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드문 콩처럼 박혀 인권교육을 하는 교사들과의 인권교육 길찾기
참교육실천대회 <철지난 학생인권, 인권교육의 길찾기> 분과진행을 중심으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4년이다. 1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요즘, 인권이 학교로 찾아든 4년 동안 학교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가장 큰 성과라고 한다면 청소년은 인권의 주체라는 사회의 인식, 체벌은 폭력이라는 원칙을 확인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 라고 써보면서 마침표를 주저하게 되는 건 아쉽게도 ‘정말?’이라는 의구심을 내려놓을 수 없을만큼 너무 느리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풍경들 때문이다. 무늬만 참여인 학생위원회와 학생의 의견을 묻는 각종 조사들, ‘능력’으로 정당성을 획득하고 행해지는 차별,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치를 통해 훼손되는 학생들의 존엄, 그리고 학교 현실이 그렇다는 ‘어쩔 수 없는’ 조건들을 앞세워 멈춰선 인권. 돌아보면 어쩔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은 그 어쩔 수 없음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고 뒤집어보는 무수한 시도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만나왔다. 우리가 학교에 인권교육을 하러 가는 이유도 그리고 많은 교사들의 교육이 인권을 품고 인권적으로 이뤄지길 바라는 이유이다.

학교 인권교육, 안녕하십니까.

서울학생인권조례는 학교의 장은 학생들에게 학기당 2시간 이상 학생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각 학교에서는 인권교육을 진행하는데, 누가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인권교육을 하고 있을까? 다양한 교육주체가 있겠지만 2015년 <등 긁어주는 모임>은 교사들과 고민을 나눠보기로 했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공유하는 공간과 시간이 많은 만큼 인권을 매개로 한 말 걸기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외부 강사를 요청하는 것처럼 ‘인권교육’ 시간을 배정해 본격적으로 교육을 진행할 수도 있고 교과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권의 가치를 녹여낼 수도 있다. 혹은 일상 속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인권적인 태도와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학교라는 공간을 인권교육 실천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인권교육은 무엇이 있는지를 토대로 서로가 서로의 비빌 언덕이 되준다면 학교 내 변화를 조금은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인권이 학교로 들어갔다는데 인권교육을 하는 혹은 관심 있는 교사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참교육 실천대회> 자리를 빌어 드문드문 콩알처럼 박혀있는 이들을 불러보기로 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인권교육은 무엇인지, 어떤 내용들을 나누며 혹은 주춤하게 되는 내용들은 없는지, 인권교육을 할 때의 어려움이나 고민은 무엇인지, 이번에도 우리는 당사자들은 가려워하지 않는 등을 가렵지 않냐며 다가가 보기로 했다.

이번 ‘등 긁어주는 워크숍’의 전체 흐름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인권교육을 ‘인권에 대한/통한/위한’이라는 렌즈를 통한 점검이다. 첫 번째 시간, ‘인권에 대한 교육’은 교육 안에서 인권의 가치와 원칙들이 잘 녹여나고 있는가, 두 번째 ‘인권을 통한 교육’은 인권을 경험하고 나누는 과정 자체도 인권적이어야 하는 만큼 교육환경은 인권적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권을 위한 교육’은 인권이 형식과 지식의 경계를 넘어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지 가장 기본이자 토대다 되는 원칙부터 살폈다.

인권교육, 무엇을 이야기하나?

누구나 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라고, 간단명료하게 정의하지만 한꺼풀만 벗기면 명료함은 사라진다. 존중이나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어쩐 일인지 기존의 질서 안에 머무른다. 그래서 일례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문제지만 교사의 학생존중은 간과한다. 여전히 배려, 양보, 예의는 타인의 인권을 빌어 누군가에게 지킬 것을 강요한다. 행위를 강요될 때 그 행위자도 강요가 만든 배려나 양보도 인권적일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들이 인권을 채운다. 한 발 나아가 인권에 앞서 ‘자기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어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인성교육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지난 해 7월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라 곧 학교에서도 인성교육이 진행될 예정이다. 인성교육은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의 함양을 목표로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인권교육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해야 하는지 함께 길찾기에 나섰다.

