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저항하는 인권교육?!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야 안녕 revisited

1.
기록을 다시 찾아보니 2007년 6월 즈음의 일이었다. 당시 행자부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법률로 강제하는 국기법 시행령을 제정하려고 하자 이에 맞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이 결성됐다.
그때 소통했던 진보넷 블로그를 검색해 간만에 들어가 보니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전체주의, 국가주의, 애국주의와 안녕해야 한다는 고민으로 교육, 문화, 인권, 평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공무원들 점심시간 맞춰 1인 시위를 하면서 찍었던 사진들 훑다 보니 사람들 생각이 난다. 그때 보고 지금도 보고 있는 이들, 그땐 같이 있는 줄 몰랐는데 지금 보니 같이 있었구나 알게 된 이들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이들까지. 확실히 기억은 각자에게 선택적으로 재구성된다. 제헌절에 맞춰 국회 경내에서 벌인 직접행동으로 친구들이 유치장으로 연행됐을 때, 속옷 넣어주러 찾아간 경찰서보다는 그날 면회 같이 간 친구와 나누던 대화 생각이 먼저 난다.
딱 그 시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전쟁없는세상’ 친구들이랑 같이 야구 보러 가서 국민의례 때 꿋꿋이 앉아 맥주를 마시던 기억도 떠오른다. 귀찮아서 안 일어나는 관중들도 있는데 우리는 ‘저항’의 의미를 담아 가만 앉아있으려니 얼굴은 웃지만 그날따라 애국가도 더 길게 들리고 괜히 더 주변 눈치가 보였던, 그런 긴장된 순간 몸에 남는 감각의 기억들이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불복종 행동 웹자보+2007년 당시 1인시위 때 아치가 들고 나왔던 피켓 문구-"국가가 버르장버리 없어지니까"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불복종 행동 웹자보 중 하나(왼쪽) 뭔지 모르게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긴 한다. 1인시위 때 양아치가 들고 나왔던 피켓 문구, “국가가 버르장버리 없어지니까”(오른쪽) http://blog.jinbo.net/byebye/16

 

2.
예상치 못한 긴장감에 내 심장 소리가 쿵쾅쿵쾅 들리는 순간을 얼마 전 경험했다. 모 공공기관에서 진행된 교육이었다. 교육 시작 전 사전 안내 시간 잠깐 쓰시겠다고 하길래 교육장 측면에 앉아있었는데, “그럼 국민의례로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것이다. 일순간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그 공간에 앉아있던 40명 가량이 우르르 일어섰다. 나도 얼떨결에 일어서는 그 찰나에 판단을 내려야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듣고 내 오른손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면 난 어떤 자세로 있을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계산하며, 난 그럼 어떤 이야기로 교육을 열 것인지 하는 생각들이 파다닥 스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회자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는 읊지 않았고, 이내 곧 “바로. 자리 앉아주십시오” 소리가 들렸다. 내 자리와 반대 방향에 태극기가 있었던 덕분에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각도도 아니었다. 모두들 일어서던 그 순간 거기에 반하는 행동을 고민하던 시간이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 긴장되고 덜 길게 느껴진 것 같긴 한데 그 이유가 내가 전보단 맷집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강사로서 ‘힘’을 가진 위치에서 내 운신의 폭을 가질 수 있다는 모종의 자신감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태도에 익숙해진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긴 하다.
이날 모인 참여자들이 ‘교사’였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더 남는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용석 선생님이 정직 처분을 받았던 2006년에 비해 지금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긴 한 걸까 하는 씁쓸함. 이용석 교사의 징계 사유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만이 아니라 군사주의 문화에 비판적 해석을 수업 시간에 나눈 행동이 “학생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가치관을 갖도록 할 소지가 있으며, 개인적인 편견을 학생들에게 전파한 것으로 판단되어 교육기본법 3조의 학생 학습권 침해, 6조의 교육 중립성 훼손, 국가공무원법 56조 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요즘이야 태극기를 들고 덕수궁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탄핵 반대를 외치는 ‘4% 꼴통 보수’를 비판하는 96% ‘국민’이 있다지만 제2의 이용석 교사가 지금 다시 나온다면 과연 그이의 양심의 자유가 전보다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애국심을 의심하지 못하는 딱 그만큼의 감성이 학생인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사들의 인권감수성은 아닐까 하는 삐딱한 생각. 그럼 다시, 인권교육을 한다는 나는 교사들과 어떤 가치를 어떻게 잘 나눌 것인가 질문이 스친다.

 

교생 나갔을 때 찍은 사진. 초등학생들이 발표를 위해 손을 들고 있고, 교실 정면에 태극기가 걸려 있음.

