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인권은 ‘질문하지 않는 게으름’과의 싸움이다

나는 ~할 때 내가 존엄하다고 느낀다.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는 여성 10여 명과 진행한 교육에서 참여자들에게 채워달라고 부탁했던 문장이다. 다양한 응답들이 많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돌 던지지 않고 귀 기울여 줄 때”라고 답한 참여자가 많았다. 존엄이 무슨 뜻인지 묻는 참여자가 있었다. 아주 모르는 건 아닌데,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존엄, 이 말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쓰이지 않는다. 존엄이라는 말의 깊이나 묵직한 의미 때문일 것이다. 사전은 ‘인물이나 지위 등이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함’이라고 설명한다.

“여섯 살짜리 딸애랑 소풍 가려고 외출하는데 아빠가 ‘운동화 신고 가자.’ 했더니 싫다고, 구두 신겠다고 해요. ‘소풍 갈 거니까 운동화가 편할 거야.’ 했더니 ‘싫어, 내가 결정한 거야!’ 이랬거든요. ‘결정’이라는 말을 알고 쓴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여섯 살짜리도 내가 결정한 대로 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나는 뭐 하고 산 거지… 싶은 거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해야만 하는 일들에 떠밀려 살아가느라 ‘존엄’을 경험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무슨 일이든 내가 스스로 결정하려는 마음, 내 시간을 통제하고 기획하는 주체가 ‘나’였으면 하는 갈망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갈망을 실천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를 막아선 것이 바로 ‘이기적이고, 못되고 자기만 아는 인간’이라는 비난이다. ‘학생다움, 여성스러움, 엄마의 역할’이라는 사회의 주문에 별 고민 없이 맞춰가며 살아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한 존재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노동시간 단축’, ‘학습시간 줄이기’를 주장했다. 일터나 학교에 매여있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통제나 닦달 없이 오롯한 나만의 시공간을 확보하는 것.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길은 쉬워 보이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인권은 (               )과의 싸움이다.

질문하지 않는 게으름인권’이라는 말을 ‘나의 존엄’에 대한 문제가 아닌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의 문제,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라고 분명히 드러나는 존재들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참여자가 많았다. 각자의 삶 속에도 인권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수 있다는 발견이 참여자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두 번째로 주어진 문장 채우기에 참여자들은 ‘그동안 나를 짓눌러온 편견, 고정관념, 시선’과의 싸움, ‘편안함’과의 싸움, ‘나’와의 싸움 등을 적어주었다.

이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혼자 애쓰면 괜찮은 걸까. 모두 존엄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 각자 자기 삶의 모든 순간에 예민한 감수성을 갖기 위해 끝없이 반성하고 성찰하고 도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존엄의 경험이 풍부해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일 테다.

“내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던 생각들하고도 싸워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지나친 것 같아요. 그게 편했으니까… 내가 질문하기를 게을리한 거구나 싶어서 ‘질문하지 않는 게으름’과의 싸움이라고 했어요.”

참여자와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건져 올린 어록 중의 어록이 바로 이 글의 제목이 되었다. 말하자면 참여자가 내게 선물한 ‘인생문장’이다.

 

– 글쓴이: 림보(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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