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반짝이는 표정과 깊은 마음으로 참여해준 그대에게
'W-ing' 여성들과 함께한 인권교육을 돌아보며

[필자 주] 지난 3월부터 ‘사회복지법인 W-ing’이 운영하는 여성자활매장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사무국 활동가들과 매월 2회, 매회 3시간씩 만나 인권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상반기 9번의 교육을 돌아보며 이 글을 쓴다.

길동님.

지난 만남에서 이번 주가 모처럼의 휴가라며 들떠있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그대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으신가요?

랩 공연 사진

상반기 마지막 수업을 축하하는 한 참여자의 랩 공연

지난 상반기 ‘W-ing’과 함께한 인권교육을 돌아보며 가장 먼저 그대가 떠올랐어요. 아마 가장 반짝이는 표정으로, 가장 깊은 마음으로 이 수업에 함께해준 이가 그대였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 교육을 준비한 저와 호연에게도 ‘W-ing’과 함께한 인권교육은 각별한 시간이었답니다. 오랜 세월 인권교육을 해왔지만 참여자들과 1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함께 겪으며 인권수업을 할 기회가 흔치는 않았어요. 특히나 10대에서 50대까지,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인생의 다양한 굴곡들을 지나쳐왔을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함께하는 자리여서 더 마음을 기울였답니다.

말문이 조금씩 터져간다고 해야 할까. 첫 만남에서 약간의 긴장과 경계심으로 마주했던 우리는 이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조금은 편안하게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아요. 수업 내내 좀 까칠해 보인다, 겉돈다 싶었던 참여자 한 분이 상반기 마지막 수업을 축하하는 랩 공연에 선뜻 나서 준 걸 봐도 우리 수업이 ‘W-ing’ 식구들의 마음을 잃어버린 수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제 착각만은 아니겠죠?^^ 물론 여전히 말을 아끼거나 여럿이 둘러앉아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을 낯설어하는 분들도 남아있어서 마음에 걸리지만 말이에요.

 

자서전과 인생초대석 시간이 만든 ‘위로의 공동체’

지난 상반기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 주제들 기억해요? [만남], [목소리], [인생], [여성], [존엄], [차별], [노동], [자립]과 같은 주제들이었죠. 마지막 수업에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인권교육이 각자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았는지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졌었어. 짐작한 대로 ‘W-ing’ 식구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아준 순간은 ‘자서전 만들기’와 ‘인생초대석’ 시간이었어요. ‘W-ing’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일하지만, 여러 매장에 흩어져 있기도 하고 일상을 보내다 보면 삶의 단편은 알아도 서로의 삶으로 성큼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2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구술기록들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함께 짚어봤고, 3번째 만남에선 각자 미니 자서전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었죠.

자서전을 들고 있는 참여자

각자 만든 미니 자서전. 인생의 주요 장면들을 담고 동료들의 응원의 말도 담겼다

8쪽짜리 미니자서전이 나비 모양의 포스트잇에 빼곡 적힌 격려와 응원의 말들로 채워지면서 금세 백과사전마냥 두꺼운 책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가슴이 저릿하면서도 포근해지기도 하는 시간이었어요. “내가 어디 가서 이런 교육을 받나, 이런 위로를 받나 싶었어요.” “누군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위로해주는 이야기가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는 참여자들의 말처럼 ‘위로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순간의 경험은 제게도 무척이나 가슴 벅찬 시간이었답니다.

그 다음 시간에 우리는 몇 분을 추천받아 더 깊은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었죠. 대여섯 분이 추천 명단에 올랐지만 중간에 사양하는 뜻을 간곡히 전해온 분들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 인생 이야기를 한다는 건 연습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깐요. 결국 인생초대석에 응해준 참여자는 단 두 명이었죠.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던 경험과 ‘등골 빼먹은 남자’와의 연애 경험을 들려준 지지엄마의 이야기에 이어, 길동님은 엄마의 시점(視點)에서 엄마와 길동님 사이의 스무해 역사를 소설 형식으로 담아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엄마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열일곱 살 때 결국 집을 나오면서 서먹하고 불편한 관계로 남아있을 엄마에게 부러 연락해 기억을 복기하면서 써내려간 길동님의 글에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며 힘겹게 삶을 꾸려갔을 엄마의 고통을, ‘여자’이기도 했던 엄마라는 존재를, 왕따와 폭력의 경험으로 흔들리는 딸의 고통을 이해하려 했지만 실패했던 엄마의 시간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절절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길동님이 글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강의실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였죠. 사람들이 그토록 귀를 기울였던 건 아마 길동님의 그 마음과 용기가 전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픈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전하는 길동님은 무척이나 반짝였던 시간으로 제게도 다른 참여자들에게도 기억될 거라 생각됩니다.

“나라에서 돈 받는” 사람들?