한정된 시간동안 많은 것을 나누는 것은 늘 아쉬움만 남긴다. 그리고 이미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참여자들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치 하나하나를 짚기 보다는 현재 긴장을 타고 있는 인성교육과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았다. 우선 EBS의 ‘인성채널e-사람의 품격’(영상은 EBS에서 찾아보실 수 있기에 영상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을 함께 시청한 후 영상이 전달하는 메시지, 즉 인성의 덕목을 살폈다. 타인을 배려하는 장면들 속에 여전히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무엇인가?

-인성을 가져야 되는 주체가 분리되어 있음
-개인의 습관, 말하는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렇게 만든 구조(현실)은 빠진 듯
-말을 잘하면 되는가? 왜 힘든 직업을 하는 사람이 아랫사람이 되는가?
-말의 폭력이 개인의 습관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곱게 한다고 인격이 높아지는 걸까? 청소노동자, 경비원 등 노동자가 존중받을 수 있는 구조의 얘기는 없이 말 한마디로 해결하려 든다.

CEO가 웨이터에게 친절하면 인격이 고매한, 품격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웨이터는 늘 CEO에게 친절하지만 품격있는 웨이터가 되지 못한다. 이미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를 전제한 채 인성을 논하는 풍경은 불편하고도 익숙하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라며 개인의 언어습관으로 만들지만,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사회적이고 계급적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참여자들은 영상이 감추려고 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인권교육이 지향할 방향을 찾았다.

인권교육의 방향과 가치를 세웠다 해도 실제 인권교육을 진행하다보면 여러 변수들에 의해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어진 시간에서는 인권교육에서 많이 활용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방법론-<인권은 ○○이다>와 <영상-동물농장(국가인권위)>-을 활용하여 인권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다. 특히 영상은 교육에서 자주 활용되는 재료인데 종종 느낌 나누기에 그치거나 의도한 목표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 때 진행자의 질문은 중요한 방향키가 된다. 반차별 교육을 목표로 한다면 사회기준의 문제, 개인을 넘어 사회구조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일지 다양한 질문을 뽑아 보았다. 더불어 인권교육에서 구조적 문제만 강조할 때, 차별이 어떻게 나와 연루되어 있는지 고리를 찾는 질문을 놓쳤을 때 차별을 대상화 하거나 남의 일로 여길 우려가 있음을 나누었다.

계란빵에 계란이 있는데, 인권교육에 인권이 있나?

두 번째 시간은 ‘인권을 통한 교육’을 주제로 논의가 되었다. ‘인권을 통한 교육’을 구성하는 것은 물리적 환경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 잘 듣는 귀, 깊이 이해하려는 마음,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 등 인권적 환경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만 보더라도 학교에서 1-2시간의 교육시간에만 조성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학교와 같이 일상적 관계를 맺는 참여자와 교육가 사이에 진행되는 인권교육이라고 할 때, 학교의 문화와 관계는 ‘인권을 통한 교육’의 전제이자 결과일 수 있다. 그래서 ‘인권을 통한 학교인권교육’의 논의는 ‘인권교육(수업시간)’을 넘어 인권적 학교의 실현과 반인권적 학교의 문제로 바로 연결되곤 한다. 모든 게 문제적 ‘학교’로 깔데기화 되는.
예를 들면, ‘학교에 인권교육 갔더니 학생들이 무슨 교육인줄도 모르고 있더라’는 분명 문제다. 실제로 인권교육 가면 ‘왜 왔어요?’라고 학생이 묻거나 교사도 무슨 교육인지 잘 모를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선택하거나 생각해 볼 기회도 없는 학교가 진짜 문제다-> 하지만 학교의 대부분 교육은 그렇다-> 하지만 교육인 주체를 무시한 것이다. 인권을 통한 교육이 아니다-> 물어보고 학생들이 싫다고 하면 인권교육 안하냐. 배우는 것도 권리지 않냐-> 개별적으로 물어볼 수 없는 곳이 학교다-> 거봐라 학교는 반인권적이다’처럼…^^

학교 인권교육에서 ‘통한 교육’이 더 가능하도록 논의 방향을 잡고자, 시작을 ‘나의’ 학교인권교육을 중심으로 질문을 던졌다. 학교 교사로서, 인권교육을 간 강사로서 자신의 인권교육을 떠올리며 인권적이었나, 고민스러웠던 순간들을 적어봤다.

