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구술기록 속 목소리를 교육의 현장으로
예비 법조인 인권법 캠프에서 진행한 <목소리로 보는 인권 박물관>

종종 누군가가 인권활동이란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내게 물어올 때가 있다. 물어온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대답하긴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잇고, 더 크게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취지로 설명하곤 한다. (물론 인간은 입으로만 말하진 않으며, 귀로만 듣지도 않는다. 비유적인 표현이다.) 인권 교육도 결국은 서로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를, 내 감정과 경험의 곡절을 말할 수 있는 입을 단련하는 과정이다. 인권교육가는 교육 안에 삶의 서사가, 사람의 목소리가 충실히 흐를 수 있도록 교육의 흐름을 조직한다. 인권이 무언지 유려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술보다 ‘열린 귀’로 사람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힘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사회적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곱씹고, 기록하는 활동을 넓혀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구술기록 작업과 인권교육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섣불리 평가하거나, 유도하지 않고 충실한 공감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 구술 참여자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자기 경험을 스스로 역사화 할 수 있도록 질문의 징검다리를 놓는 것. 구술 참여자의 말을 그저 ‘받아쓰기’하는 것이 기록 작업은 아니기에 끊임없이 해석의 틀을 가다듬고, ‘듣는 자’의 책임을 무겁게 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공간적 조건은 다르지만,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호과정의 단면에 집중하면 유사한 소통의 원리가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동료들의 손길을 거친 구술 기록들이 인권교육을 통해 다시금 생생한 목소리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소소한 결실로 지금 소개할 프로그램을 시도하게 됐다.

목소리가 내게로 오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는 매해 예비 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인권법 캠프를 운영해왔다. 올해로 어느덧 9회째를 맞이했는데, ‘들’은 2012년부터 ‘차별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캠프의 일부 꼭지를 진행해왔다. 해마다 프로그램을 개편해 진행했지만, 교육의 목표와 흐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캠프의 다른 꼭지들이 주로 주제별 인권/법에 대한 강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우리가 진행하는 꼭지는 더욱 참여자들의 개별 혹은 모둠 ‘활동’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는 교육 목표와도 맞닿아있는데, 예비 법조인의 정체성으로 교육을 신청하시는 분들은 인권옹호자 혹은 권리의 대변자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을 테니 ‘당사자’로서 인권 문제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활동을 통한 몰입을 이끌었다.

 

9회 공감 인권법 캠프 사진

먼저, 어떤 존재의 목소리가 담긴 구술 기록의 일부분을 참여자들과 나눴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답’을 맞추는 것이 목표가 아님을 강조하며, 다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일지깊이 상상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발췌한 구술 기록을 공개했고, 각각의 기록마다 참여자 한 분을 초대해 차분히 낭독하며 목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소리로 ‘보는’ 인권 박물관

목소리의 주인공을 상상해 본 참여자들에게 이어서 모둠 활동 과제를 안내해드렸다. 모둠마다 하나의 목소리를 택해 목소리의 주인공이 살면서 경험했음직한 인권 침해가 무엇일지 논의한 후, 모둠원들이 함께 정지 장면으로 구성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지장면은 인권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인권 박물관에 전시될 스틸 사진이라는 가상 설정 또한 덧붙였다.

모둠 활동을 끝낸 후, 각 모둠이 구성한 정지 장면(인권박물관 전시 스틸 사진)을 전체 참여자가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지 장면이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지 전체 참여자들이 추측해보고, 장면을 추측하기 어려우면 열쇠가 될 만한 인물을 동영상으로 움직이거나, 정지 장면 속 인물의 속마음을 인터뷰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목소리 1]의 경우, 참여자들은 군대나 학교 등의 공간을 가장 먼저 떠올렸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합과 체벌 등을 인권의 문제로 꼽았다. 일부는 회사에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 추측하기도 했다. [목소리 1]을 선택했던 두 모둠은 모두 군대의 얼차려 장면을 정지 장면으로 구성했는데, [목소리 1]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숫자가 된 사람들》의 일부분임을 공개하자 모두들 놀랐다. 형제복지원이 왜 군대 시스템을 시설에 도입했는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군대와 유사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공간이 어디일지 이야기 나눴다. 한국 사회 곳곳이 기실 형제 복지원의 시스템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형태로 돌아가고 있음을 참여자 스스로 짚기도 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을 향한 차별과 폭력이 서로 닮을 수밖에 없는 이유, 연결성을 갖는 맥락 등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목소리 2]는 세월호 유가족 육성 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일부였지만, 참여자들은 이주노동자, 서비스/감정 노동자의 삶을 연상했다. [목소리 3]은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여성의 구술이었지만, 참여자들은 동성애 커플을 가장 많이 떠올렸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타인의 목소리에서 나의 삶, 혹은 또 다른 타인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교육을 준비할 때 이 목표를 고려하여 구술 기록의 어떤 부분을 발췌해 참여자들과 나눌지 결정했다.

완전히 똑같지도, 완전히 다르지도

‘차별에 반대하긴 쉽지만, 무엇이 차별인지 알기는 어렵다’는 언급을 반(反)차별을 주제로 교육할 때 많이 하게 된다. 한 사람이 경험한 차별은 그 자체로 고유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존재들이 경험하는 차별의 맥락과 연결된다. 전자의 특성 때문에 대리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당사자성’이 중요하고, 후자의 특성 때문에 공감과 연대가 가능해진다. 중요한 건 당사자/비당사자의 이분법적 경직성을 넘어 우리가 어떤 ‘연결’을 추구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목소리 자체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그 목소리가 연상시키는 또 다른 이야기를 교육 현장에 초대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구술 기록과 인권교육의 접목은 더 넓고, 풍부해질 수 있지 않을까. 위에서 소개한 교육은 주어진 시간의 한계로 1시간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된 감이 있었다. ‘들’에게 배정된 시간은 전체 참여자(50여명)와 함께 하는 오전 꼭지 1시간, 보다 집중적인 논의를 위해 2개 분반으로 진행하는 오후 꼭지 2시간 30분이었다. 오후 꼭지 때 차별의 구성과 역동에 대한 심화 토론 및 차별에 맞서는 연습을 배치했고, 오전 꼭지 때 위 교육을 진행하며 반차별 감수성을 맛봤다. 시간을 좀 더 여유 있게, 보다 적은 인원으로, 연극적 무대 효과까지 살려서 진행한다면 교육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 한낱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출 처: 인권오름 제 474 호 [기사입력] 2016년 02월 17일 15: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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