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기본소득팀] “기본소득과 현금지급이라는 혁명적 실험”
소란연재(2) - <분배정치의 시대> (제임스 퍼거슨 지음, 조문영 역, 여문책, 2017)

지난 2년간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의 지원을 받아 활동해온 “(위기)청소년자립지원사업 자몽自夢과 동행하는 몽실 프로젝트팀(줄여서 ‘몽실’로 불렸음)”의 연구 사업이 올해 독자적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이번 상반기에 “청소년 기본소득 타당성 연구-청소년 자립지원현장에서 현금직접지원이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연구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함께 관련 책과 논문 등을 읽어나가며 공부를 한 뒤에 본격적인 청소년(및 현장 교사/실무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연구 결과를 내보려 합니다. 팀에서 같이 공부한 내용 중에 들 사람들과 나누고픈 책 한권씩을 꼽아 이 지면에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지켜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그냥 물고기를 주어라!

이 책의 원제는 “Give a man a fish”, 즉 “물고기를 주어라”이다. 지속가능한 자립경제를 위해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흔히 통용되었던 방법론을 비틀며, 저자 제임스 퍼거슨은 그냥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어라”고 말 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서구사회의 오랜 국제개발원조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곤과 착취적인 경제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에서 비롯되었다. 퍼거슨은 빈곤을 근본적으로 생산의 문제로 가정한 채 직업훈련이나 교육, 생산노동을 통해 풀어가려는 패러다임에 반기를 들면서, “분배를 누릴 자격이 결핍된 것이야말로 근본원인”이며, “생산주의적 분석보다는 분배주의적 분석이 물고기 공식을 수정할 것(95쪽)”이라고 제안한다. 좌파진영조차 생산이 일차적, 구조적, 물질적인 반면, 분배는 이차적, 파생적, 일시적이라는 생각(106쪽)에 갇혀 있음을 꼬집으며, 분배가 오히려 생산의 결과가 아니라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생산주의를 넘어 분배정치로

저자는 분배주장들이 어떤 정치적 추동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정당한 분배라는 생각이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124쪽)고 주장한다. 노동과 생산을 통해서만 ‘정당한’ 자신의 몫과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뿌리 깊은 생산주의적 시각은 빈곤 계층에 지원하는 지원금에 대해서도 경멸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몫의 정당성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장려해야 하며, 분배가 가치 있는 목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가 ‘분배 노동’이라 명명한, 바로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분배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분배의 중요성에 대한 피력을 넘어 정당한 몫의 정치가 제대로 영향력을 가지려면 ▸분배의 제도적 기제를 식별하고 만들어내는 것과 ▸몫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정치적, 윤리적 참조 틀이 있어야 한다(125쪽)고 강조한다.

“가장 기본적인 시민권은 투표할 권리가 아니라 국가의 부에 참여할 권리”(122쪽)

분배정치의시대 원서 표지이미지퍼거슨은 ‘사회적 문제들’이 개인들의 책임, 도덕성, 시장의 영역으로 넘겨지고 있는 일련의 흐름들을 목도하며, ‘사회적인 것’을 역사적으로 분석해낸다. 그는 사회를 대신해 일정한 속성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개인들로 구성된 커뮤니티가 새로운 추동력을 얻고 있다(141쪽)는 시선을 공유하며, ‘사회적’ 시민권이 보편적인 권리라기보다 소수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남아프리카라는 식민지 조건에서는 사회적인 것이 문명화된 것과 연계되어왔고, 백인 정착자와 흑인 노동귀족만을 위한 역사적으로 특수하고 위계적이었던 ‘사회적인 것’ 이후에 무엇이 등장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필요(153쪽)가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금지급은 단지 생존권 보장, 빈곤의 해소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구에 화답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권은 “소비와 교환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243쪽)” 역시 포함해야 한다. 또한 현금이 생명선인 물만큼 생활에서 필수적인 세계에서 모든 시민에게 최소한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강력한 정치적 요구이자 윤리적 의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헌법에 규정된 주거권을 갖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집 없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물질적 재화에 대한 직접적 요구는 권리와 같은 추상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110쪽). “문제는 내가 집에 대한 권리는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는 집을 원합니다.” NGO주최의 주거권과 관련한 워크숍에서 나왔던 이 노인 청중의 발언은 몫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몫 자체를 요구하는(112쪽)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는 전체 사회가 사회적 노동/고통/혁신의 산물인 부를 함께 공유해야(120쪽) 하고, 우리 모두가 몫을 갖는 것에 대한 공동유산의 상속자(120쪽)라는 철학에 기반 해 있다.