“나의 인권교육, 인권적인지? 헷갈린 순간이 있다.”

-교사 앞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요구를 하지 못하고, 이론으로 마치고 오히려 권리를 알게 되면서 소통의 부재를 낳게 된 느낌이 들 때
-강의를 받는 수강생들이 유치원부터 고등까지 함께 있을 때
-아무도 관심 없을 때
-납득되고 이해되는 방식의 설명과 이해방식을 나눈 게 아닌, 형식적인 설명을 한 느낌일 때. 내가 답을 알고 있어 하며 정답을 이야기하는 듯한.
-참여자들에게 공지 안 된 교육을 진행하게 될 때
-학생들을 감시, 졸고 있지 않은지 하기 위한 참관이 있을 때
-학교 내 학생인권침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인권교육을 할 때. 소지품검사 끝나고 인권교육 할 때 난감
-교사로서 교육한 내용을 규제로 적용하게 될 때. 장애인권교육을 반에서 하고 난 후 내가 야단칠 때 ‘우리가 어제 배웠잖아’하면서 혼내는. 인권의 내용이 또 하나의 규제의 윤리가 될 때.
-학교에서 교사연수였는데, 교사들 모아 놓고 교장이 교직원 여러분 맘껏 교육받으세요. 인권하고 교육하고 싸우면 교육이 이깁니다. 라는 발언을 할 때
-완전 떠들어서 진행이 안 되어 결국 소리 질렀다.
-인권교육을 했는데 이런 권리를 요구합니다. 했는데 지금은 어려워~
-참여자들과 소통되는 느낌이 적을 때, 참여형을 해도 참여율이 낮을 때.
-수업했다하고 강사료 송금 할테니 학교에서 그냥 가라고 할 때
-나 혼자만 떠들어: 짧은 교육시간, 준비한 프로그램과 이야기 진행해 급급하다 나올 때
-아동학대예방교육 필수, 가정 내 체벌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고민.
학교의 문제와 교실의 문제가 딱 분리된 것은 아니지만 논의 시작을 좀 더 ‘교실’에 맞추려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논의 방향’. ‘학교가 다 문제야’로 모아지기보다는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원인을 면밀히 짚어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권을 통한 인권교육’의 이해를 높이고 공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학생들에게 공지 안 된 인권교육’은 문제이다. 공지, 정보전달이 안된 상황은 ‘동기’가 전혀 없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권리,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교육에서 참여자의 동기는 너무 중요하다. 정보는 동기를 부르는 씨앗과 같다. 그런데 교육의 정보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은 인권을 통한 교육의 걸림돌이 맞다.
하지만 때로는 공지 돼 있어도 별반 다르지 않게 문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들었는데 그게 뭐예요?’ 혹은 ‘안하면 안되요?’ 와 같은 반응을 접하기도 하니까. 정보전달은 인권교육을 ‘선택하거나 거부하기’위한 단계가 아니라 이해와 설득의 과정으로 교육의 한 부분되어야 한다. 이 단순히 ‘공지’하는 것으로 ‘인권을 통한 교육’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 통한 교육을 만들어가는 것인 셈이다.

전반부는 이런 식으로 참여자들이 꺼내 놓은 ‘걸림돌’을 살피면서 ‘인권을 통한 교육’의 의미를 짚어보려 했지만, 아쉽게 맛보기에 그쳤다. (뭐랄까. 대부분은 ‘통한 인권교육’보다는 ‘학교’에 살짝 더 무게가 있었다고 할까.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후 진행된 해결방향에 대한 논의를 보더라도..^^)

인권교육의 영양분을 찾아서

참교육실천대회 철지난 학생인권 인권교육의 길찾기_01이어서 학교 인권교육이 ‘인권을 통한 교육’이 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날 ‘인권에 대한’ 교육시간에 이야기된 것들이 인권교육의 목표, 나무의 열매와 같다고 할 때, 앞서 꺼내 놓은 ‘헷갈리는 순간’들은 나무의 성장을 가로막는 방해요소,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권교육의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영양분은 무엇일까?

