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잘 싸우는’ 사회복지사
-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인권에 기반한 사회복지

#1. 코코넛과 상어 중 사람을 더 많이 죽이는 것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주인공 다니엘이 “코코넛과 상어 중에 뭐가 사람을 더 많이 죽일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질문을 받은 이웃집 아들 딜런의 답은 “코코넛”이었다. 나무에 높이 매달려 있다 툭 떨어져 사람이 맞는 장면을 떠올린 답이었을까.

청소년자립지원사업 ‘자몽’의 네트워크 모임에서 ‘장애 청소년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주제로 지난 4월 강연을 해주신 노들장애인야학의 홍은전 님은 ‘코코넛’ 대화 장면을 두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장애인에게 지원을 해줄 거 같은 제도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코코넛’이 아닐까 싶다고, 사람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할 제도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고. 탈시설 뒤 장애등급이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얼마 안 있어 화재로 집에서 돌아가신 고 송국현 님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불이 나서 죽은 것이 아니라, 도망치지 못해서 죽은 것이다.”

#2. “약을 주는 것은 사회복지사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 만난 활동가 루디Rudi와 식사 자리에서 인권교육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선 인권운동의 역사 속에 인권교육이 등장한 맥락이 있다고 했더니 독일에서 인권교육은 학교 교육에서 이미 다뤄지고 있거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정치인들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제도화된 느낌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루디의 어머니가 올 초에 95세 나이로 돌아가신 이야기를 들으며 여기 인권교육 때 만나게 되는 장면들이 떠올라 이것저것 더 물어보았다. 루디 어머니는 집에서 더 이상 혼자 생활하기 어렵게 된 작년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것으로 가족들과 함께 결정했다. 그녀는 입원을 하면서 본인의 이후 치료 방향과 대리인을 지정한 문서를 남겼다. 의식을 잃게 됐을 때 연명치료를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고, 대리인이 된 루디는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렸다고 했다.

한국의 인권교육에선 가령 약을 먹지 않겠다는 이용인과 건강을 위해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종사자의 이해利害가 대립하는 장면을 두고 토론할 때가 있다고 루디에게 말했다. 독일의 시설에서도 사회복지사와 이용인 사이에 이런 종류의 갈등이 있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루디의 대답은 단호했다. “약을 주는 것은 사회복지사의 일이 아니다.”

루디의 이 말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첫째, 당사자의 의향을 최대한 파악하고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둘째, 사회복지사social worker의 일은 사회적인 것social, 즉 인간의 존엄을 방해하는 제도와 구조와 싸우는 것에 관한 것이지 이용인 개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세계사회복지대회 개막식 끌려나간 장애인 활동가, 폐회식 특별한 손님 초대. 박경석 발언 장면

작년 6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세계사회복지대회 개회식 중 정진엽 복지부 장관 축사 시간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와 복지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벌였다. 5분 만에 경호원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됐다. 행사 참석자들인 세계 사회복지사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결국 대회 폐막식에 정식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사진 출처: 비마이너)

#3. 노인복지관 이용인과 종사자가 연대할 수 있으려면

한 노인복지관 종사자들과 진행한 교육 때 “니들이 우리 때매 월급 받는거야”란 문장이 나왔다. 종사자들을 힘 빠지게 하는 혹은 힘들게 하는 이용인의 말로 교육 참여자들이 적어준 것이었다. 직원을 부를 때 “아가씨”라는 호칭을 쓰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나이 많은 남성이 어린 여성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은 누구를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지 뒷받침하는 사회적 위계가 공기처럼 암묵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사회, 문화, 경제적 권리를 보호,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월급을 받는 건 맞지만, 일하는 자의 존엄을 무시할 권리가 복지관 이용인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자신의 나이, 젠더 권력으로 상대를 함부로 하는 것은 이 사회의 차별을 재생산하는 폭력에 다름 아닌 행위이다.

그럼에도, 종사자들이 가령 ‘학대예방서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종사자들이 ‘주는 자’로서 더 힘을 갖게 되는 위치성에 대한 고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 관계에서 이용인으로부터 기분 나쁜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원과 서비스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위치에서 기인하는 우월한 힘은 부정될 수 없다.

여느 집단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기준으로 구분된 ‘노인’ 안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예컨대 ‘실버타운’이라고 했을 때와 ‘독거노인’이라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르게 구성된다. 이 사회의 빈곤에 대한 통념이 ‘노인’과 붙었을 때, ‘노인복지’의 대상으로 떠올려지는 이들은 가난해서 지원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세금을 축내는 존재로 인식된다.

앞서 루디가 사회복지사의 일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면, 노인 이용인을 만나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노인을 배제하는 사회적 조건에 맞서 이용인과 연대하며 함께 싸워나가는 것이다. 이 연대의 출발점에는 나이를 무기 삼지만 동시에 그 나이 때문에 차별받기도 하는 존재의 조건에 대한 이해가 자리한다. 그리고 나면 복지관에서 만나는 노인 이용인이 여전히 ‘꼰대’로 보이는 와중에 어떨 땐 그 존재와 동정 아닌 연민으로 연결되는 순간도 생기지 않을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빈곤사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공동행동 등’)는 2월 15일 오후 12시 30분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에 위치한 사회보장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정부의 사회보장제도 후퇴를 규탄하며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선언하는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선언 행동

올 2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빈곤사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사회보장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정부의 사회보장제도 후퇴를 규탄하며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선언하는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선언 행동을 하는 모습. (사진출처: 비마이너)

#4. “나는 클라이언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의 막바지, 다니엘이 질병 수당 항고 신청을 하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데 질병 수당 수급 자격은 박탈당했고,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기에 실업 급여를 받을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마지막 발걸음을 뗀 것이다.

“복지사도 믿음직하고요.” 함께 간 이웃 케이티가 다니엘을 안심시키고자 건넨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믿음직한 대리인reliable representative’이 ‘복지사’로 번역된 자막이었는데, 나에겐 다니엘의 항고 서류를 검토하며 걱정말라고 말하는 복지사의 모습이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중략)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사회복지사 선서문)에 서서 함께 싸우는 모습의 전형처럼 보였다.

다니엘이 항고 과정에서 읽고자 했다는 말의 첫 문장, “나는 클라이언트client도 고객customer도 사용자service user도 아닙니다.” 이용인과의 관계가 단지 서비스를 전달하고 제공받는 관계로 의미가 축소되면, 사회복지사는 자기 직업과 월급의 근거인 ‘클라이언트/고객’의 말을 싫어도 견뎌야 한다는 논리의 덫을 피하기 어렵다. 클라이언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니란 저 말이 인권과 사회복지의 만남을 고민하던 나에겐 이렇게 들렸다. 수급자의 욕구를 예단하지 않는 것,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서비스 제공자로 한정하지 않는 것,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감각 속에 서로 의존하며 평등한 관계의 실천을 고민하는 것, 그리고 사회복지의 공공성을 축소시키는 권력과 싸우는 것.

자선이 아닌 권리로서의 사회복지에 대한 지향이 앞서 다니엘의 문장에 이어진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결국, ‘잘 싸우는’ 사회복지사란 이 존엄한 삶에 대한 권리를 현장에서 실현하고자 애쓰는 활동가의 다른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모욕과 낙인을 낳는 사회복지 체계를 바꾸기 위해 싸우고, ‘아가씨’라 부르는 사람들과도 싸워야 하고, 일 하는 자로서의 권리를 방해하는 것들과 싸워 나가는 활동에 인권이 힘이 되며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성: 날맹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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