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이것도 인권인가요?”
어느 복지관에서 진행한 ‘인권토크콘서트’

이번 교육은 기획 과정이 여느 교육과는 좀 달랐다. 시작은 몇 달 전에 한낱이 다녀온 어느 지역의 사회복지사 대상 교육이었다. 그곳의 참석자 중 한 분이 ‘들’로 다시 교육을 요청한 것이다. 좀 달랐다는 건, 내용상의 요청보다는 “앞에 패널을 앉혀놓고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점을 중요하게 요청하신 부분이었다. 올해 대상별 인권교육을 한 번씩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것도 인권인가?”하는 아리송해진 부분들을 정리하는 자리로 삼고 싶다고 하셨다. 그동안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해왔던 일이 인권침해일 수도 있다는 것에 여전히 헷갈리는 부분들을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

교육 준비 과정에서 담당자 분과 통화를 할 때마다 매번 대화가 길어졌다. 서로 기대하고 떠올리는 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 이분의 요청은 복지관 직원과 사회복지 전공 대학생, 활동보조인에 복지관 이용인까지 100명이 참석하는 토크콘서트 형식이었다. 총 3시간 중에 전반부는 강연, 후반부는 패널토론을 떠올리셨다고 했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많지만 막상 질문을 열심히 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그래서 “각 집단의 대표”를 패널로 나오게 하는 그림을 생각했다고 하셨다. 결국 참여자들의 질문을 내가 미리 받아보고 강연 내용과 (주최 측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패널이 앞에 앉아있는 모습의 토크콘서트 진행 방식을 고민해보겠다고 하면서 일단 합의를 보았다.

 

지역의 한 종합복지관에서 진행한 인권토크콘서트 사진

“클럽 입장 거부는 인권 침해 아닌가요?”

교육을 준비한 담당 복지사 분이 중간에서 애를 많이 쓰신 것 같았다. 기대 이상으로 여러 질문들이 들어왔다. ‘주최측’이 작성한 질문도 많다는 것을 교육 진행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 질문들을 미리 분류하여 전반부 강연 내용을 구성하고 후반부 패널 토론 때 나눌 이야기의 궤를 짜볼 수 있었다.

가령 “휠체어 장애인이 호프집 입장을 거부당한 것이 인권침해라면, 클럽 입장을 제한 받은 사람도 인권을 침해받은 것 아닌가요?” 묻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저는 그럴까봐 아예 클럽에 안 가요”라고 웃으며 답한 참여자도 있었지만, 만약 나이를 근거로 특정 연령대의 접근이 거부당한 것이라면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과 마찬가지로 차별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 더 나아가 청소년이나 노인에 대한 차별 또한 나이주의에 기대어 작동하고 있는 점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대중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당사자는 사생활 침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기사화한 언론이나 제보자는 법적인 처벌은 없는지요. 공인이라 하여 사생활보호나 인권이 알권리와 상충되었을 때 무엇이 우선인지요?”라는 질문도 있었다. 보통 알 권리 혹은 공익의 이름으로 대변되는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프라이버시라는 두 가지 권리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대한 질문이었다. 본인에게 사실 확인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기사화하는 경우에 침해되는 사생활 문제를 짚으면서도 동시에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으로서의 언론의 자유가 옹호될 필요가 있는 순간은 언제인지 이야기 나누었다. ‘국정농단’이라 불리는 작금의 사태에서 자기는 단지 친구와 얘기 나누고 조언 들은 것인데 자신의 동의 없이 보도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언론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에 다들 바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시국 덕분에 그 순간 전달은 된 듯 했으나 교육이 끝나고 다시 생각하니 애초 나누고자 했던 문제의식이 아니라 ‘여혐’에 기댄 설명으로 해석된 건 아니었는지 뒤늦은 아쉬움과 찜찜함은 남는다.

“장애아로 힘겹게 사는 것보다는 마음 아프지만 낙태가 나은 선택 아닐까요?”

참여자들이 사전 제출한 질문에는 ‘낙태’와 관련한 질문도 여러 개 있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도 있을 것이고, 보통 얘기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 구도에 ‘장애’라는 또 다른 논의 축이 맞물리면서 등장한 질문이었다. “장애가 차별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머릿속 신념과 달리 정작 내가 임신했을 때 장애 검사 결과에 마음 졸여했다”고 한 패널 분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장애 검사 재검을 받은 뒤 장애아라도 낙태는 하지 않겠다는 친척이 있는데, 헬조선에 장애인으로 힘겹게 사는 것보다 마음 아프지만 낙태가 낫지 않을까요?” 질문을 하신 분도 나왔다.
여기에 “성폭력 등 원치 않는 임신일 때는 헷갈리긴 하지만, 대학 때 낙태 수술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며 낙태를 반대한다고 한 어느 남성 참여자의 이야기까지 등장한 가운데 다른 참여자 한 분이 “장애아라고 해서 낙태를 허용하는 건 곧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미 전제한 것 아니냐. 왜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도 물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해주셨다. 진행자 입장에서 참 고마운 분이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한쪽 방향으로 쏠린다 싶을 때 논의의 방향을 트는 질문을 언제 던질까, 지금 당신이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강사로서 어떻게 개입할지 하는 고민의 순간 구원투수로 등장해주신 거다.