걸림돌을 몇 가지로 분류하고, 모둠별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갈지 논의했다. 첫 번째는 동기 없는 교육과 의무교육(벌) 그리고 두 번째는 학교안의 비인권적 질서 문화와 교육의 내용이 배치될 때, 세 번째는 인권교육의 형식, 방법(일방성)으로 나눴다.

동기 없는 교육과 의무교육의 해결방안으로 모둠 토론에서는 인권의 의미를 강조하기보다 인권감수성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일상을 낯설게 보는 것들이 제안됐다. 또 학생교육보다 교사에 대한 인권교육의 필요성, 학교 측과 미리 교육 관련한 소통을 하는 것, 참여자에게 교육에 대한 정보제공 하는 것, 듣고 싶은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하는 것도 등장했다. 의무교육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됐지만, 한편에서는 인권교육이 의무화되지 않은 지역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한 한 참여자의 얘기가 다른 참여자들 마음에 남기도 했다.

참교육실천대회 철지난 학생인권 인권교육의 길찾기_02학교안의 비인권적 질서·문화와 교육 내용이 배치될 때는 어떻게 할까? 말하자면 인권적 교실과 반인권 학교사이에서 분열하는 인권교육의 문제라고나…^^; 이 논의를 진행한 모둠에서는 문제적 질서와 구조를 인식하는 것부터 당장 할 수 있는 것까지 제안이 됐다. 인권수업이 아니라도 교과안과 생활지도 급식지도 등에서 생활로 녹여내는 것이라든지 학교라는 인권침해적인 물리적 공간 자체를 바꾸어 가는 것, 같은 마음을 가진 교사연대 또 관리자-교사-학생의 구조를 인권적으로 만들고 평등한 주체로 세우를 것 등이 나왔다. 직접 시도한 구체적 방법으로, 모든 학생에게 ‘씨’를 붙였다는 한 참여자는 올해엔 학생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다짐을 밝히기로 했다.

끝으로 인권교육의 형식, 방법(일방성)을 인권적으로 만들 때 무엇보다 참여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권교육뿐 아니라 학교의 일상에도 일방성을 해소하는 경험으로 학교에서 3월 한 달 내내 오리엔테이션을 통해서 생활규정을 학생과 함께 논의·공유하는 시간을 거치며 끊임없이 얘기한다는 한 참여자의 사례가 소개됐다.

이어서 ‘인권을 위한 교육’ 시간에는 인권교육의 실천 사례들을 짚어봤다. 앞서 인권교육의 영양분으로 포함됐던 경험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작은 계획을 다짐했다. 획기적 방법이나 엄청난 아이디어가 쏟아져 힘을 주었다기보다 참여자들의 ‘고군분투’와 그것을 공감하는 마음들이 서로에게 전해지는 시간이 됐다.

참교육실천대회 철지난 학생인권 인권교육의 길찾기_03 참교육실천대회 철지난 학생인권 인권교육의 길찾기_04

이번 워크숍은 학교인권교육을 점검하면서 좀 더 대안적 길을 모색하길 바라며 준비를 했었다. 더불어 ‘한 줌도’ 안 되는(ㅠ) 인권교육가(교사든 활동가든 학교인권교육에 관심을 가지는)들이 서로 힘을 북돋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하지만 논의는 막 펼쳐진 정도였다. 9시간으로 닫기에는 너무 이른. 사실 학교 인권교육에 대해 교사그룹과 논의하는 자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인권교육 혹은 인권에 대해 교육을 받고자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인권교육을 같이 논의할 기회는 적었다. 마치고 나니 무언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드는데. 어떻게 언제 가능할지는… 일단 평가를 해보고^^;

정리 ‖ 은채. 묘랑 상임활동가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