돈과 사회적 친밀성, 상호성의 맞물림

현금지급에 대한 최근 연구들이 강조하는 것은, 현금소득이 약간이라도 존재한다면 수급자들이 삶에서 가장 긴요한 부분에 현금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실제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재화에 접근하고 생계전략에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통해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다. 퍼거슨은 돈과 사회적 관계들이 맺는 상이한 종류의 연결에 주목하며, 돈, 의미, 상호성이 적대적이라기보다 긴밀히 맞물린 관계임을 드러낸다. ‘돈의 사회성’이라는 개념을 빌려와 ‘현금관계’가 사회성, 상호성의 관계들과 배치되지 않고 도리어 이 관계들이 존재하는 데 핵심적(237쪽)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성, 호혜성, 연대, 돌봄이 돈을 직접 쓰고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해졌고, 돈을 획득할 수 있는 자들이야말로 지원과 돌봄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이며, 돈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성과 상호의존의 연결망에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240쪽).”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결고리로부터 벗어나 있던 빈곤층에게, 현금이 타인을 돌보고 지원하는 행위를 가능케 해준다는 점이다. 이기심, 탐욕과 등치되어 왔던 ‘시장’적인 행위영역과 현금관계가 실은 돌봄, 사랑, 공유, 애착을 포함한 친밀성의 관계들이 펼쳐지는 “분배와 조정의 사회적 장(228쪽)”이라는 해석은 흥미롭다.
의존 역시 서구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치, 독립과 배치되는 개념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아프리카 사회의 맥락에서 의존이란 “사회적 인간됨(259쪽)”과 사회체계에 통합될 수 있는 성원권(260쪽)을 획득하는 “하나의 행위양식mode of action(258쪽)”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퍼거슨은 의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태의 의존인가를 묻는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자유로운 주체의 완전한 자립이라는 이상보다는, 덜 해악적인 그리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상호 의존양식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까.

면밀한 역사화 작업을 통한 새로운 사유로의 초대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그가 단지 새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지원의 방식이 아니라 이와 동반되는 새로운 사유의 방식들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퍼거슨은 이를 ‘분배정치politics of distribution’, 즉, “신생정치를 위한 전조이자 지적 자원으로 이해될만한 빈곤과 사회부조의 새로운 합리성”(53쪽)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새로운 분배양식이 빈곤을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과 연결됨과 동시에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권리주장 및 새로운 정치적 동원의 가능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58쪽)”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이라는 반복되는 언설에 따를 수 있는 매도 혹은 칭송을 경계하며, 독자들이 새로운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당면한 현재의 정치적 가능성과 위험을 더 잘 살필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무언가로 발전하는 시대를 상상하는 일과 새로운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161쪽) 퍼거슨의 사유의 힘은, 30여 년 동안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루어져왔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깊이 있고 면밀한 역사화 작업으로부터 나온다. 오직 제대로 역사화 된 전망만이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정치와 미래를 볼 수 있을 것(162쪽)이다.
<분배정치의 시대>는 기본소득과 현금지급이라는 실험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는 것을 넘어, 여전히 생산을 기반으로 한 성장과 발전의 패러다임, 그것이 야기한 다층적인 견고한 문제들을 마주한 지금의 현실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다른 사유와 실천의 물꼬를 트고,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작성: 나무 (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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