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참여자의 사전 질문으로 엮는 교육

교육을 요청한 곳과 기획부터 평가까지 함께 한 드문 기회가 있었다.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EXIT, 상임활동가와 자원 활동가가 참여하는 교육이었다.

EXIT와 교육을 진행하기까지 2번의 전조 같은 게 있었다. 첫 번째는 들 활동회원인 EXIT 상임 활동가 나경과의 상담이었다. 나경은 편의점에서 일한 청소년노동자와 함께 사업주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상담 중 보낸 근로계약서만으로 알 수 있는 법 위반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몇 차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수록 답답함의 이유는 딴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 이렇다고 얘기하면 청소년노동자의 태도를 들먹이며 문제를 흐리고, 노동부에 진정하겠다고 하면 나도 경찰서에 신고할테니 해 볼테면 하라는 둥 법대로 해결되지 않는 혹은 법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이어졌다.

두 번째는 이번 교육의 기획자이기도 한 따이루와의 상담이었다. EXIT는 금요일 밤마다 신림동으로 간다. 신림동엔 어마어마한 건물 전체에서 순대만 파는 곳이 있다. 일명 순대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10여 년 전 따이루가 위장(?) 취업했던 그 순대촌에서 임금을 못 받은 이와 함께 노동부에 진정하려던 참이었다. 통상적인 과정 말고 안 당하고 잘 받아낼 ‘묘책’같은 걸 알려달라고 했다. 그 묘책이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어떤 함정에 빠질 수 있는지 정도 짚어가며 상담 한 적이 있다. 상담을 마치고 나니 그 때나 지금이나 신림동 순대촌이 따이루와의 연결고리가 된 것 같아 신기했다.

이번 교육은 1회로 진행하고, 호응을 보면서 하반기 연속 교육을 기획하겠다고 했다. 파일럿 교육인 셈이었다. 후일을 도모하려면 어떤 주제로 먼저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기도 전에 따이루가 노동법 속성(?) 과정을 제안했다. 1회 3시간 만에 노동법을…? 대략 난감하기도 했지만 지난 2번의 상담 경험을 떠올려 보니 그런 제안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요 정도라도 알면 안 당할 것 같고, 사장한테 쫄지 않고 맞설 수 있을 것 같고, 일하는 중에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 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는 것! 첫 교육의 목표로 정했다.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참여자가 목말라하는 내용을 해소하면서 접근한다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교육 준비를 위해 참여자에게 노동법 관련 가장 궁금한 거 3가지씩 미리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며칠 후 따이루가 보내 온 웹자보 제목은 ‘떼인 돈 잘 받아 내는 방법을 알아보자’^^:; 그 며칠 후 보내 온 활동가들이 궁금한 것 역시 ‘떼인 돈 받는 법!’^^ 참여자들이 보낸 질문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교육 때 풀어 놓을 속사연이 궁금해졌다.

  • 실제로 주휴수당과 떼인 돈 계산하는 법
  • 편의점에서 먹은 폐기를 도난신고 하겠다는 점주와 맞장 뜨기 팁
  • 떼인 돈 가장 빨리, 효과적으로 받는 팁/노하우가 있다면?
  • 수당을 주면 법정 최고 근로시간 52시간 이상 근무를 시켜도 문제가 되지 않는 건가요?
  • 떼인 돈이 4-5만 원 정도의 적은 돈일 때도 큰 금액과 동일한 방식으로 절차를 밟아 받아 내는 것인가요?
  • 계약서도 쓰지 않고 급여도 현금으로 받았을 때 떼인 돈은 어떻게 잘 받아낼 수 있을까요?
  • 근로계약서에 월급 80%지급, 1년 이내 계약해지 시 교육비 반납해 적으면 그대로 따라야 하나요. 끝인가요?ㅜㅜㅜㅜ
  • 청소년들의 직업훈련매장이라는 이유로 근로시간 외에 수많은 교육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교육시간은 무급이거나 1시간이나 2시간의 급여만 지급되고 있음. 노무사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근로계약서에 이러한 내용을 명시하고 근로자가 동의하여 사인한다면 문제되지 않는다는뎅… 이게 정말인가요???

