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인권의 우산을 펴는 권리옹호연습

새해를 맞이한 후, 첫 교육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 실무자 분들과 함께 한 숙박교육이었습니다. 1박 2일 꼬박 14시간 동안 70여명의 분들을 만났습니다. (두 그룹으로 분반 진행) 인권감수성, 반차별, 어린이·청소년 인권 기본+심화 등 여러 주제의 꼭지를 진행했었는데요. 그 중 지금 소개하려는 내용은 <권리옹호연습>이란 이름으로 진행한 어린이·청소년인권 심화 꼭지입니다.

흔히 ‘트러블 메이커’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일부 어린이·청소년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정상 혹은 모범의 기준으로부터 밀려난 모든 존재들이 특정 공간의 ‘트러블 메이커’로 불립니다.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 당연하듯 굴러가는 관행에 태클을 거는 직장인, ‘여자답지 않은’ 여성 등등이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미꾸라지’ 혹은 ‘트러블 메이커’로 지목 받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지칭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갈등)는 그 공간/사회 안에 ‘이미’ 있습니다. 무지와 무감각, 권력 등을 통해 문제가 가려지거나, 봉합되어 있을 뿐이지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정당한 의견 진술이나 행동을 통해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불만/분노의 서툰 폭발로 마치 ‘파열음’과 같이 등장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도, 후자의 경우도 더 나은 공간/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연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를 낳습니다. 드러난 갈등이나 혼란을 회피하지 않는 집단적 노력이 뒤따른다는 전제 아래서요.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용기 있는 결단’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반면, 후자의 경우는 곧장 ‘문제행동’이라는 낙인이 찍히곤 합니다. 특정 ‘개인’의 문제적 ‘행동’을 ‘교정’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미성숙한 존재라고 손쉽게 규정되는 어린이·청소년의 경우, 이러한 혐의를 특히 많이 받습니다. 갑갑한 관계/구조/환경이 문제의 원인인 경우가 많지만, 주로 주목받는 것은 ‘문제아’들입니다. ‘쟤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흐려진다.’라고 말하기 이전에 ‘지금의 수업이 어떤 학생들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지 화가 나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라고 판단하기 이전에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폭력이 문제해결의 유일한 해법처럼 인식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사람, 또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위선이거나 거짓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든 인생에서 실수/실패/방황/미끄러짐의 경험이 있다는 것만은 진실입니다. 내 기억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이 ‘못난’ 경험들을 들여다보면, 심연처럼 아득한 어떤 존재가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나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가 있었지’,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겠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는 걸 출발선으로 삼아야 개인을 제거하거나 제압하는 방식의 상투적 해결책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물론 낯선 존재를 이해라는 여정은 ‘불편함’과 ‘부대낌’을 선사합니다. ‘저런 모습까지 이해해야 되는 거냐’는 마음이 일렁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일렁이는 파도 자체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익숙한 사고의 프레임이 어떤 존재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거나 왜곡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하는 힘, 그것이 인권감수성일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실무자 분들과 나눠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현장에서 어린이·청소년을 만날 때 가장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이나 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이런 것도 권리로 인정해줘야 해?’하는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참여자 각자가 사연을 메모해 준 쪽지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말끝마다 왜 욕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싫어요, 안해요, 몰라요… 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산다.’,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고 당장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한다.’, ‘술·담배를 벌써부터 하고 싶어 한다.’ 등등의 쪽지들이 등장했습니다.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무궁무진 했지만, 참여자 분들이 가장 생각해보고 싶어 하는 ‘문제행동’ 4가지를 꼽아 모둠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만약 욕할 권리/무책임할 권리/무기력할 권리/위험한 행동(술, 담배, 섹스 등)을 할 권리를 권리로서 옹호한다면, 어떤 근거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요?”

 

참여자들은 ‘사람은 어떨 때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가?’, ‘그 행동을 통해 청소년들은 어떤 바람이나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가?’, ‘이 권리의 다른 이름을 찾아본다면,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와 같은 세부 질문을 바탕으로 모둠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모둠의 결과물 중 제 마음에 크게 와닿은 2장의 사진을 소개합니다. 권리나 권한은 주어져 있지 않은데 과도한 책임만 부과되어 버거웠던 순간, 내가 동의한 적 없는 책임이 마치 형벌처럼 내 어깨를 짓눌렀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당신도 이 결과물들에 마음이 기울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둠활동 결과물 사진

⊕ 무책임할 권리 ⊕

1. 사람은 어떨 때 그러한 행동을 하는가?
♦ 책임 회피할 대상/이유가 있을 때
♦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우선순위가 아닐 때)
♦ 책임(역할, 의무)이라고 하는 것이 자신이 이행하기 과분할 때, 부담스러울 때
♦ 현실감이 없을 때
♦ 책임이라는 개념이 서로 다를 때 (기준의 차이)

2. 그 행동을 통해 청소년들은 어떤 바람이나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가?
♦ 하기 싫다, 귀찮다
♦ 나에게 손해가 오지 않는다
♦ 방임이 아니라 조언, 독려를 부탁
♦ 책임을 강요하지말고, 환경을 변화시켜주세요
♦ 사전에 책임이나 역할을 설명하고 논의
♦ 동기부여
♦ 대화와 소통

3. 이 권리의 또 다른 이름
♦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할 권리

 

 

 

 

 

모둠활동 결과물

⊕ 무기력할 권리 ⊕
1. 사람은 어떨 때 그러한 행동을 하는가?
♦ 나를 대하는 행동이나 질문이 매번 같을 때
♦ 내가 원하는 주제의 대화가 아닐 때
♦ 내 생각이나 의견이 반영되지 않거나 변화가 없을 때
♦ 귀찮을 때, 하기 싫을 때 (피곤;;)
♦ 현재 상황이나 처지가 비관적일 때
♦ ‘내 상황을 100%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

2. 그 행동을 통해 청소년들은 어떤 바람이나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가?
♦ 날 좀 내버려둬
♦ 진짜 내 이야기를 반영해줄거야?
♦ 말해봤자… 그치만 이해해줘
♦ 그만 좀 시달리고 싶어
♦ 내가 알아서 할게

3. 이 권리의 또 다른 이름
♦ 주도적이고 싶을 권리
♦ 대화의 주제를 내가 결정할 권리
♦ 침묵하면서 생각할 권리

 

* 작성: 한낱 (상임활동가)

* 본 활동 프로그램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 <인권교육, 날다>에 이미 소개한 바 있습니다. 활동 진행 방식이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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