2015년에 독일에 병역거부 스피치투어를 가서 발표를 하며 사용했던 사진 중 하나. 교생 때 경험이 병역거부 고민과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던 사진이었는데 청중들이 오히려 관심을 보인 것은 교실에 걸린 태극기였다. 나치즘에 대한 반성을 공유하는 곳에선 한 나라의 국기가 교실 안에 걸려있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던 것. 내가 온 곳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라는 것을 매번 다시 답하게 됐던 사진.

 

3.
작년, 가을이 깊어가던 무렵 ‘예비교사 인권감수성’이란 제목의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주로 사범대 재학생들이 교육 참여자라고 했다. 여대라는 점을 감안해서 가져가봤던 “이만하면 여자들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사람에게 ~라는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에 멋진 답변들을 해주셨다. 그때 바로 기록을 남겨두지 못한 내 뼈아픈 실수가 내내 아쉽다. 그래도 하나 생각나는 답변이 있다면 “꺼져!”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회적 논쟁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건 문제 아니냐”는 주장이나 “친절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라는 부당한 지적을 둘러싼 이야기를 풀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주요 질문으로 가져갔던 것이 “우리 대학이 인권친화적인지 점검하는 질문 목록을 만든다면 어떤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할까요? – 누구의 입장에서 무엇에 주목하면 좋을까요?”였다. 앞 질문에 비해 참여자들이 적어준 개수가 적었지만 나의 지난 경험을 떠오르게 한 답변이 있었다. “학생 식당에서 학생들은 줄서서 배식 받는데 교수님들은 안 기다리고 바로 받아먹는가?” 자본주의 논리대로 하면 똑같은 돈을 낸 소비자인데, 누구는 줄을 서고 누구는 줄을 새치기해서 먹는다면 그건 차별 아닌가? 조교 등 합법적인 ‘시다바리’를 둔 교수‘님’들이 수업 준비로 바쁘다고 한다면 여러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더 바쁜 존재일텐데?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 교수를 향해 “새치기하지 마세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나. 혹은 왜 구내식당에 교수 줄을 없애라는 대자보 한번 붙여볼 생각을 못했을까. 인권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권적 문화와 관계를 경험함으로써 행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들.

4.
근대적 학교 시스템이 ‘국민’을 찍어내는 지배 계급의 장치로서 작동한다는 분석의 구체적 장면 중 국기 경례와 맹세는 한국의 ‘종특’ 쯤 되겠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jtbc 뉴스를 보며 확인하지만 그럼에도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해야 하는 문화에서 ‘저항’은 감히 꿈꿀 수 없는 사치가 되기 쉽다. 누구도 영혼을 담아서 하진 않는다고 해도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의례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에 대한 복종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이 있다는 ‘자연스러운’ 감각은 생각하지 않음, 비판적 사유가 마비된 상태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사람의 감각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얘기를 교육 때 더 하게 되는 맥락이 있다.
인권의 내용이 존엄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벼리는 작업 속에 깊어질 수 있다면, 인권교육의 목표는 우리의 일상적 감각을 돌아보는 것, 누가 사회적 약자이고 무엇이 차별인지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을 합의해가는 과정 그리고 우리에게 낯선 존재와 서사를 밀어내기보다 이해하고 수용하며 (진행자를 포함하여) 자기 스스로를 재구성해가는 연습이지 않을까.
국민의례를 비판하는 사람이 “웃자고 하는데 죽자고 달려든다”는 비아냥이나 “불평쟁이”라는 힐난을 받는다면 이는 국민의례를 통한 지배체제가 충실히 구현되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리란 두려움이 압도적인 곳에서 억압받는 자는 자신을 지배자의 시선과 동일시하는 선택을 하기 ‘쉽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등이 문제 삼는, 피지배자의 동의에 기반한 권력이 무서운 것은 그 권력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 지배자가 굳이 자기 손에 똥 묻히지 않아도 억압받는 자들끼리 서로를 미워하고 견제한다는 점 때문이다.
“교수라고 해서 새치기할 권리는 없다”는 주장을 들은 다른 학생이 “쟤는 혼자 왜 잘난 척 하고 그래. 억울하면 자기도 교수가 되든가”라고 반응하는 것이 지금 헬조선의 흔한 풍경이라면, 자신도 똑같이 새치기 당하는 입장에서 타인과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곁을 내줄 수 있는 것, 연대의 씨앗을 찾아나가는 것이 인권교육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찌질한 내가 어느 순간 교육 한번 받고 당장 내일부터 ‘저항’을 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 내가 속으론 식은땀 흘리며 소심한 저항을 하던 순간의 정서를 공유하는 동료를 만나고 그 다음의 저항을 다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 적고나서 돌아서면 너무 거창해보여서 민망해지는 인권교육의 목표들을 되뇌어본다. 다음번엔 이 지면에 교육의 ‘이상’이 아니라 실제 참여자들과 교육 속에서 상호작용했던 장면을 기록할 수 있길 바라며.

*작성: 날맹(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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