지급되긴 했지만) 다른 조건에 대한 심사가 없이 지급됐을 때 ‘연대’의 실마리도 더 생긴다는 것이죠.

한편, 서울시 청년수당의 경우 현금 방식이긴 했지만 자신이 왜 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심사 과정이 있었는데, 서울시 청년수당 수령자의 경우 기본소득에 반대한다는 답을 하더랍니다. 이를 두고 스밀라 님은 자신의 자격을 심사받는 선별의 경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공성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 같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여담이라면서 해주신, 보통 동사무소 사회복지담당 직원들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지원이 어렵습니다”는 난처한 응대를 매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데 이번 성남시 청년배당의 경우에 그냥 주는 거니까 직원들 표정이 그렇게 밝아보이더라는 일화도 인상적으로 들렸습니다.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복지 정책의 선상에서 논의되는 현실적 맥락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사회가 무엇이고 인간으로 누려야할 것이 무언지” 묻는 세계관의 싸움이라는 스밀라 님 이야기가 초청간담회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기본소득 파일럿을 하면서 찬성 측이든 반대 측이든 ‘효과’를 보려하는데 그 ‘효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필요도 없다”는 말에 뜨끔하면서도 묘한 위안이 되기도 했네요. 기본소득이 당연한 권리라면 그걸 받아서 어떻게 삶이 달라졌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어지는 거겠지만, 그 당연함의 근거들을 <청소년 기본소득팀>이 남은 기간 진행할 청소년 인터뷰들 통해 잘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 날맹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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