 

교육은 참여자들의 궁금증을 푸는데 도움을 줄 노동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노동자에게 노동법은 어떤 의미인지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노동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해석되는지를 구인광고와 근로계약서를 통해 살폈다. 일을 구하기 위해 찾아보는 구인 광고를 보면 도대체 어떤 노동조건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일 하기 전 노동조건을 파악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그렇게 사전 파악을 하고 어떻게 근로계약서를 작성할지 모둠별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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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모둠 활동과 발표 모습, EXIT 제공

 

모둠별 발표 내용을 정리하면서 참여자가 미리 보내 준 질문을 함께 훑었다. 자신의 일 경험에서 나온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보낸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눈빛은 점점 더 빛났다. 질문이 소개되면 마치 라디오방송에 사연이 당첨된 것처럼 좋아하며 빠져들었다. 질문을 보낸 이의 후속 질문이 몇 차례 더 이어졌다. 한 질문을 다루는 시간이 길어져 아쉽게도 다 다루지 못한 채 교육이 끝나버렸다. 따이루의 말로는 이렇게 끝나는 순간까지 초집중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교육 내내 참여자 자신들의 질문이 재료가 되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 내가 궁금한 얘기가 교육의 중심이 될 때 이런 풍경을 자연스럽게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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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의 사전 질문으로 만든 교육 자료

 

교육의 열기를 잊기 전 참여자들이 나눠 준 교육 후기를 보면서 따이루와 교육 평가를 함께 했다. 기획대로 운영이 잘 되었는지, 교육 장소와 간식은 충분했는지, 교육 시간은 적당했는지, 참여자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 ‘따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참여자의 교육 소감은 교육 진행자에 대한 평보단 자신이 얼마나 교육에 집중했는지를 말하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 쉽게 맞서지 못하는 것이 사장과의 정 때문인지 뭔지, 영세자영업자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풀지 않으면 노동인권을 챙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이런 얘기는 또 어떻게 풀어야 할지 등등 다음 교육 기회에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여럿 있었다.

  • 노동인권교육이라고 들었을 때는 정말 따분하고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교육 시간이 3시간이라고 들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교육을 들어갔을 때 따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3시간도 금방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중략) 그리고 교육을 받아서 조금이나마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경험한 일에 대해 더 관심 있게 듣다보니 휴업수당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치만 갑을 관계 때문인지 사장님과 정이 들어서인지 몰라도 쉽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부당한 노동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노동법의 탄생? ㅋㅋ 과정을 알게 된 것이 신선했어요. 그간 나름 노동법과 관련된 교육을 많이 받았다 생각했는데. 저의 근거 없는 자만심이었어요. 쥐뿔도 몰랐었네요ㅠㅠ 탄생과정을 알고 나니 조금씩 알고 있던 내용들이 한 번에 정리되고 이해되는 기분이었어요. 왜 일까요? ㅋㅋ (중략) 구인공고문을 보는 자체도 힘이 많이 들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취업과정을 함께할 때 지원방법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 근데 난 정말 꼰대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사회가 자영업이나 영세프랜차이즈 구조적인 문제들이 많아서 그들의 환경개선도 발을 맞춰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좀 지배세력 아니면 신자유주의 이런 것들에 부지불식간에 많이 젖어 있는 것인가 정확하게 뭔지 잘 모르겠는 고민들도 교육 받으며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지쳐 있는 활동가들을 위해 낮 시간에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고, 요청이 있다면 노동법 세미나를 할 수 있다는 의지도 전하다보니 나 역시 이 교육을 통해 많은 힘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 중 다루지 못한 질문들은 7월 7일 EXIT로 찾아가는 상담을 통해 풀기로 했다. 오랜만에 참여자의 사전 질문으로 교육을 엮는 즐거움을 맛 본 교육, 또한 교육을 요청한 곳의 기획자와 평가 마무리까지 함께 하고 후속 활동을 도모한 교육이었다. 이런 경험으로 또 교육 할 힘을 내는 것 같다.

 

*작성: 수정(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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