다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사로잡은 이야기는 10대 때 집을 나와 지금은 청소년자립팸에서 살고 있는 서원의 자립 이야기였어요. 그날 우리는 서원님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이땅의 무수한 ‘서원들’이 놓였음직한 가족 상황과 학교 경험, 탈가정 이후 거리와 일터에서 겪었을 상황들을 떠올려보며 상황극도 만들고 ‘외롭고 잔인한’ 자립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도 살펴보았었죠. 그날 길동님이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라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오늘 수업은 특히 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어요. 내가 가출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나 닥쳤던 상황들과 너무 비슷해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길동님뿐 아니라 탈가정과 성매매 경험을 가진 참여자들이 집과 학교와 거리와 경찰에서 당했던 부당한 경험들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으며 ‘인권에 기반한 자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제게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W-ing’ 식구들 여럿이 서원이라는 실제 인물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죠. 하반기에는 서원님을 직접 만날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그날 누군가 그랬었죠. ‘W-ing’ 매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듣기 힘든 말 중 하나가 “나라에서 돈 받는데 열심히 일해야지”라는 말이라고요. 그대들의 삶에서 ‘자립’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혹한지 알기에 제게는 이 말이 비수처럼 꽂혀 잊히질 않습니다. 그대들이 이토록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그대들의 노동은 ‘나라에서 도움받는 행위’로 폄하될까, 존엄한 노동이란 단지 노동조건이 좋다 나쁘다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의 총합이구나, 그나저나 나라에서 도움 좀 받으면 안 되나, 많은 생각들이 오가더라고요. 일하고 있으되 일하지 않는 자들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해, ‘나 홀로 자립’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연립(聯立)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시간이 ‘나라에서 도움받는 인생’이라는 딱지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 저는 여전히 궁금합니다.

아홉 번의 만남이 남긴 자국들

길동님에겐 지난 아홉 번의 만남은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지난 수업에서 ‘인권교육을 통해 일어난 나의 변화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혹여 참여자들이 당황스럽게 여기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적어준 답들을 살펴보면서 ‘W-ing’ 식구들에겐 적지 않은 일렁임이 일어난 시간이던 것 같아 감사했었어요. 용기, 당당함, 사려깊음, 인간다움, 꿈, 사회에 대한 관심이라는 단어들이 그대들을 만나 구체적 얼굴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 “좀더 솔직하게 이야기/의견을 꺼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 “가족관계도 그렇고 일은 일대로 힘들고 그러니까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됐는데, 인권교육 받으면서 생각하는 것도 좀더 어른스러워지고 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 “‘전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너 이래’ 이런 얘기도 듣고, 내가 여기서 느끼는 것도 있고. 더 당당해진 것 같다.”

• “내 감정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한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더 생각하게 됐다. 좀 욱하는 성격이 있는데, 서서 이야기할 것도 앉아서 이야기하게 되고. 서서 이야기하면 상대방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 “교육 때 배운 걸 일상에서 계속 생각해보려고 하게 됐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려는 마음 때문에 말을 툭 내뱉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신경쓰지 못한 점은 없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 “내가 맡은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그러는 게 있고 지각한 친구가 있으면 왜 지각했냐고 다그치고 그랬는데, 지각한 이유를 좀더 살피고 그에 맞는 이야기를 하거나 그런 부분이 달라진 것 같다.”

• “사고로 남편이 장애인이 되었는데 ‘조금만 노력하면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못해?’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보기엔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아서… ‘안 되는 걸 되게 하라고!’ 이런 내 말들이 상처가 되었겠구나 싶더라.”

• “진짜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 없이 멍하니 지냈는데,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하게 되더라.”

• “인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 살아온 삶이었는데 이것까지도 기본적 권리였구나, 인간의 기본이 이거였구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

• “나의 꿈을 키울 수 있는 힘이 커진 것 같다.”

• “노동자의 인권과 자립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근로계약서를 볼 수 있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 “일을 하느라 이런 교육 받을 기회 없다. 학생도 아니고. 근데 잊고 있었던 것들, 사회적 문제, 위안부 문제 등등도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계속 머리에 맴돌더라.” 

그날 나누었던 동료들의 이 이야기들이 길동님에게는 또 어떤 기억으로 간직되었을지 궁금합니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협력놀이 사진

힘을 모아 동시에 일어서는 협력놀이 장면

인권교육을 통해 ‘W-ing’이란 공간과 동료 관계에선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도 궁금했는데, 그것까진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가보단 생각이 들었어요. “동료들의 새로운 모습, 윙 사람들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 의견을 묻기도 하고, 활동가들과 스탭, 직원들간의 관계가 좀더 수평적인 관계로 변화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지는 않으니까. 단 9번의 만남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라는 말도 제게는 묵직하게 다가왔어요. 그대들은 ‘W-ing’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지만, 또 어찌 보면 다양한 관계의 이름으로 위계를 경험하고 있기도 하겠지요. ‘W-ing’ 법인은 매장에서 일하는 그대들의 ‘고용주’라는 위치를 갖고 있고, 사무국 활동가와 매장에서 근무하는 여성들과는 엄연한 권력차가 존재하기도 하고, 같이 근무하는 노동자끼로도 서로 위계로 작동할 수 있는 차이를 지니고 있기도 하니까요.

“인권은 주장할 용기다”라는 한 참여자의 말처럼, 하반기에는 삶의 현장에서 인권을 확보하고 관계를 인권적으로 재구성하는 시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보려 합니다. ‘W-ing’이라는 공간도 인권의 가치와 좀더 뜨겁게, 좀더 구체적으로, 좀더 울퉁불퉁하게 만나게 되겠지요? 길동님도 함께여서 제게는 하반기가 더 기대되는데 길동님은 어떠신가요?

우리 다시 만날 땐 이 무더위가 조금 물러나있겠죠? 모처럼의 여름휴가, 마음껏 쉬고 기력 회복하고 돌아오세요.

 

2017년 무더위의 한복판을 통과하며

경내(개굴) 드림

 

  • 글쓴이: 배경내(상임활동가)

차곡차곡 쌓아가는 소중한 문자후원

#2540-5353

문자메시지에 #2540-5353을 입력 후,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전송하면 인권교육센터 들로 3천원이 일시 후원됩니다. 지금 들을 충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