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용기 100% 충전해야 할 수 있는 말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만 품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싶기도 하죠. 그런데 또 생각을 해보면, 이런 말을 하면 나를 이기적이라고 하지 않을까, 너무 어이없는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말도 안 된다고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많은 걱정 때문에 나는 말을 고르고 고르는데 거침없이 말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이 또 의아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은 어떤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 말을 하기 위해 얼만큼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얼마 전에 갔던 교육에서 ‘하고 싶었던 온갖 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카엘 엔데의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라는 책의 앞부분을 어린이들과 함께 훑어보고 주인공 렝켄처럼 엄마, 아빠, 교사 등 어른에게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먹여 몸을 작아지게 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지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랭켄은 요정에게 받은 마법의 각설탕을 엄마·아빠가 마시는 찻잔에 몰래 넣었는데, 그 설탕은 엄마·아빠가 랭켄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마다 몸이 작아지도록 하는 마법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마법의 설탕두조각

  • 내 뜻대로 하고 싶은데 그것을 막을 때
  • 말 좀 잘 들으라면서 계속 잔소리할 때
  • 오빠/형/언니/누나의 편만 들 때
  • 엄마한테 혼날 때
  • 누구든 나한테 화풀이할 때
  • 내가 하자는 건 안 하고 시키기만 할 때
  • 자기도 평소에 잘 안 치우면서 자기가 청소할 때만 화내면서 청소하라고 할 때
  • 자주 부모님이 공무원이 되라 할 때
  • 공부 1도 안 되는 무리하게 공부시키는 학원 등록할 때
  • 아빠가 “학원이 힘들면 그만둬도 되지만 너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 힘들어도 계속 다니는 게 좋아” 라고 할 때
  • 작아지게 하고 싶은 적은 없음. 대신 설탕 설정 바꾸기 – 편의점에 가서 쓸 수 있는 5만 원짜리 기프트 카드 주는 것
  • 온라인게임 현질(현금으로 아이템/게임머니 등을 사는 것) 안 해 줄 때

설탕 두 조각을 먹이고 어른들이 작아지면 좋겠다 싶은 순간을 찾지 못해 쪽지를 채워주지 않았던 어린이들도 다른 사람이 적어준 말을 들으며 한두 마디 덧붙이느라 교실이 시끌벅적한 와중에 새로운 질문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말을 하려면 얼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요? 대부분 100% 가득 충전된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50~60% 정도면 된다는 어린이들이 가끔 있긴 했지만 10%쯤이면 할 수 있다는 얘기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혼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고, 무시당하고 핀잔을 들어왔으니까 한 마디 한 마디 큰맘 먹는 게 당연하기도 하겠죠.

용기 가득 필요한 순간을 모둠별로 나눠 갖고 꼭 하고 싶던 한 문장의 말을 적어보자는 활동을 제안하려고 했는데, 모든 순간에 용기가 꽉꽉 채워져야 한다니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모둠별로 꼭 해보고 싶었던 말을 하나 정해서 같이 외쳐보자고 제안했더니 뚝딱뚝딱… 만들어준 문장들입니다.

‘우리에게 현질을 해달라’는 모둠은 기껏 얘기 잘 나누고 큼직한 글씨로 시원스럽게 다 써 놓고는 안 했다고 꼭꼭 숨기고 있었습니다. 왜 선뜻 ‘우리는 이런 말로 정했다’고 내보이지 못했을까요.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린이들은 혼나거나 잔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차마 돈을 주고 아이템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까지는 그 사람들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이들도 이미 내가 목소리를 내더라도 어떤 얘기는 수용될 수 있고 어떤 요구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내 말을 들어라

 

와글와글 시끌시끌했지만, 어린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저도 그런 분위기에 무척 즐거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할 때든 상관없이 용기가 100% 필요해요. 왜냐면 맨날 말만 하면 혼나니까요~!” 하던 어린이들이 남겨준 후기는 생각보다 뭉클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쪽지에 적어준 말을 보며 슬프거나 마음이 아팠다는 어린이, 모둠끼리 힘을 합쳐 한 문장을 쓰고 외치는 일이 재미있었다는 어린이, ‘세상은 바뀌지 않을거야 ㅜㅠ 에서 벗어나기’라는 교육자료의 문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는 어린이, 우리의 인권을 (스스로) 존중하자는 어린이…. 이런 후기를 읽다가 한 번의 인권교육, 1회성 교육이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교육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인권을 경험한 시간’으로 오래오래 기억해주면 참 좋겠다는 부질없는 바람을 살짝 품어 보았습니다.

 

# 글쓴이 | 림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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