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청소년 성소수자,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학생 대상 인권교육을 가면 종종 ‘게이’를 만난다. 실제 그 학생의 성적지향이 어떠한지와 관계없이 학생들이 지정한 게이이다. 대게 여성적인 말투나 행동을 한다거나 동성 남학생과 매우 친밀하게 붙어 다니는 이를 조롱하는 네이밍이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양성으로 이분화된 젠더 개념은 성별에 따른 역할과 행위, 사고방식 전체를 규율한다. 때문에 이 규범 밖의 존재들은 쉽게 배제되거나 문제로 지목되고, 학교와 같은 폐쇄적 공간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서도 들켜서도 안된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놓인다. 학교 밖이라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심지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도 한다. 지난 대선부보들의 토론과정에서 던져진 ‘동성애에 반대하냐?’는 폭력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차별 교육을 통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편견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피곤 한다. 간혹 참여자들 중에는 ‘난 장애인/성소수자 한 번도 본 적도 없는데 왜 이런 얘기를 하나요?’라며 불편함을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다만 ‘없다’고 규정하기 전에 그이들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사회는 아닌지 질문해 볼 것을 요청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자연적인 장애인 출현율을 10명 중 한 명으로 잡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우리사회에서 성소수자임을 드러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보면, 소수자들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어떻게 없애왔는지 그 과정과 방식을 알아차리게 된다.

인권교육은 그렇게 없애고 지워온 존재들을 불러내고 목소리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사회에서 찍은 ‘불법’이라는 낙인을 걷어내고 동료시민으로 초대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살아가는 오늘의 삶과 고민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섣부른 추측이나 판단이 아니라 실제 삶과 접속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모순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들’은 지난 4월 청소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몽> 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성소수자를 지원하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정욜 활동가를 초청해 성소수자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관점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성정체성 관련한 용어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 현재 청소년성소수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무엇인지 간략하게 소개한다. 그 속에서 인권/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

성적 다양성

이성애자가 아닌 다양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성소수자’라고 부른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라는 정체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 네 가지 분류만으로 모든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의학적으로 남성, 여성을 구분하기 어려운 인터섹슈얼(Intersexual), 모든 섹스와 젠더를 향해 성적, 낭만적, 정서적 이끌림을 느끼는 범성애자(Pansexual), 성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에 있거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성정체성에 대한 규정을 하지 않는 퀘스처너리(Questionary) 등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다양한 정체성만큼 다양한 이름이 생겨난다. 성별을 크게 고민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탐색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용어들은 매우 중요하다. 바로 자신을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성적 다양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개념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 외 다양한 정체성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성정체성 용어들

청소년 성소수자가 직면한 문제들

청소년기는 자아정체감은 물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가는 시기이다. 이 때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감히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있다면 정서적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깊은 우울이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안전하게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정당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유보시킨다. 이와 함께 정신적 장애로 진단하거나 에이즈전파의 주범, 변태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편견까지 더해져 소외감과 함께 죄책감마저 갖는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국제질병분류(ICD)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지난해 정신의학협회는 ‘성별 정체성 및 동성에 대한 성적 지향, 끌림, 행동에 대한 세계정신의학협회 성명서’를 통해 전환치료 금지, 동성애 비범죄화, 차별금지법 등의 지지,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인한 정신 건강적 불평등 제거를 위한 지원 등을 채택했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들은 늘 ‘치유적 삶’을 강요받는다. 대표적인 청소년 상담기관인 헬프콜 청소년전화 1388 상담원은 성정체성과 관련한 상담과정에서 “동성애는 잘못된 거고,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 “청소년시기는 동성애에 빠질 수 있다” “동성애라서 남들보다 피곤하게 살 수 밖에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라고 응답해 내담자가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위기를 더 가중시킬 뿐이다.

전환치료는 폭력이다 기자회견 모습 (2016.3.9.)

청소년들이 주된 시간을 보내는 학교도 안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성애 중심의 문화와 교육, 교사들에 의한 성소수자 혐오발언이나 학칙을 활용한 처벌은 청소년 성소수자를 학교 밖으로 내몰고 있다. 띵동은 2016년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친화적 환경 구축을 위한 연구조사」를 진행했는데, 참여자 15명 중에 6명이 교사의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들었다고 응답했다. 대개 그 순간 ‘화가 났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충격적이었다’ ‘심장이 떨렸다’고 하면서 이 시기를 지나야 자신도 사람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참고 또 참는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직접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교사-학생의 관계,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학생들이 항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교사의 폭력에 그치지 않는다. 교실에서 이러한 차별과 모욕, 조롱이 용인되면서 다른 친구들은 동성애를 나쁜 것이라고 학습한다. 성소수자를 왕따 시키거나 당사자 동의없이 소문을 내기도 한다.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더라도 소지품을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어, 여기 게이 있대매’하는 일종의 놀림을 일삼는다. 이 속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숨막혀하고 동시에 무기력해진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실천하고 다양한 삶을 배우는 학교에서마저 차별과 폭력은 반복된다.

우리는 당연한 듯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차별을 온 몸으로 겪어내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누구인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이것만큼 폭력적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모습 그대로 살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인간 존엄과 행복의 출발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말을 걸어올 때 쉽게 판단하고 바꾸려 하기에 앞서 그이들의 고민을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필요하다.

  • 묘랑(상임활동가)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