징검다리 질문으로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조항(“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을 인권의 눈으로 살필 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물었다. 여기에 최근 이탈리아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생식의 날을 지정하면서 “여성의 몸은 공공재”, “아름다움엔 나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생식 능력엔 있죠” 등의 구호를 홍보한 예화를 소개했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인구조절정책으로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절부터 요즘은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식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와 개입이 계속 되고 있는 맥락 속에 여아 낙태가 줄어든 건 낙태를 범죄화해서가 아니라 여성인권이 그나마 예전보단 개선된 결과는 아닌지, 그렇다면 장애아 낙태에 대해서도 태아의 생명권 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장애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이어갔다. 이 와중에 사회복지를 전공 중인 한 분이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사회 장애인권 수준도 나아질 것 같다”고 해주신 이야기는 단지 장애인의 숫자 문제가 아니라 장애-비장애를 가르는 기준 자체, ‘정상성’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로 의미화할 수 있었다.

 

왼쪽이미지-생식의날 홍보하는 이탈리아 정부의 포스터. 오른쪽이미지-패러디한 이미지("더늦으면 지옥을 맛볼거야-변비의날")

임신을 장려하는 이탈리아 정부의 임신의 날 광고(왼쪽 사진). “아름다움에는 나이가 없지만, 생식에는 나이가 있어요” 라고 적혀있다. 이를 패러디한 문구(오른쪽 사진). 이탈리아어-영어 구글 번역기에 따르면 “Remember to go to hell”, 의역하면 “더 늦으면 지옥을 보게 될거다” 정도 되려나. 해시태그에 ‘생식의 날’ 대신 ‘변비의 날’이라고 적혀있다. 교육 때 토론 시간이 길어져서 정작 슬라이드로 준비해간 이 이미지는 함께 보지 못했다는 것이 함정.

 

“목욕탕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요원을 뒀더니 이용인들이 인권침해라고 해서 난감합니다”

교육이 열렸던 복지관 1층에는 목욕탕이 있었다. 그 목욕탕과 관련한 질문도 있었다. 최근 날씨가 추워지고 목욕탕 이용인들이 많아지면서 등장한 핫한 이슈였다. “어르신들 사고 예방을 위해 탕 안을 감시(?) 관찰하는 직원을 뒀는데, 안전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이것도 인권침해가 되는 걸까요?” 이 질문을 두고 ‘현장을 잘 아는’ 종사자와 ‘아직 현장을 잘 모르는’ 사회복지 전공 대학생 그리고 ‘또 다른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보조인 각각의 입장에서 얼마나 다른 관점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토론이 전개됐다.

“지체 장애인들은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에 수치심을 더 느낀다. 그런데 동물원처럼 누가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활동보조인 패널 분이 얘기하셨다. 이에 청중석의 종사자 한 분이 “목욕탕은 서로 자기 몸 드러내는 곳인데 왜 그렇게 싫다고 하실까 했는데 지금 얘기를 듣고 이해가 좀 됐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남탕에 남자 직원 배치하면 같은 남자니까 괜찮지 않나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남의 알몸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직원 입장도 좀 곤욕스럽겠단 생각도 든다” 덧붙여주셨다. 다른 입장에 대한 이해가 열린 것과 더불어 미처 생각 못했던 지점까지도 발견해주신 소중한 이야기였다.

인권침해다 아니다, 맞다 틀리다, 이것만이 해답이다가 아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권의 원칙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고자 서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인권의 상호의존성이란 말을 굳이 입 밖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논의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꼈을 때 사람들이 웃게 되는 건 아닐까(라고 적고 나니 억지같기도 하지만.)  “직원들이 밖에서 보지 말고 교대로 씻으면서 계속 들어와 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다른 패널 분의 이야기에 그건 아니지 정색하지 않고 그냥 일단 다들 웃었던 장면이 나에겐 인상적이었다. 이 웃음을 틈타 “‘안전’을 위한 조치이니 인권침해라 여기지 말고 양해해달라”는 설득에 종사자들이 쓰는 에너지의 방향을 돌려서 가령 같이 목욕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서로의 안전에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게끔 필요한 것을 상상해보는 건 어떤지 하는 이야기도 건낼 수 있었다.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허망한 얘기도 아니고 현실의 제한된 선택지 사이에서 헤매는 것도 아닌, 양비론에 무기력해지기보다 그래도 새로운 대안을 찾아봐야지 하는 일말의 동하는 마음이 참여자들에게 생긴다면 그 교육은 나름의 의미를 남긴 것이라 믿고싶지만, 실제로 그런 느낌을 받고 돌아서는 교육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보통 ‘참여형’ 인권교육의 전제처럼 여기는 모둠 자리배치도 아니었고(물론 모둠활동이 곧 ‘참여’는 아니겠지만), 여러 집단이 섞인 세팅에, 참여자들이 미리 제출한 질문을 전부 다 다루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교육이었지만 이날 있었던 ‘토크콘서트’ 형식의 인권교육도 가능은 하단 걸 확인했다는 자족적 평을 남기며, 참여자들에게 이날 교육이 어땠는지는 이후 다시 교육 요청이 오는지 여부로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정말?ㅎㅎ)

*작성: 날맹(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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